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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교도서관 Aug 14. 2023

"무빙" 반장급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놀랍게도 두뇌다


[사진 출처 :디즈니 플러스]


교육계에 계시는 분이 아니면,


우리 아이 학교에 도서관이 있는지?

있다면, 우리 애가 도서관 이용 교육을 받는지?

수업하시는 사서선생님은 있는지?

모르시는 분이 90% 될 거라고 장담한다




오늘 자녀를 만나면 한 번 물어보시라, 학교에서 "도서관이용교육"을 받았는지 알아두면 좋다

아이에게 도서관 이용방법을 물어보시면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와 대화할 주제가 하나 더 생기니 좋지 않은가 ^^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첫 해의 일이다.



도서관 이용교육을 위해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을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3월 셋째 주쯤! 바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3월 둘째 주면, 내 반의 위치와 담임선생님 얼굴정도를 익힌 시점이다

심지어 우리 반 친구 얼굴도 다 못 익힌 학생도 있다.



그럼에도 3월 중순을 넘기지 않고 도서관 이용교육을 시작하는 이유는

저학년의 경우 아침독서 시간에 읽을 책을 하루빨리 대출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은 수업시간에도 학생이 오고 쉬는 시간에도 학생이 온다

그렇다 학교도서관의 사서교사는 3월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부족하다)

그래도

학생이 점심/하교 시간 전후로 올 수 있는

시원~하고, 쾌적~하고, 조용~(이건 아니다)한 곳을 제공해야 한다



30명 가까이 되는 타인과 규칙과 침묵이라는 규칙 속에 교실에 있다가

정신적으로 잠시나마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도피, 피난처 이기도 하고

숨바꼭질 장소이기도 하다




사서교사는 3월 초에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DLS(Digital Library System)에서 6학년 학생을 졸업처리하고,

각 학년의 학생들을 진급처리 한다

(이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이스에 학적부를 정확히 기재해 주지 않으시면,

아이들 번호가 뒤죽박죽 난리가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DLS에 1학년 신입생정보를 나이스학적에서 긁어와서 등록하려면, 사진을 일일이 이미지판에서 규격에 맞게 줄여주고(요즘은 화질이 좋아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면 다 고화질이라 애들 얼굴이 더 이쁘다)

사진 안 보내주신 부모님 계시면, 그 학생이 도서관에 방문할 때 내가 사진 찍어서 시스템에 업데이트한다.




사진을 왜 굳이 넣어 놓느냐 물어보시면, 그건 진심으로 필요한 절차라고 강조하고 싶다

내가 근무했던 초등학교는 900명 정도의 중 규모 학교였고 일일이 입학생, 전학생을 다 등록하는 이유는

동명이인도 많고(물론 나이스 아이디가 달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으로 도서관을 방문할 때만 다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매칭해서 기억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아이가 연락이 되지 않는 당황한 학부모님께서,


"우리 애 거기 있나요? 그리고 2초 후에 2학년 김민서요"라는 전화가 왔다




그러면 나는 3초 만에 두뇌를 풀가동 해서 2학년 김민서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서가 사이에 있을 아이를 찾아보고 행방을 말씀드려야 한다.




아이가 연락이 안 되면 당연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나 또한 학부모)

무섭고 걱정될 것이고, 도서관이란 재밌는 책이 너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연락이 안 되는 경우를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의 얼굴을 기억 못 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다 학기 초라면 더더욱,

이때 DLS에 사진을 등록해 놓으면 문제없이 민서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첫해부터 900명 (기존에 사서선생님은 사진 등록을 일절 하지 않으심)의 사진을 다 등록했고

얼굴과 이름을 매치해 도서관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오는 학생의 이름은 다 외웠다

놀라지 마시라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었던 큰 요인은



의외로 요즘 알파세대의 이름은 비슷비슷하기에 외우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ㅋ

개성을 더 중요히 생각하는 세대에게 이름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아이러니 하다




이름의 예: 준서, 민서, 민준, 예준, 지수, 민지, 지민, 태영, 태준, 서윤, 시윤 다 비슷비슷....


(여담으로 30여 년 전 내 친구 중에 영구라고 있었는데 그 학교/동네 통틀어서 영구는 한 명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니 그 부모님께서 이름 잘 지으신 거다 영구야 안녕?)


출처 심형래 감독 공식사이트

 




1학년때 입학 사진으로 DLS를 등록해 놓으면

매년 (매 방학 후) 부쩍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앳된 아기아기하던 얼굴이 6학년 학기말이 되면

엄청난 게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6학년 종업식이 있는 12월 중순에 연체도서 안내와 함께 각 반으로 대출증을 돌려준다

대출증의 사진이 있기 때문에 분쇄하여 버리기 너무 아까워서

나의 경우 각 반으로 대출증을 추억 겸 보관하도록 전달한다.


우리 아이 대출증 사진 예




대출증을 교실에 주고 나오면 반에서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본인의 1학년때 모습을 받아 든 지금은 변성기 혹은 사춘기의 아이들의 비명소리다




잠시 후 쉬는 시간에는

변성기로 목소리가 삑사리 나는 6학년 남학생이나

얼굴에 bb크림과 입술에 틴트를 바른 몇몇 여학생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방문자들은

손에 좀 전 전달 한 대출증 사진을 들고 사서교사인 나를 "위협/협박"하러 온다




협박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선생님! 저 이사진 DLS에서 지워주세요! "


나 "왜?? 귀엽기만 한데~?"


"아악! 안 귀여워요 지워주세요 ㅜㅜ"


나 "어차피 곧 DLS로 너네 데이터 싹 지울 거야~ 그때 한꺼번에 지워줄게"


"안 돼요 ㅜㅜ 아~~~ 악! 지금 지워주세요~~!!"


내가 뜸을 들이면 방문자들은 이내 울부짖는다


"제발요!"




이런 귀요미들을 만나는 일은, 도서관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말이 좀 샜다




여하튼 3월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그래도 1학년 학생들이 가장 고대하는 도서관 학습 만화책! 을

빨리 볼 수 있도록 도서관이용 교육을 3월 중에 얼른 해줘야 하는 것이다










도서관이용교육 수업 시 2시간을 블록으로 담임선생님께 시수를 받아서 1차시는 이론수업을 반에서 하고

2차시는 도서관으로 인솔해서 실습교육을 한다.




1학년 어느 반에서의 일이다.




수업진행 중에는 후반에 정답이 거의 다 나오도록 지도안을 짜기 때문에

중간에 질문을 받아 말하다 보면 1차 이론 수업이 40여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특히 궁금한 게 많은 1학년은 수업 시간이 정말 빠듯하다)



보통 질문은 후반에 몰아서 한 번에 받도록 수업시작 할 때 학생들에게 안내한다



단, 화장실은 요청 없이 "손 사인"만 주면 바로 다녀올 수 있도록 안내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손가락을 들고 조용히 일어나면 화장실 고고 사인이다

바로 다녀오도록 눈빛을 보내준다.




우리 큰애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거의 3학년때까지)

엄마인 내게, 본인 의식의 흐름대로 뇌를 거치지 않고 온갖 질문을 했었기에

나의 경우 1학년의 일명 "아무 말 대잔치 질문"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있다고 생각한 내가 매우 당황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1차 이론 수업 시간 중에 4월에 계획한 우리 학교 "세계책의 날"행사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 귀요미는 손을 번쩍 들고는 당당하게

질문을 제지할 틈도 없이 (이 친구는 너무 기뻤던 거다)




"선생님! 세계책의 날 다음날이! 우리 아빠 생일이다요!!"

하는 것이다! 두둥!



내가 잠시 "아~그렇고ㄴ~"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속으로 (아!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그 반의 모든 학생이 손을 들고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서 그에게 질문한 문제의 정답을 아는 옆자리 헤르미온느처럼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제발 나도 우리 아빠 생일 말하고 싶어요~"눈 빛을 보내며 반의 모든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사진출처: 영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이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나는 급하게 두뇌 풀가동을 시작한다




이때

당황하면 안 된다

몸을 돌려 학생을 회피해도 안된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소중한 생일! 을 말하고 싶은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면 안 된다





0.2초 만에 대답해야 한다.

세계육상 신기록 보유자 우사인볼트 보다  

디즈니플러스의 웹툰원작 한국형 히어로드라마 "무빙"의 반장 이강훈 보다도 빨라야 한다

출처 네이버 원출처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멋있는 반장




다정하지만, 정확하게 그렇지만 간결하게 대답한다.


"귀요마. 생일은 개인정보니까 공공장소에서 모두에게 말하면 안 돼요"

순발력이란 이런 것이다



26명의 아이들은 일제히 탄식한다

"아!"




오늘도 깨달음음 얻어가는 아이들과 그리고 1학년 수업을 들어간 쌔삥 사서교사다

나는 쌔삥 모든 것이 쌔삥 !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답을 찾아냈다

'오늘도 1학년에게서 살아남았다'라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반 모든 아버님의 생일을 축하드리지 못했지만

나의 소중한 수업시간 20분을 지켜냈다!





두뇌를 풀가동을 했더니 배가 고팠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은 대퇴이두근도 아닌

다름 아닌 "뇌"라고 한다






오늘 급식은 뼈다귀해장국이다

1학년 앞니 빠진 중강새들(욕 아님 주의!) 고기 발라먹기 힘들겠구나 하며

나는 맛있는 급식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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