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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Aug 03. 2021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심리 상담과 글쓰기,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영역


마음이 건강해지는 건 명확히 수치로 보이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선지 도중에 지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상담 슈퍼비전을 받고 온 상담자 동료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 오히려 퍽 기나긴 길에 대한 막막함을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담자는 상담실에 찾아오게 된 그의 현재 삶의 어려움(주 호소)을 이야기한다. 그의 삶에서 치료와 회복이 일어나지만 세상 모든 변화가 그렇듯 수직 상승의 모양으로 나아지진 않는다.

지금보다 훨씬 초심자일 때 1년 가까이 상담한 내담자가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상담사인 내가 봤을 때 비슷한 호소임에도 질적으로 다른 고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막막함을 호소했다.

그가 내게 ‘선생님, 처음 왔을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라고 말을 했을 때에도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퇴근하는 길 그 말을 하던 내담자 얼굴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아 2호선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대학원 졸업 즈음에 상담 수련 초반의 일이긴 하지만 마음의 키가 자라는 일이 명확히 수치로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막막함을 생각하면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키가 자라는 걸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심리상담의 효과를 수치화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면적 인성검사 MMPI-2를 실시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상담 초기와 상담 후반부에 실시하여 임상적 증상을 보고하는 척도의 점수의 변화로 심리치료의 효과를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의 나아진 점을 함께 볼 수 있는 건 상담자의 자리에서 타인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이 몹시 크다.


그럼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막막함은 상담자가 상담 수련의 과정을 나아가는 과정에서 빠르게 결과나 나는 일이었으면 하는 점이다. 보통 회사에서 예산을 관리하거나, 손익의 지표를 빠르게 볼 수 있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답답함에 관한 것이다. 전문 상담사가 되는 과정에 있어 상담기술이 숙련되는 것 역시 눈에 보이지 않다는 점에 수없이 좌절하곤 한다. 현재 내가 취득한 2급 상담심리사 자격증 스텝에서 1급 상담심리전문가가 남아있지만 전문가 타이틀을 얻는다 해도 좌절의 경험은 언제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다독일 수 있는 길이 부족해 중도에 이탈하는 비율이 높은 곳이 상담의 영역이다. 주변에만 해도 함께 심리학 전공의 대학원까지 마쳐 공부했던 동기들의 많은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나간다. 상담을 하는 이들은 더 먼저 상담이 필요했던 이들이었기에 낮은 자존감을 가진 경우가 퍽 많은데 자신을 격려하는 자원이 부족하면 꿋꿋이 자신이 택한 길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글쓰기 역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어려운 분야이다. 마침 좋아하고 열심을 다하고 있는 두 분야. 심리상담과 글쓰기, 글쓰기와 심리 상담은 하면서도 ‘나 정말 잘하고 있다’는 마음을 좀체 갖기가 어렵다. 일기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등록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글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어 1년간 글쓰기 수업을 수강했다. 수업을 들었던 당시엔 이혼이라는 말을 꼭꼭 씹고 내뱉기 어려운 때라 글쓰기를 통해 만나는 이름 모를 ‘내가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만 불리는 이들이 풀어내는 자신만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글쓰기 취미가 생긴 지 1년즘 되었을 때 금세 ‘내 글 구 려’ 병에 걸렸다.


글쓰기로 내 삶의 변곡점이었던 이혼과 개인 서사를 풀어내려고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을 때부터 ‘나 글 너무 못 쓰는 거 같아’ ‘내 글 너무 재미없어’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하는 동안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결과가 아주 몹시 매우 형편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상담과 글쓰기가 비슷하다.


마음 밭에 씨앗을 뿌리는 상담사의 일,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글쓰기의 일




무엇보다 두 가지의 영역 모두 삶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점으로 글쓰기와 상담은 비슷하다.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을 만족하는 형태로 써내고, 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도와줄 수 있었음에도 매일 해야 하는 일은 작가로 상담사로, 동시에 상담사이자 작가로 자신의 하루를 지켜내어 끝까지 살아내는 일이 성과물보다 중요하다.



초심 상담자들에게 뜨개질이나 퀼트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며서 슈퍼바이저에게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손으로 무얼 만드는 일엔 젬병이라 흥미가 썩 가진 않지만 어떤 마음으로 조언했는지를 그려볼 수 있다.

한 코와 한 땀의 결과물을 눈앞에 데려다 보고 싶은지를 자주 떠올린다.






수치화되지 않는 두 가지 일을 때때로 지겨워하지만 분명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이 두 가지를 아주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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