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집과 안전한 가족에 대한 상상
10년 전 주말 오전, 패브릭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뿌연 눈물을 닦으려 허리를 조금 숙여 티슈로 손을 뻗었다. 벌써 이 곳을 드나든 지 2년째, 무릎 높이 티테이블이 있고 소파에 앉아 있다. 나의 목소리만 상담실에 가득하다. 별다른 진전 없이 같은 이야기만 맴돈다. 맞은 편에 앉은 상담 선생님의 얼굴 위로 침통한 표정이 앉아 있다. 가정 내 폭력이 발생했고, 폭력의 피해자는 나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폭력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종종 부친은 폭력과 욕설을 행사했고 이십 대 성인의 다 큰 몸과 정신을 가진 채로 맞았다. 언제나 그렇듯 예측할 수 없는 폭력이 덮쳤고 이 이슈가 떠오른 이후 상담 주제는 한 달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음속에 집이 없네.
상담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품은 고민은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마음속에 집’이 없었기에 발걸음은 항상 밖을 향해 있었다. 속상한 날에 버스를 타고 광화문 네거리를 돌아다녔다. 걷고 걷다 발이 너무 피로해져 견딜 수 없을 때, 그제야 집을 떠올린다.
모두가 자고 있는 밤에 들어가 잠만 자고 나왔다. 평생에 걸쳐 가지게 된 습관이었다. 기억하건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모부는 소리를 내며 싸우기 시작했다. 불안해져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 싸움이 벌어지는 게 더 불안해 집으로 뛰쳐 들어가기도 했다.
가출하고 싶지만 친척집도 혼자 힘으로 갈 수 없는 어린 아이였다. 아빠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이혼을 결심해 집을 나간 엄마도 다시 들어왔으니 나만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오히려 미움은 약자를 향했다. 아빠의 폭력을 다 보았음에도 나를 떠나 집을 나간 엄마를 미워했다.
1년만에 집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를 마주한 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 엄마가 살려고 나갔다 돌아왔다. 그를 마주하는 일은 몹시 얼떨떨했다.
아빠와 사는 1년동안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외가에 가려고 수없이 뜬눈으로 밤을 새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이 집에서 나가야지.’하는 결심으로 돼지저금통을 갈라 용돈 주머니를 꼭 쥐었다. 옷을 다 챙겨 입고 앉은 채 잠이 들었다. 아빠 차로만 가봤던 외갓댁 @@시 **구 OO리..
돌이켜보면 열두 살은 그 새벽에 현관문을 나서는 용기를 가졌어도 터미널 근처에 도착하지 못 했을 것이다. 아침이 밝으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학교로 향했다. 다음에는 꼭 나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다. 그렇게 마음만 먹었다.
안전하지 않아도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기울어진 그 곳이 유일한 집이었다. 내 엄마가 살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집. 엄마가 돌아온 뒤 잠시간 어색했지만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온 엄마는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폭력을 온 몸으로 맞아도 그 곳에 폭력이 없는 체 연기했다. 모부의 이혼 고소장에서 열두살의 나는 처음으로 ‘가정폭력’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부부싸움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우리 집엔 가정 폭력이 있었지만, 이혼은 불가했다. 집에서 뛰쳐나갔던 엄마와 다시 돌아온 엄마의 얼굴이 문득 궁금해진다.
당시에 나는 엄마가 돌아왔을 당시에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가 온 이래 며칠되지 않아 곧바로 초경을 시작했다. 내게는 엄마가 필요했기에 그에게 나가서 살라며 집 밖으로 내쫓지 않았다.
가정폭력이 있는 집이라고 해도 그 집 현관문의 모양이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단한 현관문 안에서는 약자들을 향해 이유 없이 때를 모르고 전쟁이 일어났지만 그런 건 가족들만 공유하는 비밀이었다. 잠을 자지 못 하고 학교에 가는 날은 많았지만 어디에도 말해보진 않았다.
서른이 넘자마자 나는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신혼집, 신혼부부와 같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단어들 뒤에서 낯빛은 어두워져 갔다. 원가족을 떠나서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은 내가 만든 두번째 비밀이었다. 혼자서만 가지는 비밀의 무게와 어두운 낯빛을 숨길 수 없을 때, 나는 결혼 생활에서 걸어 나왔다. 불행한 집에서 자라난 나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열두살의 나에게는 엄마가 필요해서 붙잡았지만 서른 한 살의 나에게는 내가 필요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쩌면 사십대 초반의 엄마와 나는 같은 얼굴을 하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마음속의 튼튼한 집과 안전한 가족을 상상해본다.
20세가 되면 국가에서 각자에게 맞는 집을 준다. 그러나 가정에서 폭력을 경험했거나, 자신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도 이 공간에 이르게 집을 가질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친구들 5명과 1인 가구 마을을 꾸려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없을 때엔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것뿐, 독립생활이 내게 잘 어울린다는 걸 여러 시도 끝에 알게 되었다.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건이다. 오늘은 특별한 파티가 있는 날이다. 다 같이 기른 텃밭 채소를 재료로 포트럭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자신의 앞접시와 식기를 각자가 정리하고서 이번 달에 함께 읽은 책에 대해 독서모임을 이어서 하기로 했다. 이번에 선정한 책은 마몬도 작가의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책으로 다음 주 예정된 북토크 예행연습을 <가족>들과 하기로 했다. 같은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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