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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Jun 08. 2021

조각난 마음은 담을 수 없어

선택하지 않은 길 그리고 부러움

‘언뜻 봤는데 글을 너무 잘 쓰더라고. 너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거야.’ 그제 술자리에서 친구 시나의 말이 이어졌다. 오리는 시나가 부러워하는 마음을 멋지게 보면서 나에게 질문했다. 


몬도는 부러운 사람 있어요? 그런 마음 없는 것 같아 보여요. 


맥주를 쥐다 말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당연하게 거머쥘 수 있다고 믿었던 선택지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정상 결혼에서 뛰어나와 내 삶을 구제한 건 나에게 너무도 꼭 맞는 일이다. 헤어진 이후 단 한순간도 그때의 내가 한 결정에 대해서 돌이켜야 한다고 후회한 적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루고자 했던 정상 가정의 각본 속에 끼워 넣고 싶어 하는 모든 마음까지 정리되진 않았다. 


근사하게 보이는 유리로 만든 화병을 깨버린 후에 신문지와 빗자루를 가져와 쓸어본다. 하지만 빗자루 끝에 붙어서 쓰레받기로도 이동하지 못한 채 먼지와 탁 달라붙은 유리조각의 마음이다. 채 쓸리거나 담기지도 못 한.



백일이 채 되지 않은 조카를 안고 머리 꼬순내를 맡는다. 이만한 거리감에서 아이들과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살고 싶다. 교감하며 많은 추억을 가질 수 있으면서 품이 넉넉한 성인의 모습으로. 소중한 새벽 단잠을 빼앗기거나, 혼자이고 싶은 시간을 방해하는 존재를 미워하는 마음은 없는 채. 



만나면 반가움에 팔을 거세게 흔들면서 오로지 이들을 예쁘게만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존재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다. 이런 다짐을 하면서도 조카를 안으면 마음속 어딘가에 그리움이 잔뜩 쌓인다. 선택하지 않은 일로 인한 부재에 따른 그리움에 대해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임신 경험을 가지지 않아 본 이가 단지 누군가에게 거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적는 일로도 부족하다. 타인에게 평생 들을 리 없는 ‘엄마’라는 단어는 남은 일생 동안 수천번 들을 수 있는 ‘이모’ ‘고모’와 다른 느낌이니까. 가만히 조카를 안고 있다가 방구석으로 이동해 이런 말을 뱉었다.



"지호야, 엄마 해봐."


품에 쏙 들어오는 아이의 작은 미소와 옹알이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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