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리다 파밀리아.
사그리다 파밀리아 앞 아파트
이레네 할머니의 집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대성당이 지어지는 걸 보았다. 왜소하고 늘 먼지가 잔뜩 먹은 남루한 옷차림의 안토니오 가우디를 할머니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가 영원히 성당에 잠드는 날도 성당 앞을 지났다. 그렇다고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감성적인 대상만은 아니었다. 매해 찾아오는 많은 여행객 때문에 불편을 만드는 보통의 존재이기도 했다.
차가운 바람은 거리를 누볐고 따스한 햇살은 보드라운 숨결로 두 뺨에 내리던 어느 가을날, 할머니 집에 저녁 초대 받아 싸구려 와인을 한 병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비좁은 계단을 올라 집안으로 들어가니 모두 모여있었고 할머니는 커다란 펜에 빠에야를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 이레네 부모님, 이레네 가족, 여동생 가족까지 총 10명이었다. 할머니는 동양에서 온 총각을 환하게 맞아주셨다. 성당 때문에 자신의 집에 동양 손님이 찾아왔다며, 성당도 가끔 좋은 일을 한다고 한 참을 웃으셨다. 창문 밖으로 파밀리아 대성당이 두 눈에 잡혔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
1883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미완성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 가우디는 1926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성당에 인생을 받치고 성당에 안치되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다른 유럽의 성당들과 조금 다른데, 유럽의 많은 성당이 성모 마리아를 위해 건축되었다면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요셉, 마리아, 예수의 가족을 위한 성당이다.
빠에야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곳에 있는 커플들은 전부 부부가 아니었다. 부모님도, 여동생도, 이레네도 모두 연인 사이였다. 어머니는 이혼 후 남자 친구와 할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었다. 이미 자녀가 두 명이나 있지만 여동생 크리스티나는 남자 친구 다비드에게 우린 언제 결혼하냐며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쉽게 말하자면 모두가 동거인이었다.
당신의 가족은?
가족 ‘Family’의 어원은 라틴어 ‘Famulus’에서 유래했는데 하인, 노예를 뜻하는 말로 로마시대가 되어서야 ‘Familia' 한 집안이란 뜻으로 쓰였다. 생존 노동력이 중시되었던 시대에는 가장이 권력을 가진 가족형태가 필요했고 결혼이란 제도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가족의 의미와 많이 다르지만, 우리네 가족의 형태와 의미는 어떤 걸까? 결혼과 출산을 통해 법적 관계로 맺어진 형태만이 가족일까?
이미 동성이 결혼한 가족, 부부로만 이루어진 2인 가족, 비혼의 1인 가족, 반려동물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공존하는 지금이지만, 아직도 전통적 가족이란 관념이 머릿속에 꽈리를 튼 나에게 이레네 가족은 부러움을 자극하는 동시에 질문이 꽃가루가 되어 콧잔등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할머니가 왜 바르셀로나에 혼자 왔냐고, 사랑하는 이를 아직 만나지 못했느냐며 내게 물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같은 질문이었지만, 결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해줘서 고마웠다. 결혼을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결혼이 싫은 게 아니라 관습적인 절차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누구를 위한 결혼인지 늘 의문이 컸던 때였다.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 뒤로 해가 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실루엣이 보였다. 특별할 건 없지만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가족처럼 그들에게 대성당은 그런 존재처럼 보였다. 가족 형태가 어떻건 결국 사랑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처럼
가우디는 몇 번의 사랑에 실패를 한 뒤 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성당을 만들었다. 그가 유독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모든 걸 쏟아부은 건 그가 평생 갖지 못한 가족에 대한 미련 혹은 가족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을까?
당신의 가족은 어떤 색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