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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Mar 03. 2020

소소한 일상이 명화보다 아름답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12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올해 처음으로 사뿐 사뿐 쌓인 눈을 보았네. 눈은 환한 양달에 있지 않았어. 섣부른 발걸음이 없는 곳, 허세로 달뜬 목소리를 지우고, 평온과 고요를 쫒아 꾸역꾸역 걸음을 옮긴 이만 볼 수 있도록 으슥하고 그늘진 응달에 있었어. 고졸한 산사 담벼락 아래, 바람도 손 시려할 만한 뒤편 축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 심심한 참새만이 부리로 톡톡 인사하러 오는 그 곳, 넙적하게 다듬은 돌판을 가운데 두고 정으로 툭툭 두드려 만든 돌의자가 뱅 둘러 있었단다. 겨울 내도록 하루는 해님과 달님이, 하루는 참새와 까마귀가, 하루는 바람과 눈이 마주 앉아 스님이 내어주는 설록차 한 잔 마셨을까?


  느루야, 누군가와 차 한 잔 마시며 얘기하고 싶구나. 황태 해장국 시원하게 끓이는 법이라든가, 계란 껍데기를 빻아 넣어도 시들시들한 화초 살리는 법이라든가, 파프리카랑 삼겹살 세일하는 마트 소식이라든가, 새로 조성된 아파트로 이사 가는 윗집 집들이 소식이라든가 그런 무미(無味)한 일상의 얘기들을 나누고 싶구나. 창 밖, 마스크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도시의 군중 속에 거대한 외로움이 보여. 바이러스가 무서운 건 몸을 아프게도 하지만, 이웃이나 벗들과 나누던 소소한 일상들을 몽땅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참 소중한 일이구나 하는 아픈 깨달음이 오네. 오늘도 혼자 먹는 식탁인데, 맞은편 빈자리에 웃음을 초대하고 싶어. 가볍고 유쾌한 메뉴판을 열고 크게 읽어보자. 아, 이게 좋겠어. '그림 도둑'.


  느루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아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인간의 아들>이라는 작품이란다. 양복을 입은 깔끔한 신사가 서 있어. 중산모자에 하얀 셔츠, 붉은 넥타이, 얇지만 가볍고 따뜻해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어. 아마 저 코트는 100% 울로 만들었겠지? 유럽의 댄디한 신사들이 흔히 입는 것처럼. 하지만 너무나 평범해서 둘만 있어도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아. 익명적인 패션이라고 할까? 옷이 타인에게 날 드러내는 메시지 중의 하나라면 이 옷차림은 '송수신 차단'이라고 쓴 커다란 이모티콘 같아.


  르네 마그리트의 아버지가 벨기에에서 의류업을 하셨고, 어머니가 결혼 전 모자를 직접 만들어 판매했다는데 연유해 이 양복 입은 신사를 르네의 자화상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해 줄게. 오늘은 이 익명성을 이용해 그림도 훔치고 사랑도 훔친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 나오는 다양한 그림을 보여줄게. 이 영화는 그림 도난을 둘러싸고 백만장자쯤, 아니 억만장자쯤 되는 '토마스 크라운'과 보험회사 직원인 '캐서린 배닝'의 치열한 두뇌게임을, 로맨틱 추리극 풍으로 전개하고 있어. 진정성 빼고는 다 가진 남자 '토마스 크라운'이 박물관에서 그림을 훔친단다.

  모네의 이 그림. <석양에 싸인 베네치아의 성당>이지.


끌로드 모네 <석양에 싸인 베네치아의 성당>


  초기 인상파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야. 작품 속 일렁이는 파도를 손바닥으로 뜨면 손에 홍시가 터진 줄 알 거야. 캔버스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파도의 율동감으로 바다가 무한히 확대되지. 저기 보이는 건물은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기오레 성당인데 모네가 1908년,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붓을 들었다가 1912년에야 완성했다고 해. 그림을 훔친 토마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도난당한 모네의 그림 대신 피사로의 작품을 기증하는 퍼포먼스를 해. 그럼 피사로의 그림을 볼까?


까미유 피사로 <에라니 화가의 정원>

  

  피사로는 성질 까칠하고 고집 세기로 유명한 폴 세잔을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한 화가란다. 인상파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지. 품성이 따뜻해 음악계의 하이든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부드러웠어. 그에겐 예민한 더듬이가 있어 기존의 흐름과 다른 예술 변화를 섬세히 파악했단다. 때론 자신의 화풍을 버리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 그의 그림을 소개할 날이 올 거야.


   그림이 도난당하자 미술품 전문 보험회사 직원인 캐서린 배닝이 수사에 참여하게 돼. 그녀는 이 도난사건이 토마스 크라운의 '게임'이라는 걸 알아차려. 지능이라는 날카로운 면도날로 지나간 시간의 한가운데를 잘라 숨겨진 패스워드를 찾아내는 그녀는 그야말로 매혹적인 캐릭터 더구나. 게다가 지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가슴과 물고기 꼬리같이 매끈한 다리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 당당함은 시시껍쩍한 교양이라는 배를 저 베네치아의 바다에 처 박기에 충분했단다. 그녀의 뜨거운 눈빛은 '이글이글'이라는 부사로는 좀 빈약하지 않나 싶다. 그녀가 박물관을 돌아다닐 때,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몇 편의 작품도 눈을 행복하게 해 주었어. 한 번 보렴.


 

   이 조각상 누구의 것인 줄 아니? '발레'하면 떠오르는 화가, 에드가 드가가 말년에 조각한 작품 <14세의 어린 무용수>야. 드가는 심한 약시였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시력을 잃었단다. 하지만 잘 벼린 칼처럼 그의 시선은 깊고 날카로워 세상의 상투적인 아름다움은 단번에 베어졌지. 그는 자신의 눈을 시대를 기록하는 렌즈로 활용했단다. 도난당한 작품의 작가,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도 잠깐 나오지. 모네는 드가와 동시대를 살았고 드가와 마찬가지로 말년에 거의 실명했단다. 화가에게 '실명'이란 한계였을까? 영광이었을까? 보석보다 찬란했던 시절, 제국의 웅대한 드라마를 기록했던 페르시아 세밀화가들은 실명을 신의 선물로 알았단다. 세밀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이렇게 말하지.

  '그림이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결국 신이 본 그 아름다움은 화가의 눈이 먼 다음에야  화가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는 얘기지. 실명의 어둠 속에서 신의 광경이 드러날 때, 그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도록 평생 손을 연습하는 것이다.'


  하나 더, 강렬한 작품이 깜짝 출연하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아담과 이브>야. 타마라의 작품은 청동의 표면을 떠 캔버스에 눕힌 듯 하지. 천 장의 그림이 있어도 그녀의 특징은 뚜렷이 드러나.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었는데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유명인사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으로 이름을 얻었어. 이후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세계를 열었지.



타마라 드 렘피카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처럼 둘은 사랑에 빠졌어. 사랑과 감기는 숨길 수 없다고 하던가.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는 대사는 이미 상대의 깊은 곳에서 앓고 있는 연인의 안타까운 기침이지. 토마스는 그녀를 위해 그림을 다시 박물관에 돌려주려 해. 그리고 저 르네 마그리트의 양복 입은 신사를 이용하지. 모두가 토마스였고 누구도 토마스는 아니었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네.

 "넌 나에겐 아직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도 날 필요로 하지 않지.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난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수많은 신사가 중산모자를 쓰고 하얀 셔츠에 빨간 넥타이, 그리고 단정한 코트를 입었지만 그중에 캐서린이 길들인 토마스는 단 한 명뿐이지. 그리고 캐서린에게 있어 그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양복 입은 신사인 거야. 그 둘의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느루가 직접 보고 엄마에게 얘기해 주련.

  



  이쯤에서 이 영화의  OST였던 스팅(sting)의 '네 마음의 풍차(The Windmills of Your Mind)'를 들려줄게. 재즈풍이 많이 섞여 있어서인지 캐서린 배닝의 흔들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단다. '주머니 속에 쨍그랑거리는 열쇠처럼 낱말들은 당신 머릿속에 맴돌기만 하고 여름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린 건지. 당신 마음의 풍차 속에 들어있는 원처럼'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OST


  느루야, 점심을 다 먹었구나.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렸어. 어제 켜 논 TV를 아직도 끄지 않은 것처럼, 같은 소식, 더 어두운 소식이 엄마보다 먼저 소파에 앉아버렸구나. 엄만 여전히 혼자서 커피를 마셔. 하지만 얼마 오래지 않은 시간에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을 가게 되겠지. 카페에도 가겠지. 가서 지난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일상을 건지려 분투하며 양보와 희생의 그물을 던졌는지 말하게 될 거야.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공원을 달리거나, 직장 동료와 술 한 잔 나누는 풍경이 어떤 명화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비록 지금은 영화 속 그림을 말로 듣고 있지만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나면 함께 산사의 응달에 오도카니 쌓여있던 흰 눈을 보러 가자. 우리를 기다리려고 봄이 오는 것도 잊고 있던 흰 눈이 침묵으로 말하는 걸 귀 기울여 듣고 오자. 그리고 돌의자에 앉아 다람쥐가 깨물어 먹고 난 도토리 껍질에 숲이 키운 잎들을 우린 차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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