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림 2, 팀 버튼의 배트맨
휴가기간 동안의 자잘한 영화 속 그림 이야기, 이번에는 18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을 들고 왔습니다. 잭 니콜슨이 조커를,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을 연기했습니다. 이제는 아련해진 팜므파탈 킴 베이싱어가 배트맨의 여자친구 비키로 나왔지요.
"뛰어난 창작자는 절대로 간단히 인간을 묘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서로 모순된 양면을 한 몸에 갖추고 있는 것이 보통이라서, 그런 불균형을 묘사하지 않고는 한 인간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
아마도 그래서 배트맨과 조커는 등을 댄 이란성 쌍둥이인가 봅니다. 세상의 선과 악, 인간의 양면성을 두 캐릭터가 선명히 보여주었지요. 배트맨이 강해질수록 조커가 더 빛난다는 이 아이러니가 현대의 또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부패와 범죄의 도시 고담시(Gotham City)는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을 땄다고 하지요. 워낙 유명한 영화니 줄거리를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라는 제 페이지에 계신 분들이니, 그림은 조금 있다 설명 드리고 먼저, 좀 색다른 깨알상식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지구의 경찰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은 헐리우드에서 '히어로 집성촌'을 만들었더군요. 우주의 침략자들이 지구에 당도하자마자 전(全) 마블 히어로들이 일시에 모이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역시 물량으로는 미국을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히어로들도 처음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셋이었습니다. 원조 마블 히어로라고 볼 수 있지요. 불안정했던 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탄생했습니다.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미국을 지키려고요.
슈퍼맨이 제일 형이예요. 1938년 6월, 두 고교 친구인 조 슈스터와 제리 시걸이 탄생시켰습니다. 배트맨은 둘째입니다. 1939년 5월, 밥 케인이 그림을 그렸지요. 항상 밝고 신사적인 슈퍼맨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경쟁자가 있는 둘째는 역시 약간 어둡고 음울합니다. 슈퍼맨이 태양의 아들이라면 배트맨은 어둠의 전령입니다. 어쨌든 둘은 DC 코믹스의 간판스타로 미국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어요. 그런데...
원더우먼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3남보단 2남1녀가 더 아름답다 여겨 만들진 않았을텐데...
그녀는 윌리엄 몰턴 마스턴(Williarm Moulton Marston, 1893~1947)이라는 하버드 출신의 심리학 박사가 아버지입니다. 마스턴은 시나리오 작업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었는데 1940년 DC코믹스의 편집자문을 맡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연일 미국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전운이 감돌았지요. 힘은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게다가 좀 전 미국의 젊은이들이 슈퍼맨과 배트맨에 열광했다고 했잖아요. 그 영향으로 사회가 남성중심화 되고 폭력성이 증가하자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어요.이때 마스턴은 여성 히어로를 만듭니다. 그가 평소에도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 지지자였거든요.
마스턴은 요즘 범죄수사에도 사용하는 '거짓말 탐지기'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원더우먼의 무기 중 하나인 '진실의 오랏줄'이 어떤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이해하시겠지요? 고문이나 상해를 가하지 않고 올가미만 두르면 진실을 말하게 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또 어찌된 일인지 원더우먼이 우람하고 거친 상대를 집어 던지기만 하면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경쟁이라도 하듯 어떻게 하면 더 잔혹하게 묘사할까 폭력적인 장면이 넘쳐나는 요즘, 아직 인간에 대한 희망을 남겨 놓은 것 같아 그립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커가 고담시의 미술관이자 레스토랑인 곳에서 그림들을 부수는 장면을 보여드릴게요. 건너 뛰지 마시고 꼭 보세요.^^ 그림 이해에 필요합니다.
세상을 적대시하는 조커는 절대적이고 순수하게 악합니다. 그는 연민이나 동정없이 죽이고 부수고 훔칩니다. 흡사 밧데리처럼, 고담시의 악을 한 몸에 모아놓은 인물이지요. 누군가 악이 필요하면 그에게 접속하면 될 듯, 폭력적이고 야만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폭력의 서사는 사회가, 부모가 그에게 부여한 것이지요.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악인입니다.
그는 기존의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미술관에서 드가, 베르메르, 르느와르, 렘브란트 등 고전 명화에 페인트을 칠하고 난도질하고 부수는 건 기존 가치에 대한 학살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게 렘브란트의 작품이군요.
처음부터 '왕'이라는 주인을 거부한 땅이었던 네덜란드는 누구나 자유롭게 살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근면, 성실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지배적인 곳이었습니다. 왕이라는 1인 중심이 아닌 '공화국'이라는 다수가 중심이었던 나라였지요. 자유롭고 진취적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상공업을 발달시켰습니다. 청어를 시작으로 동방무역을 가속화했던 네덜란드는 17세기, 전 세계에 물품을 공급하는 세계의 마트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물량이 지속적으로 채워졌고 진열대에 없는 제품이라고는 천국의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부는 집단 초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집단 초상화는 네덜란드만의 회화입니다. 당시 길드 조직이 활성화 되었을 때니, 이 직물조합 위원회의 위원들은 시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귀족들이 향유했던 특권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초상화는 왕이나 귀족들만 가능했으니까요. 초상화 가격이 1,000만원이라면 열 명이 백만원 씩나누어 내는 구조입니다. 그들은 치룬 값만큼 동일하게 기품있고 위엄있는 자신의 모습이 나오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화면의 일정부분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소 연극적인 포즈로 구성될 수 밖에 없었죠.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는 그들의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은 네덜란드가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시기에 명성을 높였던 화가였습니다. 그는 자부심이 강했고 고급스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사치스러웠다는 표현보다는 풍취가 고아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속한 것을 혐오했으니까요. 하지만 절약과 그림 창작에 대해 타협을 몰랐던 그의 말년은 모든 걸 잃고 가난하고 초라한 신용불량자, 파산자 신세가 됩니다. 렘브란트의 또 다른 그림 한 점 볼까요.
렘브란트가 사망한 해의 작품입니다.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다 잃어버린 자신의 쓸쓸함을 그는 숨기지 않습니다. 피부의 늘어짐, 주름, 약간 붉은 코, 허름한 옷까지 어느 것 하나 꾸민 기색이 없습니다. 그는 눈 밑의 주름과 입술의 일그러짐으로 고통과 슬픔을 담을 줄 아는 화가였습니다. 렘브란트의 위대한 점은 일상을 숭고함으로 끌어올린 그 처연함에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창작에 있어 "잘" 이라는 부사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느끼게 하는 위대한 화가입니다.
이제 보드랍고 따뜻한 색조로 삶을 윤기나게 하는 르느아르의 작품을 볼까요?
르느아르는 결이 다른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모네가 빛의 순간을 잡으려 했다면 르느아르는 감정의 순간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것도 보드랍고 따스한 순간을요. 그는 가난한 무명의 시간을 보낼 때에도 어두운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르느아르는 입 안 가득 머금은 바람으로 먹구름을 후~ 하고 날린 뒤, 빈 하늘에 꽃을 심는 화가였습니다. 보퉁이 하나 옆구리에 끼고 시골에서 상경한 시골 처녀는 그의 캔버스에서 노총각과 수줍게 춤을 추었습니다. 푸른 허리띠를 두른 소녀는 그늘진 꽃밭에서 마지막 남은 햇빛과 놀았습니다. 물빛이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해변에서 청년들은 먼 바다를 얘기했습니다. 그는 삶을 순하고 어여삐 채색했습니다.
두 소녀는 점잖은 아저씨와 요리 솜씨 좋은 아내가 있는 가정의 벽에 걸릴 것입니다. 그럼 이 두소녀를 꼭 닮은 어린 자매들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엄마, 저 아이는 제 동생 같아요." 라고요.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달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때, 어른들은 알 수 없는 동심(童心)의 언어로 속삭일 것입니다. 푸르고 분홍인 자신들의 옷을 지은 르느아르의 염료에는 행복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럼 소리가 멈춘 듯 고요한 세계를 만들었던 베르메르의 작품을 볼까요?
요하네스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렘브란트와 동시대인 17세기, 고요한 화가입니다. 우리에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화가이지요. 그의 고향인 델프트는 물의 도시로 상공업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그는 화상이었던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화상을 경영하고 미술 감정가로서도 활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화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초상화도 없습니다. 35점 정도의 작품이 남아있지요. 깊고 부드러운 색채와 은밀하고 상징적인 구성이 특징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빛은 먼 곳에서 옵니다. 꿈결처럼 살며시 미끄러지지요. 커튼에서 빛이 새어 나옵니다. 빛을 받아 보석함 위의 진주가 은은히 반짝입니다. 금은 천박하게 보일 때가 있지만 진주는 단 한번도 속세에 자신의 기품을 팔지 않습니다. 커튼이 쳐진 것을 보니 그녀가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는거군요. 귀한 것을 재어보고 있는 걸까요? 예전엔 화폐보다 금이나 보석이 더 안정된 통화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저울 위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녀가 저울에 올린 것은 아마도 세상의 기준으로는 잴 수 없는 것이었나 봅니다.
베르메르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캔버스에 남겨 놓고 슬쩍 자리를 비웠습니다. 빈 자리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남아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고개를 돌려 우릴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하염없이 젖어 있으니까요.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걸려있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을 보고 조커가 "1달러야."라고 말하지요. 이건 미국 1달러 지폐에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들어 있기 때문이예요. 조커는 위의 모든 그림에 페인트를 퍼붓고, 난도질을 하지만 딱 한 그림 앞에서 "이건 맘에 드는 걸. 내버려 둬."라고 말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고기와 남자 형상, 1954>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1,2차 세계대전 때 십대와 삽십대를 보낸 영국의 화가입니다. 누구보다 인간의 광폭함을 보아버린 시대이지요. 그는 인생을 가벼이 여겼고 육체적 쾌락에 집착했습니다. 술, 도박, 섹스, 매춘은 그가 그린 삼면화처럼 늘 붙어 다녔습니다. 또 동성애자로서 사회적 한계에 부딪쳤지요. 하지만 그는 강한 남자였던 것 같아요. 그의 그림에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신의 길을 관철시키니까요.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그의 그림에도 기회가 찾아 옵니다.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그때 알랭 조프로이(Alain Jouffroy, 1928~2015)라는 비평가의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꿉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미래를 묘사한 이 작품은 의심할 나위없이 비엔날레를 통틀어 단 하나의 진정한 발견이다." 현실보다 더 큰 공포를 선사하는 그의 그림은 현대의 좌절과 폭력과 음울함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떠 오릅니다.
조커는 왜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을까요? 팀 버튼 감독은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을 본 것일까요? 정육점의 갈고리에 매달린 육중한 살덩이, 그 살과 뼈 사이에서 아무리 자신에게서 멀리 달아나려 해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요.
일그러진 삼면화를 보며 내 안의 욕망을 들여다 봅니다. 조커가 숨쉬고 있습니다. <배트맨>은 헐리우드에서 출생했지만 오히려 누벨 바그의 프랑스 정신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마치 고향은 있으되 주소를 갖지 못한 현대인들처럼...
등 근육 조차도 연기를 한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2019년 <조커>입니다.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그의 연기를 소개하며 인사드립니다. 남은 휴가 즐겁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