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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Apr 01. 2021

나는 조카를 질투한다

손주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어린 시절의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일 때


늘 막내로 자라왔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막내였고 태어날 때부터 2살 위 오빠가 있었다. 친척들은 양쪽에서 우리 집을 부르는 말로 ‘막내네’라고 불렀고, ‘아이고, 우리 강아지’라는 말에 내 이름까지 넣어야 나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야무진 구석이 없다는 이유로 꾸중을 많이 들었다. 걱정을 받는 동시에 애정도 섞여 있었다. 어쨌든 정으로 끝나는 무언가.

어린 시절에 말도 늦되고 친구들도 못 사귀어서 줄곧 엄마는 ‘우리 애 하고 놀아줘’하면서 나를 친구들이 있는 방에 넣어주곤 했다.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 뒤만 밟았고, ‘우리 막내’라며 줄곧 막내 취급을 받으며 컸다. 윽박지르고 화내는 아빠와 자신의 불안을 이기지 못하는 엄마 사이에서 불안하게 컸다. 때마다 집에서 배웠어야 하는 것들을 잘하지 못 했다. 손이 야무지지 못해 리본도 늦게 묶고, 겁이 많아 알약을 잘 못 먹었다. 못 하면 못 한다고 바보 천치라고 혀를 끌끌 차는 아빠와 눈치 보며 슬쩍 리본을 묶어주는 엄마. 그들의 등 뒤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서있다. 결국에 우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말과 함께 방으로 작은 아이를 밀어 넣는다.



가정에서 폭력의 굴레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다들 그렇게 살아' '원래 다 그래’

지금도 이 두 문장에 담긴 어느 정도의 진실에도 치를 떠는 어른이 되었다. 성인인 본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으면서 어른은 ‘원래 다 그래’ ‘다른 집도 모두 그렇게 살아’라고 대충 말하곤 했다. 아이의 질문을 없는 것으로 눙치려고 했다. 같은 질문을 일삼으면 눈치 없는 아이가 되기에 답답한 소리 하는 애가 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질문을 사그러뜨리는 일을 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사랑의 매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묻고 싶었다. 너희 집에는 이런 다툼이 매일 있는지, 아이가 엎어지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한 번만 더 해봐’라고 하며 정서적으로 위협적인 말이 있는지. 이러다 맞는 엄마가 큰 일이 나지 않을까 싶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밤에 왜 나는 오빠처럼 아무 걱정 없이 잠에 들 수 없는지. 또 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건지. 이런 이야기는 담임 선생님한테는 해도 되는지. 질문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친절한 설명은 고사하고 동네 창피한 일을 떠버리지 말고 침묵하라고 했다.



© slowtheslow.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도 손주에게는 더 사랑을 표현하고 하나라도 더 주고 싶고, 예쁘게 말하려는 부모를 볼 때마다 우는 얼굴이 된다. 왜 진작에 그렇게 해주질 못했는지 하고. 어린 나와 오빠를 키우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독박 육아를 한 것이니 어려웠겠지, 지금처럼 좋은 훈육과 교육의 기회도 없었으니 배우질 못했겠지' 라며 적당히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어린 자녀에게 세상에 버금가는 존재였으면서 부모라는 권위(power)에서 오는 힘으로 물리적, 정서적 폭력을 행사한 이유를 피해 당사자가 찾아서 용서하고 싶지 않다. 


어리고 약한 아이가 있고 세상일은 좆같으니 신발장에 신발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만만한 나에게 매질을 할 구실은 없다. 친구들과 집에서 노는 중에 엄마 아빠가 싸웠다. 늘상 있는 일이었는데 친구들이 등 떠밀어 처음으로 그들 사이에 서서 용기를 내 말했다. ‘친구들 있어서 부끄러우니까 그만 했으면 좋겠다'라고. 그런 말을 들은 후에 그 말을 한 어린 아이에게 싸대기와 함께 모욕을 주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모든 걸 기억하는 내 옆에, 인자한 모습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에 심취한 그들이 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세상모르고 웃는 아이를 보는 일까지도 즐겁지 않다. 



가장 별로인 순간은 그들이 손주에게 쏟는 사랑의 모양이 내가 아주 오래간 바라던 무조건적이고 정서적 사랑이었을 때이다. 그 사랑이 고파서 줄줄 새는 바가지를 붙잡은 채 사랑을 구걸하며 연애와 결혼 생활까지 하고 온 스스로가 초라해질 때면 조카에게 모난 마음을 품는다. 




'너는 모르겠지. 영영'



© slowtheslow.  All Rights Reserved.




결코 나의 모부와는 다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나라는 세계를 넓히기 위해 더 멀리 가고 손을 꽉 잡아 문을 열어젖힌다. 때로는 무거운 철문을 만나기도, 여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어떤 형태로든 손잡이를 찾아 손잡이 부분을 발로 뻥 차서 문고리를 부순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다가가 네가 궁금해하던 중요한 질문들은 소거되지 않았다고. 해결하기 위해서 너는 커서 공부도 하다가 글도 쓰게 될 거라고. 그 때 품은 질문이 다 재로 사라지지 않았고, 미래의 너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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