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이상해 보인순간
전 남편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온 날이었다. 그와는 7년간 교제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를 탐탁지 않아했다. 특히 나의 아버지는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허공을 보았다. 손님을 초대해놓고도 리모컨을 꼭 쥔 채 텔레비전만 들여봤다. 그는 머쓱하고 의아한 표정을 슬쩍 지었다.
소파에 앉아 아버지가 자신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오기를 기대하며 보풀이 잔뜩 난 양말을 신은 채 발을 비비고 있었다. 주말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버선발로 달려 나가 '아이고 이렇게 와주어 고마워요. 우리 딸과 교제해 준다니 너무 고마워요. 허허허'대화를 나누며 함께 바둑을 나누는 장면은 없었다. 이 집엔 바둑판도 바둑에 취미가 있는 사람도 없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그에게서 더 멀리 앉아 있다. 평소보다 소파가 길어 보였다. 주방에서 혼자만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엄마가 그에게 식탁으로 와서 앉으라 했다.
우리 집에 있는 시간 동안 그는 정지된 로봇 같았다. 그럴 수밖에. 그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하는 역할이 많고 가족 간 대화가 많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연애를 하면서 그의 집에서 함께 둥글게 모여 식사하는 일이 잦았기에 여자는 차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집에 있는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걸. 하지만 그는 침묵만이 감도는 나의 집에서 어색해했다.
그의 아버지는 쉼 없이 집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각종 전자제품은 가끔씩 뜯어서 들여다보며 고치곤 했다. 아들에게는 여자 친구네 언제 인사를 드릴 건지, 앞으로 너의 계획은 무엇인지 질문을 많이 했다. 또 요리를 직접 했다. 어느 날엔가 몸이 좋지 않은 내게 그의 아버지가 배숙을 해주셔서 먹은 적이 있다. 몸에 좋은 것을 고르다 콩나물 몇 가닥을 넣어 그가 만든 배숙에서는 비린 맛이 났다.
하물며 가족 간에 서먹한 날 때조차 그 가족은 강아지의 배변과 산책, 배식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가족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어 그 가족이 내 것이었으면 했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촉감을 처음 매만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버석한 모래를 손을 오므려 쥐어 보는 아이가 되어 대화가 있는 가족이라는 모래사장에서 밤늦도록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화가 끊이지 않던 거실에서 지내던 그가 정적만 있는 집에 발을 들였다.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소리만 크게 울리는 집. 조용하지만 평온하지 않고 묘하게 긴장을 주는 얼음같은 집. 평생동안 보아왔던 장면이지만 그를 우리 집에 들인 순간에야 아무리 살아도 적응하지 못한 나를 만났다. 적응하고 싶지 않아 자주 잊어버리고 삭제해버리는 장면에 떠다니는 내가 보였다. 집안의 풍경은 내 가족의 일상이었지만 그의 시선을 쭉 따라온 끝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식사 중 나의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아버지 뭐 하시니?’ 집안 형편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묻는 말이었다. 그는 딸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필 그 질문은 그 사람이 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이었기에 그는 밥알을 씹다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어색한 식사 후에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집에서 나왔다. 신발을 신고 나와 현관문 앞에서부터 부끄러움에 울기 시작했다. 펑펑 울고 있는 나를 한참을 진정시키더니 한참 뒤에야 그가 말했다.
‘네가 울면 내가 못 울잖아. 지금 네가 울어야 하는 상황 아니야.’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그날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든 도망쳐야 했다.
이 집에 결코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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