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노라 Aug 02. 2021

달밤, 혼술의 안주

고장 난마음 삽니다 (14)  손동현의 그림

  옛 선비들은 청정한 달빛 아래 이화주(梨花酒)를 마시며 늦은 봄 밤을 아쉬워했다지요. 2021년 봄, 벗과 마주하기엔 경계와 그물이 많아 봄날이 후딱 가더니, '행여' 하며 기다린 여름밤은 달조차 마스크를 썼는지 빛도, 생기도 전해오질 않네요. 햇빛에 덴 아스팔트만이 간신히 숨을 돌리는 모양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한창인 이 저녁, 맥주 한 잔 놓고 멋도 낭만도 없이 TV 앞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참 왜소해 보이네요. 보이지도 않는, 극히 작은 세균 하나에 전 세계가 이리 꼼짝 못 하는 걸 보면요. 함께 응원하는 벗도 없이 혼자 보려니 참 쓸쓸합니다. 과학의 편리(便利)가 만든 온갖 물건이 당장은 손발을 여유롭게 해도 마음까지 넉넉하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조금 있으면 축구, 야구, 여자 배구의 한일전이 있습니다. 짧은 치마와 벌꿀 머리띠, 등산 수건 두 장으로 응원을 준비합니다. 치어리더인 저를 도와 줄 유쾌한 그림을 준비했습니다. 옛 그림을 현대적으로 비틀어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팝아티스트 손동현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1980년 생으로 아주 젊은 작가예요.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만약 김홍도가 현대에 산다면 무엇을 그릴까?"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요. 흥미롭지요? TV 보시다 영 우울해지면 수다 떠는 그림에 눈길 한 번 주시길... 그렇지만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는 마시길...ㅎ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 먼저 볼까요?


변상벽 <묘작도>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화가 변상벽(1730~1775)은 "변 고양이"라고 불릴 만큼 고양이를 잘 그렸어요.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선 나중 자세히 소개해 드릴게요. 이 그림은 변상벽의 <묘작도> 예요. 우리의 옛 그림에서 고양이는 70살 노인을 뜻해요. 왜냐고요? 고양이는 한자로 '묘(猫)'라고 하잖아요. 70살 노인을 뜻하는 '모(芼)'자와 발음이 비슷해요. 중국어로 하면 '마오'로 똑같은 소리가 난대요. 그래서 고양이는 '70살 드신 노인'을 은유하지요. 그럼 참새는? 참새는 '작(雀)'이라고 해요. 이 글자는 벼슬 작(爵)'과 발음이 같아요. 그래서 참새는 벼슬을 빗대는 동물이에요.


손동현 <묘작도>

  

  손동현은 이 고양이를 <묘작도>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그렸습니다. 누런 종이 위에 동양화 물감으로 채색했습니다. 원래는 족자 형식으로 되어 부산 비엔날레에 출품작으로 알고 있는데 구글에 있는 그림이 너무 작아 보여 드릴 수가 없네요.


어떠세요? 그림이 눈으로 직진했나요? 만일 언뜻 장난처럼 보인다면 팝 아트의 렌즈를 끼고 봐 주세요. 21세기 고양이가 조선시대의 고양이와 같을까요, 다를까요? 음... 고양이는 같은데 그걸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진 걸까요?



김홍도 <송하맹호도>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있는 그림이지요. 이 작품은 1m가 되지 않는 크기인데도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호랑이의 압도하는 기세가 화면에 꽉 차 있습니다. 호랑이의 등뼈와 꼬리를 보세요. 산과 골짜기와 나무와 풀이 떨고, 천지(天地)를 품는 위엄이 느껴집니다. 털 한 오라기까지 태산을 호령하는 목소리가 들리지요. 호랑이는 그냥 맹수가 아닙니다. 주역에 의하면 '대인(大人)'을 뜻하지요. 큰 덕을 펼칠 사람 말이에요. 누가 이런 위엄 있으면서도 우아한 영물을 그릴 수 있겠어요. 역시! 김홍도입니다.

 


손동현 <송하맹호도>


  작가의 질문처럼 김홍도가 현대에 산다면 <송하맹호도>가 이렇게 변했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철장에 갇혀 발톱을 손질하고 있거나 아침식사 대용품으로 우스꽝스러운 보디 빌더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먹어, 먹어. 나처럼 기운이 세질 거야." 하는 목소리에서 250여 년 전 태산을 흔들던 기운은 간 곳 없습니다.


  우리는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베풀던 환웅천왕의 아들, 단군의 아들 딸이지요. 아득한 옛날, 곰과 호랑이의 땅에서 출생했습니다. 북방의 센 활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해서 해 뜨는 정초엔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였습니다. 나쁜 기운을 영물인 호랑이가 막아준다 믿었기 때문이지요. 고대에서 현대로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손동현은 팝 아티스트의 눈으로 호랑이를 옭아맸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낯선 것을 주었어요. 이게 무엇이지요?"하고 묻습니다.



김홍도 <쌍작도>


  김홍도는 <쌍작도>라는 그림도 그렸습니다. 참새의 기상이 마치 독수리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표면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럼 손동현의 그림을 볼까요?


손동현 <쌍작도>

 

 손동현의 그림은 옛 그림에 비해 단순하고 가벼워 보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 지점에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술이란 시대가 낳고 시대가 기른다는 것이지요. 문화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문사철 시서화(文史哲  詩書畵)가 평생을 갈고닦는 자기 수련의 방책 중 하나였던 옛 조상들에게 있어 그림이란 수양(修養)이었습니다.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물질과 매스 미디어가 점령군처럼 진주한 땅에 화려하나 위태롭게 서식하고 있는 문화입니다.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 위, 붉은 그의 낙관은 개념의 경계를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예술의 가치가 '아름다움'에 있지 않고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데 있다.'면 작가는 그 시대를 증언하며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겠지요. 전통적인 <문자도>와 손동현 작가의 <문자도>도 함께 보시겠어요?



효제문자도


  문자도란 문자를 그림 형태로 나타낸 것입니다. 성리학의 나라였으니 아무래도 충(忠), 효(孝), 신(信), 의(義) 같이 선비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문자도로 나타낸 것이 가장 많습니다. 각 글자마다 고사가 있어요. 예를 들어 신(信)에는 청조(靑鳥, 푸른 새)와 백안(白雁)의 고사가 있습니다. 청조는 몸은 새인데 머리는 사람의 형상을 가진 상상 속의 새입니다. 곤륜산에 산다는 서왕모 설화에서 비롯되었지요. 한나라 때, 무제의 궁전에 청조가 날아들자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무제의 궁전에 서왕모가 방문할 것이라는(선택받았다는 의미) 일종의 예언을 통해 약속과 믿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고사는 중국 한(漢) 나라 때, 무제(武帝)의 아들인 소제(昭帝)는 포로를 교환하려고 흉노(匈奴) 땅에 들어갑니다. 그는 붙잡혀 억류되었지요. 억류된 소무(蘇武)를 귀환시키기 위하여 특사를 보내자 흉노는 소무가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영특하고 신실했던 특사는 이렇게 지혜로운 말로 소무를 석방시켜 나옵니다. 사냥을 나갔던 황제께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기러기 발목에 소무의 서신이 있어 그 서신을 보고 날 보냈노라고 말입니다. 이 고사에서 비롯되어 믿음을 전하는 편지를 안서(雁書)라 하게 되었습니다.


  문자도는 이렇게 문자에 따른 고사와 그 고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등장합니다. 믿음(信)은 푸른 새와 흰 기러기가 되겠지요? 이런 문자도를 손동현 작가는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맥도널드>


<나이키>


<버거킹>


  정말 독특하지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할까요? 민화의 문자도 양식을 차용한 맥도널드에 있는 햄버거와 캐릭터를 보세요. 버거킹에는 감자튀김이 있고, 나이키에는 운동화 끈이 산을 두르고 있네요. 그는 시대의 아이콘을 그려놓고 캐릭터의 이름은 한자의 가차 문자(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그 단어의 발음에 부합하는 다른 문자를 원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빌려 쓰는 방법)처럼 나타냈습니다.


  대중문화,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차용, 복제하고 기호와 언어, 평면성이라는 새로운 구상회화를 지향하는 팝 아트의 특징에 걸맞은 21세기의 문자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젊은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산수화 속을 짚신을 신고 마구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문자도뿐 아니라 팝 아티스트 손동현이라는 화이트 큐브에 진열한 매스 미디어 캐릭터들도 소개합니다.


손동현 <노날두맥날두 선생상>


손동현 <막강이인조술액(슈렉)동기(동키)>


손동현 <영웅배투만 선생상>


손동현 <미래경찰로보갑선생상>


손동현 <악당족허(조커)선생상>



  오랜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듯 누런 종이 위에 반듯하고 정갈한 붓글씨로 쓴 <노날두맥날두선생상>, <막강이인조술액동기>, <미래경찰로보갑선생상>, <영웅배투만선생상>, <악당족허선생상> 이란 글자는 옛 그림의 제발(題䟦:제사와 발문) 같습니다. 글자는 거친 가문의 풍상에도 누대에 걸친 고옥(古屋)과 정절을 지킨 꼿꼿한 마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배트맨이라니요. 슈렉이라니요! 일단 손동현 작가의 빵빵 터지는 재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형식을 빌려와 서구화된 우리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신한 걸 너머,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판단이란 모든 경기가 끝나야 아는 거니까요. 아직 현재는 진행형입니다. 다만 바로크식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가발을 올린 귀족의 성에 울려 퍼지던 클래식이 TV 모니터 안에서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트롯과 '불후의 명곡'을 경쟁하고 있는 요즘, 문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저의 느리고 둔한 걸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번 더 그가 달리고 있는 산수화 속의 길을 따라가 볼 작정입니다. 깊은 숲 속 정자가 있다면 벗이 없어 마시지 못했던 이화주 한 잔을 그와 함께 나누겠습니다. 흥이 더해지면 가야금 연주 대신 빌리 진(Billie Jean)을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먼 곳에서 주소가 없는 편지가 도착한다면 님들도 핸드폰과 카드를 놓아두고 이 산수화 속으로 걸어오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 맞는 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