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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 빠진 Mar 03. 2020

어쨌든, 봄은 온다

이탈리아 알프스  트래킹




illust by_ nasa 빠지ㄴ


이탈리아 알프스 트래킹.1


- 걷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밑 돌들이 신발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두 눈에 잡히는 풍경은 오직 시계추처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내 두발과 석공이 쪼갠 듯한 길 위 돌들뿐이었다. 12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발밑 풍경만을 응시하며 걷고 또 걸었다. 정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왔고  내 의지와 달리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누가 보면 정신병자 라해도 아닌 몰골을 하고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발을 헛디디어 어깨가 무너지고 나서야 두 발이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기암괴석과 돌산뿐이었다. 돌산의 봉우리들은 뾰족하게 하늘 향해 우뚝 솟아 있는데, 크고 낮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그 모습이 거대한 유럽 중세 성벽 같았다. 지는 해가 암벽에 비치면서 돌산은 붉게 변했다. 이 기이한 풍경은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작품 ‘몽유도원도’처럼 몽환적이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절경. 풍경을 감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시 걸어야만 했다. 봉오리 고개를 넘어야만 밤을 지낼 산장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마가 사랑한 천국 돌로미티 


알프스 동쪽 끝자락 자리 잡은 ‘돌로미티(Dolomites)’. 기괴 암석과 수직 돌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알프스다. 설산과 초원이 아니라 바위산과 초원으로 이루어졌는데, 지질학적 가치가 높아 2009년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돌로미티에는 알타비아(Alta via) 라 불리는 산악 트래킹 코스 10개가 있다. 우리말로는 ‘높은 길’이란 뜻이다. 유럽에서는 알타비아를 ‘악마가 사랑한 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돌이 많고 산세가 험해 산을 탐하기 어렵지만, 알타비아가 보여주는 극적인 아름다움 때문 이란다. 나는 수 일째 이 길을 이유 없이 걷고 있었다.


 알타비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인간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전화도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다. 오직 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곤 산속에 숨어있는 산장뿐이다. 스마트폰을 볼 일이 없어지자 그것은 그저 무건운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뚝딱이 카메라와 다를 게 없었다. 기계 따위에서 벗어나자 방향을 찾는 건 본능이, 길을 찾는 건 누군가 표시해 둔 이정표와 종이 지도가 대신했고  대화는 문자(깨똑)가 아닌 귀와 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몸은 자연을 감각했고 감정은 사람을 향했다. 비록 죽을 거처럼 몸은 힘들었지만,  인간의 감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네가 싫다해도 봄은 오더라


매일 이른 아침에 걷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오르고 내리고 걸었다.  온종일 걷다 보면 정신은 진공 상태를 지나 ‘멘붕’ 상태에 도달했다. 그때마다 알타비아는 연인이 ‘밀당’이나 하듯 하나씩 무언가를 내어주며 우리를 다시금 걷게 했다. 5일째였다. 없던 힘을 짜내며 죽을힘을 다해 수직으로 깎아내리는 듯한 콜다이(coldai 2100m) 고개를 오르자 갑자기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났고 그 가운데에는 잔잔한 유리 같은 콜 다이 호수(Lago di Coldai)가 앉아 있었다.


돌산 한가운데서 물을 만나니 마치 고생했던 우리를 위로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바다나 강에서 본 물과 느낌이 달랐다. 그것은 물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존재이고 생명이고 따뜻한 위로였다. 우리는 호수로 내려갔다. 친구들은 물수제비를 하고 나는 신발을 벗고 호수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면서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풍경을 가슴속에 접어두고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알타비아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 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위대한 보통 우리네의 삶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삶도 하나씩 무언가를 내어주니까. 이 또한 지나가겠지.  잘 견뎌보자.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처럼.



illust by_ nasa 빠지ㄴ




오늘도,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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