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무게 VS 영혼의 무게

피테르 데 호흐 <저울을 든 여인> VS 페르메이르 <저울을 든 여인>

by 안노라

삶이 공정할까요? 아마 "그렇다."는 대답을 얻기는 쉽지 않을 성싶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삶이 무수한 우연의 연속이고 그것은 공정이나 공평과는 무관한 질서 속에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어쩌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삶의 조건은 신의 영역이거나 아니면 그쯤의, 인간이 손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우연 속에서 의미를 찾고, 불합리 속에서 더 나은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요. 내게 주어진 숙명에 길들여지지 않고 '이상(理想)이라는 불'을 향해 '신념이라는 섶'을 지고 뛰어드는 걸까요.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높은 세금과 개신교를 탄압하는 에스파냐(스페인)의 오랜 지배를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1568년 오렌지공 빌렘을 중심으로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1581년 독립을 선언했지요. 하지만 오렌지공 빌렘이 암살당하고 각 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아수라를 통과하는 도중, 무수히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강국들의 힘의 헤게모니를 파악했으며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에스파냐가 영국에 패한 틈을 타 기어코 독립을 쟁취했지요. 독립 선언이 세계의 중심들에게 인정받기에는 1648년이 되어야 했지만 포기를 몰랐고 지치지도 않았습니다.



자연환경은 열악한 저지대였고 정치적 환경은 강대국의 식민지였음에도 그들은 이상을 향해 신념을 갖고 나아가 기어코 사상의 자유, 인권의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화국을 만들었지요. 제가 이 나라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의 오렌지색 유니폼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오렌지공 빌렘? ^^



이들은 17세기에 이르러 세계의 슈퍼마켓이 됩니다. 전쟁을 통해 축적된 막강한 해군력, 북유럽의 상권을 쥔 금융의 확대, 노련한 항해술, 직업 소명설을 받아들인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무장한 네덜란드 상인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기 시작합니다. 온갖 재화와 상품이 네덜란드로 모였지요. 제주도로 표류해 온 하멜이나 효종 때의 얀 야너스 벨터브레(박연) 사연은 위대한 역사책에 딸린 여행 부록쯤일 겁니다.



1200px-A_woman_with_a_pair_of_scales,_by_Pieter_de_Hooch.jpg 피테르 데 호흐 <저울을 든 여인, 1664>



17세기 황금시대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경건한 신앙심을 드러내고 소중한 가정을 장식할 작은 크기의 그림을 원했습니다. 운하가 아름다운 델프트엔 우리가 아는 두 명의 화가가 있지요. 피테르 데 호흐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입니다. 오늘은 이 두 화가가 그린 <저울을 든 여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피테르 데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는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술적 영감이라고는 청소기로 바닥을 샅샅이 훑어도 찾을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벽돌공이었고 어머니는 조산사였거든요. 네 명의 동생들은 모두 일찍 사망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스물세 살 이전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1652년 유언장의 증인으로 문서에 등장합니다. 1655년 경 화가 조합인 성 루카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이 1655년 이후 1660년 후반까지 그의 작품은 농밀하고 섬세한 최고의 기량이 보입니다.



군청색 모피 옷을 입은 <저울은 든 여인, 1664>을 보세요. 당시 준보석에 해당하는 귀한 청금석을 사용해 고급스럽지만 화려하지 않은 여인을 표현했습니다. 당시 청금석은 금의 무게와 같은 값을 치렀다고 합니다. 금의 무게에 기죽지 않는 그녀의 우아한 몸짓이 있기에 금화와 은화를 저울에 다는 그녀의 손이 경박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커다란 창문으로 눅진한 햇살이 들어옵니다. 햇살은 벽지를 화사하게 쓰다듬은 후 그녀의 흰머릿수건에 떨어집니다. 반사된 빛조차 그녀의 머리 위에서 정결하고 평온합니다. 의자에 박은 놋쇠 징은 드러날 듯 말 듯 빛납니다. 화면 앞 쪽의 카펫은 화가의 붓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은근히 나타냅니다. 실용적이지만 소박하지만은 않은 세련됨을 보여줍니다. 그녀 뒤편의 열린 문은 캔버스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나가는 확대와 이동을 암시하겠지요. 이어지는 시간과 그 시간을 다듬는 생활의 질서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작은 순간들이 구석구석 영롱하게 빛납니다.



woman_holding_a_balance_1942.9.97.jpg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저울을 든 여인, 1664>



기록으로는 같은 해에 제작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저울을 든 여인, 1664>입니다. 페르메이르와 반 호흐는 같은 루카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서로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어떤 대상이든, 어떤 소재나 주제이든 그걸 다루는 이의 역량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 그림은 어떠신가요?



페르메이르는 공간을 열지 않았습니다. 닫힌 벽면엔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옵니다. 얼마나 절묘한지 감탄사가 나옵니다. 그는 빛이 닿은 커튼을 그 빛의 명랑함만큼 투명하게 처리했습니다. 빛이 드나드는 커튼의 올올한 구멍 사이로 나비도 날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옆엔 무심히 보면 놓칠 뻔한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은 방 안의 남은 빛을 그러모아 조심스레 담고 있지요. 저울을 든 여인이 고개를 든다면 저 거울이 보이지 않겠어요. 거울이 모은 빛을 보게 될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 역시 파란빛 모피 웃옷을 입었습니다. 겨자색 치마는 데 호흐의 붉은 치마보다 훨씬 안정감을 줍니다. 치마의 뚝 떨어지는 주름이 그녀 얼굴에서 드러나는 고요함과 닮았습니다. 경건한 감정의 또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보석과 금화가 놓여 있네요. 하지만 전 그녀가 테이블 위의 무엇을 저울 천칭 위에 올려놓았는지 가끔 궁금해집니다. 확대를 해 보면 진주 같기도 하고 빛 같기도 한 동그란 반짝임만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 뒤에 있는 '최후의 심판'으로 시선이 갑니다.



페르메이르의 저울을 든 여인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 앞에 서 있습니다. 액자 프레임은 그녀의 가슴께에 머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의 영혼이 뒹구는 인간의 아수라는 부분 부분 가려졌습니다. 영광과 무한한 권위의 예수님만이 눈부신 빛을 품고 여인의 머리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볼 뿐입니다. 그녀는 삶의 무게와 영혼의 무게를 달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부와 도덕을 올려놓고 균형을 잡으려 했던 것일까요?


두 화가의 저울 위에는 각자의 예술이 올라갔겠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가득한 빛을 봅니다. 제 가정에 무엇을 담을지, 저 저울처럼 삶과 영혼이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늘 질문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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