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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Aug 27. 2020

나를 데리러 가는 길

정상성을 향하던 발은 이제 궁금한 곳을 향한다

전 직장을 마지막으로 일을 하지 않은지 7개월이 지났다. 

주변에서는 소식을 궁금해하며 물어온다. 

그래서 요즘 뭐해?


나름의 규칙적인 삶을 꾸리고 있으면서도 설명할 수 없어 간단한 말로 답을 대신한다. 

내가 꾸리는 삶의 모습은 이전에 친구로 지낸 친구들이 사는 틀에서 한 발자국 삐죽 삐져 나와있다.  

삐죽 나온 발은 원 안이 아닌 원 밖을 향해 있다. 



수 년 전 나는 그토록 열망했던 정상성(normality)을 향해 나아간 원 안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20대의 대부분을 교제한 한 사람의 손을 잡고서 식장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그 곳에 있다. 겨우 남들과 비슷해진 삶에서 테두리 바깥으로 나아갔다. 함께 산 지 두 계절이 채 지나지 않을 무렵, 당장 필요한 옷 몇 가지를 간단히 챙겨서 캐리어를 끌고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그때 나는 모든 걸 놓고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나를 데리고 나왔다. 



호기로운 걸음걸이와 달리 막막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이 내 앞에 있다. 혼자서 걸어야 하는 이 길을 어떻게 마주할지 몰라 한동안 다리를 잃은 느낌으로 살아갔다. 

두 사람이 나란히 기댄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 ‘사람 인’의 모습이라면 그때의 나는 기대고 있던 반대편을 잃고 하염없이 갈지자를 그리며 걷고 있었다. 평소에도 유난히 길과 방향을 잘 찾지 못해서 옆에 있는 이들에게 지도 어플을 넘겼다. 그러면 내 손에는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빈손이 된다. 또 관계 중심적인 성향이어서 함께 걸을 땐 사람의 옆 모습에 집중해 있었다. 그러면 어디만큼 왔는지 더 가늠할 수 없다. 걷는 거리의 풍경, 지나가는 사람, 교통신호까지 뿌연 시야로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길 앞에 내가 있다. 나를 데리고 나와서는 두 눈을 뜨고, 두 귀를 열고,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엄청 난 양의 정보가 갑자기 들어와 길을 가다가 몇 번이나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어 서기도 하지만 앞으로 걷는다. 때론 뒤로도 가다가, 버거워서 주저앉아도 결국 내게는 일으켜서 움직이는 감각은 나를 자꾸만 먼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여권 안에 여러 장의 스탬프가 찍혔다. 가보지 않은 길이 많은 낯선 곳으로 향했다. 혼자서도 떠났고, 먼 타지에서 친구와 중도에 합류했다가 각자의 갈 길을 향해 갈라지는 여행도 했다. 한 번은 국제 운전면허증을 준비해 가서 해 외여행 중 차를 빌렸다. 그리고 그 나라의 교통법규를 열심히 익혀 100km를 달려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설산의 풍경을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설산의 풍경을 눈 앞에 가져다 놓았다



정상성으로 향하던 걸음에서 이제는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것으로 각도를 틀었다. 

그리고 ‘도전’이란 단어보다 ‘시도’가 주는 가벼운 느낌을 좋아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발판 삼아 재미있어 보이는 영역으로 발을 뻗친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땅따먹기를 할 때처럼 아직 내 땅이 아니더라도 발등을 먼저 빼꼼 들이 밀어본다. 이렇게 작은 시도를 모은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보폭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공간에 부지런히 나를 데려다 놓는다. 




최근 발매된 자우림의 미니 앨범에 수록된 노래 는 경쾌한 도입부를 지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를 데리러 갈게. 차를 가지고 갈게.


나는 오늘도 여전히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는 나를 데리고 먼 곳으로 간다.






본 원고는 2W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글 쓰는 여성들의 공유 작업실 '신여성'을 기반으로 구축된 에세이 중심의 웹진입니다.

2W 매거진 2호 <멀리 가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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