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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Oct 18. 2022

위로 학교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로를 정말 못한다



이혼을 하고 난 다음 그 집에서 나와서 믿었던 친구들 몇몇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입을 닫았다. 심리학 전공의 대학원을 나온 동기들을 포함해서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죽마고우들은 하나같이 위로의 말을 했지만 이들의 위로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상담을 하면서도 내담자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주변에 알리는 상황에서 주변에 들은 말을 보았을 때에도 이런 말들을 한다고 하며 놀라는 상황을 마주한다. 나와 주변에서만 공감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곁에 더 많은 건 아닐까. 이럴 땐 궁금해서 책을 펼친다. 주로 보는 책은 개인이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에 마음을 뺏긴다. 혹시 지금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종이 책을 넘긴다. 의도가 나쁜 건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당사자를 위한답시고 가장 서운한 소리를 해댄다. 온갖 불행에 대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자신의 불편감을 위해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이제는 정신 차릴 때도 되지 않았어?’ ‘전 남편이 교회에 안 갔다고? 사탄에게 씐 거야?’(실제로 들은 말이다). 선의를 가지면서도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 건 나만 겪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제는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로를 정말 못한다.




나쁜 위로를 주는 경우에 말을 지나치게 해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와 함께 시작하는 말은 생채기가 더 난다. 내 생각을 내가 더 하지. 네가 뭘 해, 하기는 개뿔.




이혼을 결심하고 집에서 나온 상태를 이야기했을 때로부터 벌써 수년이나 지났다. 오랫동안 기억나는 위로는 힘이 들어간 위로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힘이 들어간 위로의 말들은 몽땅 휘발되어 버렸다. 상대보다 자신의 감정에 불을 켰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나의 불행에 어떤 말도 보태지 못하고 함께 자리를 지켜준 모습이었다. 나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 친구들이 나를 대신해 화를 내는 역할을 하곤 했다. 때때로 그들은 이 결정을 하기 전에 엉엉 울던 나처럼 우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자기감정에 푹 빠져있는 이들을 앞에 두고 한 번도 힘이 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도망쳤다. 그들은 마치 내 거울처럼 화난 얼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얼굴들을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의 선택과 의지에 힘을 주는 말은 없이 상투적으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 더 중요했다. 이들 사이에서 나는 더 외롭고 상처받았다.



수년이 지나고도 위로를 크게 받았던 장면으로 기억나는 건 문장으로 기억나있지 않다. 오히려 내 앞에서 얼버무리면서 조심스러워했던 모습들이다. 그래서 구태여 말하지 않는 말.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하면서 조용히 앉아 있어 준 경험. 그제야 그 말에 내가 울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렇게 울 땐 마음을 추스르고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을 가장 일으켰던 건 카카오톡 메시지 한 줄과 사진 한 장이었다.

“이걸 보니까 언니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하면서 보낸 한 장의 사진. 사진은 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가수 이소라의 소식을 전해주거나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구석 자리를 찾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중에 여기 같이 가자.”라고 답장을 보낸다. 그럼 며칠은 힘이 난다. 


그런 연락이 왜 좋았나 생각해 보면 친구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봐준다는 마음 때문이다. 전남편인 Y와는 연애시절부터 7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30대 초반에 결혼을 한 후에 헤어지는 결심을 하고 난 뒤에 20대의 모든 시간이 사라졌을 때 내가 경험한 건 존재가 희미해진 기분이었다. 역경의 한가운데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꼬박 7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된 느낌일 때 나를 생각해서 떠올려준 친구는 그냥 나를 봐준 느낌이다. 원목 테이블이 있는 작은 카페를 좋아하는 나를, 이소라와 토이를 제일 좋아하는 나를. 그럴 때면 희미해진 나란 존재가 색을 얻는다. 그대로의 모습을 경험해보기 전엔 위로가 될 줄 몰랐다.


말을 보태지 말고 들어주는 일이 제1의 교훈



만약에 힘든 사람들 곁에서 위로하는 법을 배우는 ‘위로 학교’라는 것을 만든다면 하고 상상해본다.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는 말을 하자 글쓰기 모임 친구 E가 내게 ‘명예교장’이란 감투를 만들어 주었다. 이 학교의 교훈 제1원칙은 이것이다. ‘쓸데없이 말을 보태지 않기’ 우선 이게 필요하겠다.






 마몬도 : 심리학자이자 상담심리사. 상담센터에서 상담사로 근무하고 퇴근하면 자신의 취약함에 대해 글을 쓴다. '마음+온도'를 줄여서 마몬도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며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돌본다. 심리상담을 수년이나 받았지만 정작 내 관계 문제는 어려워 짧은 결혼 생활 후 탈혼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집필하고 있다. 인생에서 넘어져 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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