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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29. 2022

다꺼행_
12화. 우린 각자 다른 여행을 합니다

남의 떡은 늘 크다

핸드폰 초기화의 악몽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퀸스타운을 떠나는 날이다. 이제 정말 훌훌 털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야지 싶다. 날이 흐릴 것 같다는 일기예보로 이동 계획을 잡았는데, 비교적 날이 좋았다. 


체크 아웃하고 나서 아침 먹는다고 주방에 올라갔다가, 와카티푸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며 잠시 여유도 가졌다. 이곳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미안, 퀸스타운! 내가 좀 찌질했지? 다시 돌아온다면, 아주 쿨하게 대해주겠어! 정말이야! 약속!.' 맘 속으로 손가락을 걸며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나는 와카티푸 호수를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했던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 : "가족이 오셨나 봐요?"

나    : "네~ 자유여행하고 있어요"

그녀 : "전 호주에서 여행하다 뉴질랜드로 넘어왔는데, 여긴 참 여유롭고 좋네요."

나    : "네. 저희는 뉴질랜드에서만 한 달인데, 아이들이 있어 렌트도 하고, 일정도 여유롭게 짰더니 너무 좋네요. 호주는 어때요? 호주도 너무 좋죠?"

그녀 : "호주도 좋긴 한데, 인종차별이 느껴져서 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근데 여긴 친절하고 좋은 것 같아요. 뉴질랜드에서 어디어디 다녀오셨어요?"

나   : "저희는 온 지 한 10일 정도 되었는데, 크라이스트 처치-레이크 테카포-마운트 쿡 거쳐서 여기 왔어요. 오늘은 테아나우로 가려고요. 여기 너무 아름답고 좋죠? 안전하게 좋은 시간 보내세요~." 


퀸스타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예약해놓았다는 그녀는 우리가 마운트 쿡에서 했던 빙하체험 얘기에 '예산에서 제외시켰는데...' 하며 너무 아쉽다고 했다. 만약 나 였다면 조금 더 예산에서 좀 오버가 되더라도, 추가해서 하고 싶을 거 같은데, 그녀는 아쉬운 마음으로 끝인 듯 했다. 


그래, 누구나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거지.

그래, 누구나 어디든 다 갈 수는 없는 거지.

그래, 누구나 각자가 하고 싶은 게 다른 거지.


짧은 대화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우리 아이들도 조금 더 크면 다 
그렇게 인생이든 여행이든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음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텐데... 지금은 그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고 재밌게만 기억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이 될는지. 그 마음을 알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테 아나우라는 작은 도시에 가는 일정이라 큰 마트가 없을까 봐 우리는 장을 보고 가기로 했다. 아시아마트에서 햇반과 몇 가지를 사고, 퀸 타운에서 가장 크다는 마트에서 채소, 과일, 와인, 우유, 고기, 아이들 과자를 사고 출발했다. 이제 
2시간 정도 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 힘들지 않은 여정이 되었다. 뉴질랜드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길이 멀지만, 차는 별로 없고, 길은 쉽고, 시야는 뻥 뚫려 시원해서 좋았다. 운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신경 쓰이겠지만. 


가는 내내 광활한 초원과 높은 산 중턱에 언덕배기에 즐비한 양 떼와 소떼, 말떼, 사슴 떼들은 봐도 봐도 좋다. 하다못해 농약을 뿌리는 기계도 우리에겐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노래를 부르다, 동물친구들과 인사하다, 하늘에 구름 쳐다보며 가다 보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중간에 스치는 작은 마을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는데, 가스턴이라는 마을에 들어서자 로컬 꿀을 파는 가게가 보여 들어가 보았다. 프랑스인이 경영하는 꿀 가게인데, 시식을 해보니 꿀맛이 아주 좋았다. 아이들도 맛있다고 했다. 꿀은 피로 해소에도 좋으니, 여행 중에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숟가락씩 먹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꿀을 구입하고 다시 출발했다. 홍삼도 챙겨가서 매일 먹이고 있지만, 왠지 더 마음이 든든해져서 좋았다. 

모스번이라는 마을에 다다랐을 때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어린이들은 놀이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가보다. 너무 늦어질까봐 그냥 지나가고 싶었지만, 아이들 성화에 근처에 차를 대고 놀이터에서 놀 수 밖에 없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근처 화장실도 들르고 아이들 간식도 먹였다. 덕분에 겸사겸사 일은 잘 봤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 다시 달리니 어느새 테아나우 Te Anau도착에 도착했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걸으면서 시내 구경을 하기엔 무리일 듯하여 차로 한 바퀴만 돌아보기로 했는데, 동네가 작고 아담하니 호수도 있고 좋았다. 내일 비가 잠시 멈춰준다면 꼭 산책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숙소는 
YHA 중에서 private공간이 있는 것으로 예약했는데, 건물이 따로 있고, 방이 두 개이고, 거실과 주방은 같이 쓰는 나름 독채다. 이런 스타일의 YHA도 있구나! 참 여러 가지 형태의 YHA의 숙소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더 흥미로워졌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가 넘어서였는데, 옆방에 사람이 안 오면 어쩌면 오늘은 진짜 독채로 사용하는 행운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숙소 중 제일 저렴한 곳인데, 대박 행운이 코 앞에 있네. 


오늘 저녁엔 양고기를 먹어봤다. 그동안 마트에서 양고기를 못 봤는데, 퀸스타운 마트에는 양고기가 있었다. 순수한 이미지라 먹기 전에 좀 그랬지만, 맛을 보니...

"미안해, 양들아~ 세상에 태어나 그 넓디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풀 뜯는 친구 많은 너희들이 부러워 자존심 살짝 상했었는데... 행복한 양들의 고기 맛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소고기에 이어 양고기 맛에 감탄하며 저녁 먹고, 정리하고, 씻고, 쉬는데 9시가 넘어도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끼리 있으니 아이들이 좀 시끄러워도 신경 안 쓰이고 좋았다. 역시 안 좋은 일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오늘 저녁 비에 이어,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쯤이 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계획이 없이 아이들 컨디션에 맞춘다고 했지만, 여행은 여행이니까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우리들이 쉬어가기에 딱 적당한 시기 같았다. 
짐도 안 싸도 되고, 그야말로 갈 곳도 없으니, 늦잠도 좀 푹 자고 뒹굴거려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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