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자나 수쉬 - 김해인님이 notefolio magazine에 올린 글
다음 주부터 여름 휴가인 분들이 많으시지요? 20여 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저는 아직도 여름 휴가의 달콤함을 잊지 못합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이미 마음이 붕 뜨거든요. 딱 이번 주의 마음 상태입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떠드는 수다는 '솔'로 시작해 '시'로 끝나는 옥타브 높은 노래였습니다. 아쉬운 7월이 가고 있습니다. 참 빠른 우리의 시간, 알뜰히 챙겨야겠습니다.
시네자나 수쉬(Snezhana Soosh) 그림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김해인님이 notefolio magazine에 올린 글입니다. 휴가 보내기 전, 즐겁고 가볍게 감상하세요. 검사받느라 이곳저곳 들락날락하는 것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엔 제 글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
아빠가 내 세상의 전부, by. 시네자나 수쉬(Snezhana Soosh)
Sitting on Papa's shoulders makes you feel tall.
아빠랑 같이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Even if he's bigger, he gives you all the space you need.
아빠는 아주 커다랗지만, 나를 위해서라면 작아질 수도 있어요
He crouches down and relaxes his fingers to put your hair up for the show.
아빠는 나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 해내요. 머리 땋아주기 같은 것도요.
어릴 적, 하루 일과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은 퇴근하는 아빠를 맞이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오후 5~6시쯤이면 엄마의 도움을 받아 아빠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삐삐를 사용했던 시절이었는지, 최초로 핸드폰이 개통된 시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 시까지 역으로 나와!”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면 반짝이는 눈으로 시계를 바라보다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아빠는 역 개찰구부터 나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뛰어왔다. 퇴근한 아빠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 최고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There's always time for tea, even when he's got a load of work to do.
아빠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게 시간을 내 주어요.
When the waves are too rough, he finds a way to bring the sea to you.
내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아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줘요
It's always worth getting stuck for you.
아빠랑 같이 하면 뭐든지 재미있어요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빠와 함께 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엄마다리를 베개 삼아 동화책 속 글자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읽는 엄마의 입술을 듣고 보는 일도 좋았지만, 아빠가 그린 그림이나 시를 읽는 일을 유독 좋아했었다. 나는 아빠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아빠는 내가 하는 질문에 모두 답해주는 척척박사인 데다 쉬는 날이면 집안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 만큼 손재주가 좋았고, 그림과 시까지 잘 썼으니 말이다.
He teaches you the coolest tricks.
아빠는 내게 멋진 속임수를 알려줘요.
He keeps all the monsters away.
아빠는 항상 나를 지켜줘요. 학교에서 괴롭히는 못된 애들이나 침대 아래 숨은 괴물한테서요.
아빠는 엄마라면 절대 사주지 않을 맥도널드 어린이 버거 세트를 몰래 사주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한 장난감 가게에서 ‘토토’를 사주었다. 토토는 5천 원짜리 곰돌이 인형인데, (그 당시에는 비싼 가격이었다) 어찌나 첫눈에 시선을 강탈당했는지 첫 만남에서 토토 앞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 증언에 의하면, 나는 무언가 갖고 싶으면 ‘사줘’라는 말 없이 계속 물건만 바라봤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가 “이거 사줄까?”라고 물으면 항상 “아니요”라고 대답하고는 인형 앞을 떠나지 않곤 했다.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을 ‘바라보기 수법’이 아빠한테는 통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모은 인형이 꽤 됐다.
He keeps his belly full so it's always nice and warm.
아빠의 품은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해요.
He tells and retells your favorite stories just to hear you laugh.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계속해주어요
나는 아빠가 TV를 볼 때면 그 품을 비집고 들어갔고, 아빠가 술에 취해 춤을 추면 따라 춤을 추었다. 태어나 처음 곱창을 맛본 것도 아빠와 함께였다. 어느 시장인지 기억나질 않지만, 곱창집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아저씨들뿐이었던 기억만 있다. 끽해봤자 5~6살쯤 됐던 내가 처음 곱창을 맛보고서는 “아빠, 곱창은 껌인가 봐요. 씹어도 씹어도 계속 씹혀요. 언제 삼켜요?”였다고 한다. 언젠가 아빠가 수술을 했던 적에는, 아빠가 죽는 줄 알고 오열한 적도 있었다. 5살 인생처음으로 ‘베갯잇을 물고 운다’는 말을 실감했던 사건이다.
He helps you face your fears.
아빠는 날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남들이 이상하게 보더라도요.
He doesn't go easy on you, because he knows you're a smart cookie.
아빠는 내가 똑똑한 아이란 걸 알아서 절대 봐주지 않아요.
그렇게 학창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나를 구성하는 세계엔 아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 이상 TV를 보는 아빠의 품에 안길 수 없지만, ‘토토’는 여전히 침대에 자리하고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곱창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 즐겨 찾는 장소가 광화문의 서점인 것도, 삼청동과 인사동을 걷는 일을 좋아하고, 혼자 사유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빠의 영향이 크다. 아빠는 여전히 생일을 맞이하는 내게 ‘아빠가 앞으로 돈 많이 벌면 용돈 더 많이 줄게’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앞으로 아빠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참 그 말이 슬프고 사랑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He comforts you, even if he has few words.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아빠는 나를 위로해 줘요.
His heart breaks when he has to leave you for some time.
그래서 아빠가 떠날 때면 너무 슬퍼요.
모든 그림 출처: SOOSH
그리고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전철역으로 아빠를 마중하러 나가던 때의 설렘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의 감정으로 바뀌었고, 아빠의 그림과 글을 보며 자란 내가 이제는 내가 쓴 글을 아빠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내 딸이긴 하지만 잘 쓰네, 킁!’하는 아빠의 말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글이 최고가 되어서, 나는 태어나 죽도록 욕을 먹은 첫 논문의 초안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아빠의 글을 통해 아빠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아빠’를 목격했다면, 아빠도 마찬가지로 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목격했을까? 아빠는 나를 구성하는 세계에 아빠가 녹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더 이상 아빠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빠가 아닌 누군가가 내 세상의 전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게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음을 시네자나 수쉬(Snezhana Soosh)를 통해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