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벨로스 <뎀시와 필로> vs 토마스 에이킨스 <카운트를 세다>
겨울입니다. 눈이 내리네요. 처음엔 보푸라기처럼 가볍더니 지금은 제법 풍성하고 둥글어졌습니다. 방향 없이 떨어지는 눈을 나무는 미동도 않고 받아 냅니다. 여름의 꽃, 가을의 잎들이 그리워 눈송이로 꽃과 잎을 만들고 싶은 걸까요? 설화(雪花)는 나무에게 주는 겨울의 선물입니다.
인생의 나무에도 설화가 필까요? 선물처럼 풍성하고 둥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날까요?
지금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대중이 선망하는 직업이고 되고 싶은 희망이지요. 광고 한 편에 수십 억이 오가고 축구 선수의 몸값이 몇 백억이니까요. 물론 그들이 쉽게 얻은 건 아니지만 가히 천문학적인 행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 사회가 낳은 신 종족이지요. 그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래와 자본을 선두해 갑니다. 하지만 100년 전에는 주로 가난하고 선택지 없는 사람들이 꿈꾸는 희망의 끈이었습니다.
예술에 종사하는 예인(藝人)을 기술자, 좀 후하게 쳐 장인(壯人) 정도로 생각했으니까요. 모차르트도 주방에서 일하는 시종보다 조금 나은 보수를 받았습니다. 스포츠는 종목에 따라 극심한 편차를 보였습니다만 권투는 그중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택하는 스포츠였지요. 자신의 몸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 세상이 지르는 매서운 스트레이트를 견딜 맷집이 길러진 사람, 부정한 훅을 피할 수 있는 기민하고 눈썰미 빠른 사람, 기회를 노리다 한 방의 어퍼 컷을 날릴 투지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사각의 링 위에 젊음이 부서졌고 붉은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들은 모두 인생의 꽃을 피우려고 했지요.
1923년 9월 14일 미국 헤비급 챔피언 전의 장면을 조지 벨로스(George Bellows, 1882~1925)가 그렸습니다. <뎀시와 필포, 1924>입니다. 한 선수가 링 밖으로 떨어져 나갔네요. 그는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는 미국 헤비급 챔피언 잭 뎀시입니다. 링 안에서 무서운 한 방을 날린 야생의 들소는 라이벌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필포입니다. 두 다리로 버티고 선 필포는 뎀시의 턱에 전 체중을 실은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야말로 볼썽사납게, 챔피언 뎀시는 링밖으로 떨어졌지요. 이 경기에서 뎀시는 2번, 필포는 9번이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링 밖으로 나가떨어진 뎀시는 포기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다시 일어나 기어코 챔피언 벨트를 지켜 냅니다. 최종 승자가 되었지요.
다시 한번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관중의 눈높이에서 떨어진 뎀시를 말입니다. 뎀시가 떨어지자 관중들은, 아니 나는 그를 다시 링 안으로 힘껏 밀어 올립니다. 관중들도 나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요. 한마음으로 "일어서.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을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 내 귓가에 소리쳐 주길 바라는 말이지요.
"일어서.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화면 왼쪽의 대머리 모습으로 자신을 이 작품 속에 녹여낸 뉴욕의 조지 벨로스는 특이하고 드문 경력을 가진 화가입니다. 그는 학생 때 야구와 농구 선수였고 운동을 사랑했지요. 그럼에도 학생들이 발행하는 연감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고 잡지사 삽화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체능 모두 탁월한 재능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벨로스는 화가의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는 스포츠를 한 컷의 영화, 서사가 있는 드라마로 그려냈습니다.
링 레퍼리(referee)는 한쪽 무릎 꿇은 선수에게 일어나라는 주문을 욉니다.
"하나, 둘, 셋..."
주문은 여덟을 셀 동안까지만(당시의 규칙) 유효합니다. 무릎을 꿇은 선수의 대퇴골과 허벅지에는 뼈와 근육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무너지는 근육의 희미한 떨림까지 전해질 정도입니다. 오래고 혹독한 단련이 지방이라는 여유를 전혀 허락하지 않은 게지요. 그렇지만 그의 얼굴과 귀는 붉게 물들었습니다. 때리고 맞고 치고 피하는 경기의 과정이 힘에 부치고 괴로웠음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초록 끈을 두르고 두 다리를 버텨 굳세게 선 선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여유롭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있네요. 아마도 상대방 선수가 일어선다면 맞설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길 자신도 있어 보입니다. 그에게도 경기란 이기고 지는 승패가 분명한 전쟁이니까요. 또 어쩌면 가장 정직한 몸과 몸의 대결이니까요.
관중들의 시선이 링 안으로 쏟아집니다. 승자와 패자.
무릎 꿇은 선수는 일어설 수 있을까요?
"일어서.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말해 줄까요?
토마스 에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는 의대를 진학했다 스물두 살에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피부 밑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표정 속에 숨은 감정을 알아차리는데도 탁월했습니다. 그는 웃음 뒤에 감춘 비애를, 권위에 포장된 비겁을, 화려한 문명 뒤에 질식해 가는 자연을 그렸습니다. 타협에 굼떴고, 이기(利己)에 어둡고, 말수가 적었지만 저 깊은 곳, 인간의 몸 안에 깃든 정신에 밝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 굻은 선수에게 우리 대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에겐 아직 카운터가 남아 있어."
12월 중순이어서 일까요?
올해는 한쪽 무릎을 꿇고, 지치고 가쁜 호흡으로 붉은 귀를 만지고 있었나 싶습니다. 승자와 레퍼리의 다리 사이로 코치가 보이네요. 힘을 내라는 사인이겠지요. 2022년의 저를 돌아봅니다. 가만 토닥여 줍니다.
"너에겐 아직 카운터가 남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