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록 <설중향시> vs 랭부르 형제 <베리 공의 호화로운 시도서-2월>
우리말은 소리가 감정을 갖습니다. '수북수북'하고 소리를 내면 벌써 마음이 두터워지고 '소복소복'하면 가슴에 토끼 발자국이 납니다. '둥둥둥'하면 기대에 찬 눈이 먼 곳을 향하고 '동동동'하면 댓돌 위의 신발이 내려왔다 올라갔다 합니다. 입술을 오므려 '고요'라고 소리를 내면 갑자기 세상이 그리도 조용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용'처럼 공간이 작지 않고 '고요'는 아주 큰 공간에 알맞습니다.
전 겨울의 '고요'가 좋습니다. 소리를 묻고 형체를 지운 뒤 두터운 적막만을 남겨 놓을 때, 겨울은 비로소 고요합니다. 한 밤중 가로등 아래 내리는 눈을 볼 때라든가, 북풍의 회초리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를 볼 때 고요합니다. 고요는 한없이 쓸쓸하면서 한없이 충만합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몇 안 되는 단어입니다.
이번 주는 고요한 겨울을 가져왔습니다. 이형록(李亨䘵, 1808~ ?)의 <설중향시 雪中向市>입니다.
시야가 멀리멀리 나아갑니다. 옅은 담묵으로 바림질한 하늘은 눈 내린 뒤의 적막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겨울의 습기가 느껴집니다. 하늘과 이웃한 둥근 산에는 볼썽사납게 난 수염처럼 듬성듬성 마른나무가 서있고 산 아래 엎드린 마을은 등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마을 앞, S자로 휘어진 시내를 따라 눈을 앞으로 당기면 한 무리의 장꾼들이 보입니다. 나귀는 등에 실은 짐이 무거운 모양입니다. 다리를 잔뜩 구부렸습니다. 붉거나 갈색으로 나귀의 털빛에 변화를 주어 생동감을 갖게 한 것은 화원 이형록의 뛰어난 회화 실력이겠지요?
나귀완 다르게 무엇 때문인지 소는 빈 안장만 얹었네요. 그 뒤를 지게를 진 장꾼이 물미작대기를 들고 조심스레 걷고 있습니다. 장꾼들의 옆과 뒤에는 갓 쓴 양반들과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아마 장꾼 일행을 동무 삼아 길을 나선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길에 대해 잘 아는 장꾼들이 눈 덮인 방죽길을 가는 백면서생의 길잡이로는 제격이겠지요. 방죽길 앞으로 추위에 떨고 있는 잡목림들이 추운 계절을 더욱 실감 나게 합니다.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눈 길을 가는데 수다스럽지 않습니다. 화면이 고요합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장을 도는 장꾼들의 삶이 습기 찬 공기와 몸을 비틀며 추위를 버티는 잡목림과 생계를 위해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 나귀의 등에 얹혀 있습니다. 고단하고 쓸쓸해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겨울에 지지 않는 서민들의 의지 또한 굳세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겨울 버전 같지 않습니까?
이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화원 이형록은 화원 집안 출신입니다. 그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작품도 <설중향시> 외엔 책거리 병풍뿐입니다. 안타깝지요. 이형록이 활동하던 시기는 대략 순조 때입니다. 민란이 많았던 이 시기, 인간 세상은 참으로 시끄러웠으나 커다랗고 묵직한 자연은 고요한 겨울을 보여 줍니다.
서양에도 이와 같이 고요한 겨울이 있을까요? '이 작품은 어떨까' 하며 보여 드립니다.
서양의 중세는 신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자구(字句)를 보석인 양 광을 칠해 닦고 문질렀지요. 중세 유럽인들은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성당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유하고 명예가 높은 이들은 그 기도에 필요한 시도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곧 신앙의 등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호화롭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신앙이 최고등급임을 나타내는 증거였지요. 시기에 따라 결혼 예물로 특별 제작하기도 했고, 가문의 품위를 드러내는 자랑거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베리 공은 프랑스 존 2세 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광대한 영토가 있었지요. 그의 취미는 글을 모으는 것이었고 예술가들을 후원했습니다. 이 <베리 공의 호화로운 시도서, 1412~1416>는 플랑드르 지방의 랭부르 형제 Paul, Jean, Herman이 그렸습니다. 베리 공이 페스트로 인해 사망하자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던 것을 후대의 화가가 완성해 전해졌습니다. 일 년 12개월의 별자리와 귀족의 성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그린 세밀화입니다. 도상해석학을 개척한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시도서 2월이 '회화 역사상 최초의 설경(雪景)'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럽의 겨울, 그 눈이 내린 고요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귀엽습니다. 웃음이 나오네요. 아마도 화가는 투시도처럼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생각에 문을 없애버린 듯합니다. 울타리를 친 작은 농장의 모습입니다. 양 우리엔 양들이 빼곡합니다. 농부가 조금 전 곡식을 뿌려 놓았을까요? 비둘기들이 낟알을 쪼아 먹고 있습니다. 오른쪽엔 눈을 뒤집어쓴 4개의 벌집이 있고 비둘기장 앞에는 두건을 둘러 쓴 사람의 맨다리가 추워 보이네요. 울타리 밖은 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과 장작을 싣고 이웃마을로 향하는 남자가 보입니다. 집 안에 한 명의 여인과 두 명의 젊은이가 불에 몸을 녹이고 있습니다. 성기가 드러나게 다리를 벌리고 있는 걸 보니 내리는 눈에 홈빡 젖었나 봅니다. 벗은 속옷이 벽에 걸려 있네요. 자신의 노동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들의 하루가 그림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전 이 그림 속, 저 철회색빛 하늘이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그 하늘 아래엔 새카맣고 상처난 발바닥으로 걸어온 순례자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것만 같습니다. 헤지고 가난한 마음이 뾰족한 교회의 첨탑에 등불을 켜겠지요? 고요한 이 겨울, 그 빛이 제게도 찾아와 주기를...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슬픔을 묶은 짐이 있을 것입니다. 두 그림을 보는 오늘은 저 나귀의 등에 슬픔을 살짝 얹어 보낼까요? 방죽길을 지나, 이웃 마을을 지나, 고요가 쌓여있는 광활한 벌판에 다다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