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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dip Nov 01. 2024

세고생 공식 편성 1

제주도 한라산 당일치기 도전하는 생고생 쇼

  ‘세고생’은 회사 이름과 ‘생고생 쇼’를 합친 단어다. 말 그대로 고생하는 여행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인데,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영상 PD 세이지와 대표님의 아이디로 시작되었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는 다들 ‘설마’라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지만 다음 미팅에서 구체적인 계획안이 공개되자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식 편성된 세고생 첫 번째 여행은 한라산 당일치기, 영상 PD 세이지를 포함한 총 3명의 인원이 떠나야 했다.


  “잠깐만요, 한라산을 당일치기로 간다고요? 누구나 가능은 한 거죠?”


  대부분은 한라산 등산을 당일치기로 하진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미친 도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가본적 없는 사람들은 이들이 과연 정상까지 갔는지 결말이 궁금할 것이고, 가본 사람은 이게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기에 공감과 재미 요소를 곁들인 콘텐츠가 될 것이다. 등산은 싫어하지만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말에 혹해 손을 들고 지원을 했다. 그리고 에디터 팀에서는 마린이 손을 들었다. 참여 인원이 수월하게 확정되어 가고 싶은 사람들은 설레고, 안 가는 사람들은 내심 안심했다. 겨울 한라산 등산은 준비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다. 특히나 등산화와 아이젠은 필수인데 이것들이 없는 나에게 대표님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아이젠을 직접 선물해 주셨다. 


  출국 당일 새벽 4시, 택시를 타고 신나게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당일치기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시간과 한라산 입장 시간, 등산 예상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활주로 주행 도중 갑작스럽게 멈추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활주로 주행 중 장비의 이상 신호가 확인되어 잠시 점검 후 재이륙 여부를…”


  주유장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탐방로 입장 시간을 바꿀 수 있는지 서둘러  확인했다. 원래 예약했던 시간대는 6~8시 출발 코스였다. 주로 8~10시 출발 시간대는 예약이 금방 마감되는 편이라 그 전 시간대를 예약했던 건데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8~10시 출발  예약이 가능했다. 아마도 이틀 전  제주도 지진이 발생해서 취소 인원이 많았던 것 같다. 큰 걱정과 다르게 예약도, 비행기도 무사히 제주도에 잘 도착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 우비를 입고 준비운동 후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다. 처음 본 한라산 등산 길은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데크 계단으로 잘 가꾸어진 길을 지나 강을 넘고, 거대한 돌길을 건넜다. 비와 짙은 안개로 더 몽환적인 숲 속은 마치 SF 영화 속 장면 같았다. 멋진 풍경이지만 몇 년 만에 오르는 등산에 숨이 금방 턱 끝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물 한 모금, 단백질 바 한 입, 대표님이 주신 에너지 젤을 한 입하며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등산을 이어가는 중 마린이 포기 선언을 했다. 그녀는 부족한 수면과 급하게 한라산을 오르다 과호흡이 와버렸고 세 번이나 구토를 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나와 세이지만 남았다. 처음 써보는 등산 스틱을 양손에 쥐고 점차 험난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첫 번째 포인트인 삼각봉 대피소에 가까워지니 소복히 쌓여있는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쉴틈없이 오른 덕분에 12시까지 이곳에 도착해야 하는 미션을 11시 40분에 완수했다. 무거워진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철퍼덕 앉아 숨을 돌렸다. 대피소는 어떤 냄새로 가득할지 생각이나 해본 적 있을까? 아무래도 등산객의 땀 냄새나 추운 겨울의 한기만 느껴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에는 따뜻한 온기와 컵라면 냄새가 우리를 반겨줬다. 배낭에서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담아 온 보온병을 꺼내 물을 부었다.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정상 가실 분들은 서둘러서 등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서로 다른 눈빛을 보냈다. 


  “저희 12시에 출발해야 돼요.”

  “파이팅, 저 진짜 못 가요” 


  더 이상 등반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까 먹은 에너지 젤리로 겨우 각성하며 버텼지만 대피소까지가 끝인 것 같다. 나는 정상을 향해 떠나는 그에게 말없이 몽셀을 하나 쥐여주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홀로 남아 잘 익지 않은 라면을  호로로로롭  맛있게 먹으며 하산할 체력을 보충했다.  라면의 뜨거운 국물이 온몸에 퍼지면서 한껏 긴장이 풀리며 몸이 나른해졌다. 하나둘씩 등산객이 대피소를 떠나는 모습에 나도 슬슬 자리에 일어나 하산을 시작했다. 이슬비에 온몸이 젖어 축축하고, 한기가 들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순간 미쳐버릴 뻔 했다. 동료들과 같이 등산할 땐 몰랐지만 홀로 내려가니 굉장히 외롭고,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동료들의 힘이구나' 드디어 산 입구에 도착했다. 먼저 하산했던 마린이 카메라를 들고 내려오는 나를 힘차게 반겨주었다. 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먼저 근처 카페에 가서 몸을 녹이며 세이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비와 땀으로 젖은 몸을 씻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에 지워본다. 내가 한라산을 올랐다니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비록 정상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이에 대한 아쉬움은 1%도 없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김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극심한 멀미와 두통이 찾아왔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이 이상해서 집으로 가는 중간에 택시에서 내려서 힘겹게 집에 걸어올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오고 나서도 그대로 한참을 거실에 누워있다가 동생의 도움으로 씻고, 침대에 겨우 몸을 누울 수 있었다. 처음 겪는 고통에 머리가 멍한 기분이 다음까지 이어졌다. 주말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대표님이 이야기하길 에너지 젤리를 과하게 섭취한 것과 뒤늦은 과호흡 증상 때문이었다. 마린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제야 실감했고, 앞으로 내 몸을 더 아끼기로 다짐했다. 기획한 데로 3명 다 찐 생고생한 한라산 당일치는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  등산 전에는 꼭 충분한 숙면과 체력을 완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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