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몬도 Aug 02. 2021

흠의 궤도에서 이끌어준 사람들

인생의 어려운 일을 고백할 때 유머있게 대처해준다면

불행한 결혼생활에 서있을 때는 갯벌에서처럼 발이 더 깊게 푹푹 빠졌다. 뻘의 진흙이 노란색 장화 안에도 들어가 종아리까지 다 묻어있는 상태에서 장화를 가위로 자르고 도망쳐온 마음으로 같이 살지 않기로 했다. 결혼식에 왔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더 어려웠다. 나의 불행의 원인을 캐내고 싶어 하고 지금까지도 내게 묻어있는 불행의 결과물의 크기를 짐작했다. 가장 어려웠던 친구들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왜 나는 저들처럼 행복할 수 없는지를 보느라 어쩌면 더 재빨리 발을 빼지 못하고 오래 담그고 있었다. 왜 나만 잘못되었냐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갯벌 더 깊은 곳으로 빠져 들었고 옷 속까지도 진흙이 자꾸 들어왔다. 결혼한 친구들 앞에 서면 작아졌다. 이혼한 내가 어리석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승리자라는 느낌과 편견은 눈빛 한 조각에서, 말 한마디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지 않는다. 아니 이건 장애물이었다. 이들이 지난 이런 편견은 내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때문에 결혼생활을 그만두는 일은 내 안을 마주하는 일이라 더 어렵기만 했다.



제주도로 가게 되면서 오래 알던 친구들의 얼굴을 주변에서 지웠다. 사람을 만나러 간 건 아니었니만 일상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들이는 게 편하다는 걸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되었다. 좋은 걸 보고 자연 속에서 구르며 근심의 기운이 얼굴에서 사라질 때쯤 본가로 돌아왔다. 얼마간 에너지를 회복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취직을 했고 대학 때 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다. 혼자 있기엔 퍽이나 부족하고도 위태롭게 느꼈기에 친구와 함께 사는 일을 선택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네, 만나는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으로 바꾸었다. 그즈음 새로운 취미를 붙였다.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새로운 것들로 채우면서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다. 직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겐 기혼 경험과 연애사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내게 있어 중요한 이야기를 빼놓고 하는 대화로 일상을 채우다가도 헛헛해졌다. 분명 눈을 보고 만나고 종일 이야기를 했는데도 내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같이 일하던 상담자 동료가 치유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한 걸 기억하고 있다가 퇴근 후 글쓰기 취미반 클래스에 등록했다. 마음에 얽힌 이야기를 혼자 보는 글로 적어보고 싶어서 일기라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수업에 문을 두드렸다.


글쓰기 수업에서 친구들을 주변에 들이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친구가 되는 과정은 신상정보를 알아갈수록 더 친밀감을 느끼는 기존의 관계를 맺는 방식과 아예 달랐다. 수업 안에서 서로의 진짜 이름은 모른 채 그 공간에서 불리고 싶은 별칭을 정한 뒤 솔직한 마음을 글로 담아냈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직접 써서 읽는 조각 글 한 문단만큼씩 더듬더듬 느린 속도로 서로를 알아갔다. 오늘의 본인이 쓰고 싶은 만큼의 문장과 표현할 수 있는 만큼의 단어를 통해 기꺼이 타인의 경계 밖에 머물면서 안전하게 관계를 맺었다. 그러니 각자의 하는 일, 나이, 성적 지향, 학력 같은 건 애써 묻거나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일상 언어가 아닌 형태로 안전하게 내밀한 글로 만난 사이. 이곳에 문을 열면 어느 때보다 내가 될 수 있었다.




1년 정도 수업을 수강했을 때부터 글쓰기 동료와 선생님을 수업이 아닌 상황에서 1 대 1로 만나면 조심스레 탈혼 사실을 밝혔다. 그중 인상에 남는 리액션을 적어본다.






글쓰기 선생님과 수강생의 관계로 만나 지금은 친구가 된 은성에게는 이혼에 대한 글을 쓴 첫 과제물을 이메일로 제출한 몇 주 뒤에 대면했다. 내가 머뭇대며 이혼 고백서 같은 내 과제 글에 대해서 언급하자 그는 이런 반응을 했다.


“어쩐지.. 사람이.. 있어 보이더라.”


그 말을 듣고 웃다가 밥을 먹는 테이블에 상체를 누워 깔깔댔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잖아. 사람 인생이 평탄하면 재미도 깊이도 없지 뭐야.





유쾌한 그의 태도 덕에 나는 마음의 경계를 풀었다.



글쓰기 친구 민혜도 은성과 비슷한 말을 했다. 전라도 지역 사투리를 섞어서 그만의 톤으로.


“얼렐레. 역시.. 서울 사람은 달라”

아직도 그가 말한 서울 사람의 범주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이혼 이야기를 하면서 울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유머감각을 활용해서 내 이야기를 받아쳐준 이들 덕에 이혼을 말하면 내게 해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의 틀을 나올 수 있었다. 굳건하게 가져온 사고의 딱딱함을 친구가 가져온 신념으로 풀어서 말해도 해가 되지 않는 세상에 안전하게 함께 있다는 감각을 이 두 번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친구 강하는 내 이야기에 별 반응이 없었다. 말을 듣기 전이나 후나 특별할 것 없이 대했다. 이 경험을 글로 쓸 거라며 그에게 먼저 귀띔을 하자 되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는 나의 태도가 무척이나 비장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던 이야기를 했다. 



비장한 태도로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내게 타인의 삶에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이들을 만나고 나는 옹알이처럼 점차 탈혼 경험에 대해 말하고 쓰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말들을 해주는 친구들 덕에 <이혼=흠>이라는 궤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혼 경험을 부끄러워한 건 나였다. 가위로 잘라낸 장화를 던지고 겨우 살아냈어도 흠으로 여기곤 했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앉은 이가 차별의 눈빛, 공허한 위로를 하면 나는 다시 갯벌 바닥으로 다시 미끄러지곤 한다. 갯벌에서 가져온 진흙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물렁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주로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나의 이혼 경험을 고백했다. 그럴 때 편견을 만나고 수치심을 마주하면 물렁한 진흙은 눈물과 엉겨 붙어 찐득한 채로 몸에 달라붙는다.


진흙이 묻은 채 엉덩이와 허벅지를 새 옷으로 가리고 있다. 말하는 이의 예상을 벗어나는 이들의 반응은 강렬한 태양빛이 되어 진흙이 가지고 있는 물기가 바싹 마른다. 다 굳어버린 진흙 회색빛 가루를 마른 손으로 아무리 털어도 묻어 나오질 않는다.


이런 경험을 만난 후에야 이혼이 흠이라는 궤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친구들이 전해준 안전한 말을 지지대 삼아서 새로 난 길로 다닐 수 있다

© slowtheslow   All Rights Reserved.

커버와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일러스트는 저작권자 slowtheslow에게 이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slowtheslow에게 있으며, 더 많은 작품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grafolio.naver.com/slowtheslow













https://brunch.co.kr/@eunseongwrite/292  1년간 글쓰기 수강 후기를 남겨둔 글입니다.



이전 11화 말이 어려워진 상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