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호기심 해결사가 아니에요
어느 해 여름, 남들 다하던 결혼을 했다. 같이 산 지 두 계절을 지낸 후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않았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말 못 하는 시기가 왔다. 처음이었다. 남들에게 당연한 일들은 내게도 언제나 당연했는데 내 인생에서 남들이 하는 것만큼의 당연함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많은 운과 신의 가호가 떠받들고 있었기에 사회에서의 ‘당연하다’는 범주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이루었다는 걸걸 그 때는 몰랐다. 그래선지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금세 부끄러워진다. 30대 초반에 결혼하는 <당연함>과 정상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정상성> 우물에 가뭄이 났고 땅이 갈라졌다.
그 이후 말이 많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없어졌다. 단톡 방에서 만남을 주도하던 이의 가만하던 일상에 안녕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하지 못하자 단톡방은 조용해졌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이야기꾼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말 많던 나는 집에서 강아지를 부르는 일이나 회사에서 전화를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묵음이 되었다.
많은 말을 쏟아내고 많은 음식물을 먹었던 입이었다. 그리고 쏟아내는 말의 양이 줄어들 때부터 식사량이 줄게 되었다. 핼쑥해지는 볼에 헤르페스 염증이 입술부터 볼까지 번져서 붉게 선을 그렸다. 잘 먹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건 마음이 아니라 입이었다. 음식물을 제때 소화하지 못하고 길을 가다가도 운전하다가도 채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을 눈으로 확인했다.
수 개월 전 많은 사람에게 청첩장과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었고 축하를 많이 받았다. 교제한 기간이 길었던 장기연애에서 결혼까지 이루어 좋았던 점은 결혼 소식을 전하는 게 수월했다는 데 있다. 내 옆의 파트너가 바뀌지 않았다. 하객이 신랑될 사람을 헷갈리지 않아도 되는 작은 이점을 업고서 오랜 사랑의 결실로 보이는 결혼 소식을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전했다.
직장, 동창, 자주 연락하지 않던 대학 동기, 지도교수님…
좋은 소식을 알리는 데는 용이했던 만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컸다.
대부분 침묵하고 있지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삐져나올 때면 친구 목록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조용하고 싶지만 혼자로는 가만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친구를 만나 입술을 떼고 거칠게 언어를 뱉었다. 지금 떨어져 살고 있고 차차 정리할 것이라고 울음에 잠긴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나의 말이 끝나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오래 만났잖아. Y가 바람 폈어? 아님 도박을 했어? 때리길 했어?
그때의 나는 언제 이혼해도 무방한 세 가지 조건에 들지 못 하기에 더 불행했다. 아니라고 하자 친구는 몹시 황당하단 얼굴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이 나에게 터무니없이 이해되지 않는데 긴장된 친구의 얼굴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설명을 했다. 말하기에 힘든 시간이었는데도. 친구는 자신의 호기심을 풀고 싶어 했다. 그때마다 꾸역꾸역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 스토리텔러가 되곤 했다. 캐묻는 도중에 마음에 더 생채기가 나는 질문이 지속되었다.
직업의 영역인 심리상담에서 <정확하게 좋은 질문을 하는 법>에 대해 수련을 하던 시기였다. 일반인들은 심리 상담을 타인(내담자)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내담자의 정형화된 사고의 틀 안에서 자동화된 말이 계속해서 나올 때 잠깐 멈추게 하고 각도를 틀어서 질문을 하는 일이 상담사의 일이다.
당시엔 수련과 공부를 함께 하는 주변 동료들이 친구였다.
그 날에 내가 찾은 친구 역시 동료 중 하나였다. 그는 내게 질문의 모양을 한 질문이 아닌 말을 했다.
여태 만나면서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이 말은 두고두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심리학자로 지식만 쌓았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나의 잘못인 거 같아서. 마주 앉은 나를 두고 듣는 이의 속상한 마음에 공기 중으로 언어를 뿜는 것이어도. 가장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버티는 나에게 더 알았어야 했다고 책임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땅히 알았어야 하는 걸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해를 받고 싶어 말을 꺼낸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마음이 작아졌다.
힘든 일을 겪은 후에 내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갈린다는 고전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기에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 그동안 가졌던 대화의 세계가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작동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대화일 수 있다는 걸.
자세히 파고들지 않고, 해결책을 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조용히 옆에서 존재만으로 온기를 더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평생' 친구라는 말의 지형과 대화의 지도가 여러번 바뀌었다.
당시에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둘이서 살다 보니 정말 이런 일 저런 일도 있더라. 더 묻지 않을게. 잘 결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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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타인의 괴로움을 더 캐묻지 않음이 헤아림이 되는 걸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을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전에 나야말로 친구에게 불필요하게 많은 질문을 하던 사람이었다. 심리상담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친구의 핵심 정서와 현재 문제를 파악하려고 했다. 친구들이 먼저 상담을 공부한 친구에게 조언을 들으려고 연락을 해서 나에게 상담자와 친구 역할을 동시에 주었다고 해도 말이 많고 호기심에 가득 차있던 수련생 시절 텍스트로 접한 지식을 섣부르게 남용했다. 그 시절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상처를 주어 멀어진 옛 친구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온기를 이렇게 전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친구야, 말하고 싶을 때 이야기해. 네 근처에 있을게. 정말 어려울 그 시절에 말하는 게 가장 곤혹스럽더라. 어렵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어쩌면 가장 절교하고 싶은 대상은 많은 질문을 쏟아내던 내 모습일지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의 나와 함께 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