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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Jun 12. 2021

통과하는 몸

기능하는 몸으로 변한 후 내게 강요되는 삶의 허들을 넘었다

이혼했다고 말할 때에는 너무 못나게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에는 얼굴에 뾰루지라도 하나 돋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내 겉모습을 보고 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몸이었다. 마르고 가녀린 신체를 가지기 위해 퇴근한 뒤 헬스장으로 출근해 10킬로를 감량했다. 이후엔 최고의 드레스핏을 위하는 지름길인 필라테스를 다녔다. 목은 곧고 어깨는 내려야 하며 팔뚝에는 덜렁거리지 않을 정도의 갸름한 팔이 있어야 했다. 시간이 넉넉지 못한 친구들은 쁘띠**라는 이름의 팔뚝 주사를 맞았다. 퇴근 후 주 2회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드레스를 상상하며 상체 운동에 매진했다. 한 달 전 드레스 피팅 때보다 몸이 커지지 않아야 해서 회사 점심시간에 다이어트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었다.

드레스에 꼭 맞춘 몸, 결혼식을 통과한 몸

실크 공단의 아름다운 드레스에 나의 몸은 끼워 맞추었다. 결혼식을 통과한 몸이었다. 그때까지 나의 몸은 보이기 위해서 존재했다. 계속해서 사랑받기 위해서는 살이 찌지 않아야 했다. 신혼집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다이어트 도시락은 잊어버리고 퇴근하면 편의점으로 향했다. 지금의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맵고 짠 편의점 떡볶이에 맥주 한 캔에 소파에 쓰러졌다. 팅팅 붓고 얼굴이 새하얘져만 갈 즘, 여성전용 운동센터에 등록해 그룹 운동을 하며 처음으로 기능하는 몸에 집중했다. 집중해서 마지막 세트까지 해내는 의지를 내자 성취감과 그리고 체력이 생겼다. 그제야 나의 몸으로 상황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만 드러눕게 만드는 신혼집 소파에 등을 대지 않게 된 이후 신혼집을 뛰쳐나왔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이혼을 한 은호 역의 손예진은 피클병을 열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클병과 씨름을 했다. 그는 피클병을 바닥에 냅다 던지며 울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화난 거면서 피클병에게 화풀이를 했다. 은호 역할을 한 손예진보다 강한 손의 악력을 지녔을 때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결혼과 이혼을 맨 몸으로 겪어냈음에도 이혼했다고 말할 때는 어느 정도 썩 괜찮은 옷을 차려입어야 할 것 같았다. 덜 못나보여야 할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자신이 한 인생의 선택을 수정하는 것뿐인데 내부의 목소리는 '내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못났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다'라는 소리를 내며 시끄러웠다. 그럴 때 간단히 통제할 수 있는 건 겉모습이었다. 외양으로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길 바랐다. 사랑이 식어버려 결혼생활을 끝낸 사람이 이혼 사실을 말할 때 당시에 나를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내게 눈을 맞추고 들 때 흠을 꺼내지 않으려 했다. 네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듣지 않는 말이었는데 나만 신경쓰고 있었다. 사랑이 끝났고 더이상 결혼생활을 이을 수 없었다고 말할 때의 나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마음이 쭈그린 채였다.



트위드 쟈켓에 금장 단추, 밑위가 짧은 정장 바지를 입고 빛나는 장신구를 입었다. 나의 내면이 초라한 날에 화려한 걸 입고 걸친 채로 겉으로 치장할 수 있는 것에 보상하여 누더기같은 마음을 가렸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이렇게 신경쓰는 건 내면화로 굳어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에게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서 한 선택임에도 끝내 내면화된 시선을 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몸은 묵묵히 나와 함께 살아갔다. 마음이 비겁한 날에 항상 몸은 정직하게 나를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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