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 실천법] 운동이 과한거냐? 마음이 과하게 아픈거냐?
인정
나와는 다른
모든 삶의 방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모든 삶의 방식에는
억겁의 고뇌와
처절한 성찰과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삶의 방식과 이유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은 중용의 덕에서 나온다. 상식적인 것에 대한 존중이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방식과 삶을 인정할 수 있다. 중용은 과유불급한 상태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의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따진다. 지나친 것이 나은가? 아니면 부족한 것이 나은가?
'같다'는걸 지독히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세뇌당한 '우열 주의' 때문일까? 굳이 줄을 세우고 싶어 한다. 그리곤 더 열등한 것을 배제한다. 그렇게 '지나침'과 '부족함' 중에 하나는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하나 때문에 고통받는다.
우리 근현대사에 '결핍'이 많았기 때문일까? 우리들은 '과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낫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과하다.
과해야 안심이 되고, 과해야 기여하는 것 같고, 과해야 능력을 인정받는다 생각한다. 관심도 과하고, 애정도 과하고, 사랑도 과하다. 이런 과함은 관계에 치명적이다.
진실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파괴한다. 진실이 '과함'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럼 상대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고통받게 된다. 그렇게 관계가 끝나게 된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OECD에서 학습시간, 출퇴근 시간, 연간 노동시간, 노인 빈곤율, 자살률 등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과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는 것은 '운동'도 마찬가지다. 과유불급의 대표적인 사례가 운동이다. 운동을 과하게 하는 것은 운동을 안 하는 것과 같다. 즉, 똑같이 안 좋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한 운동을 한다. 이유는 알 것 같다. 자주 못하니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처럼 과하게 운동한다. 이유는 다 있다. 이해도 된다.
혹은 과해야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빡세게'의 의미를 '과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과한 운동은 '과한 사랑'의 결말처럼 매우 긴 고통의 시작이 된다.
운동이 과한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섭취 칼로리와 소모 칼로리에 집착한다.
운동을 재미가 아닌 의무로 한다.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한다.
아픈데도 운동을 지속한다.
휴식이나 회복 시간을 갖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운동을 선택한다.
운동을 못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운동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운동 후 '부족했다', '제대로 못했다'고 자책한다.
물론 이 전부를 모두 한꺼번에 하진 않는다. 때때로 다양하게 '실천'한다. 운동을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마치 운동만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군다. 운동에 '강박증'을 보인다.
이런 모습은 회식 이후나 폭식, 폭음을 하고 난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거나 '처벌'하여 '상쇄'하려는 목적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를 하는 셈이다. 우리의 멘탈은 소중하니까 멘탈 대신 몸을 망가뜨리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다. 어쩌겠는가? 그게 어리석은 인간인걸.
중간에 노는 시간 없이 집중하여 운동을 한다면 보통 1시간이면 체력이 바닥난다. 더 이상 힘을 쓰기 어렵게 된다. 특히 40대 언저리라면 그 이상 무리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과도하게 운동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적대감이 생기고 화가 난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계도 쉽지 않게 된다.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신부전이 오기도 한다.
스트레스 골절이나 염좌가 생기기도 한다.
관절염에도 취약해진다.
탈수가 올 수도 있다.
심장에 무리가 오기도 한다.
성적 능력이 저하된다.
여성의 경우 무월경이 될 수도 있다.
코티솔 수치가 증가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감소한다.
면역체계가 무너지고 피로가 쌓인다.
이유 없이 살이 빠지고, 식욕이 생기지 않기도 한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정신적, 정서적 고통이 생기면 몸에 사인이 온다. '행복' 호르몬이 중단되고 '불행' 호르몬이 온몸을 뒤덮는다. 그래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적당한 운동은 정신적 고통을 약화시켜준다.
하지만 무리해서 운동을 하게 된다. 더 강하게, 빨리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픈 하니가 '미친 듯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빨리 회복시키라고 우리 뇌가 시킨 것이다.
언제든지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이 들었다면 휴식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 몸이 예뻐지는 것은 운동'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운동 + 휴식 + 영양]의 3박자가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휴식과 영양에 비해 운동이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운동'에 방점을 찍고 말하는 것이다.
운동이 우리 삶의 전부 일 수는 없다. 운동은 우리 삶 자체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삶 자체는 아니다. 그러니 강박적으로 몇 시간 이상, 몇 회 이상 할 필요 없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자신의 근육이 찢어질 수 있는 수준의 강도로 짧게, 자주 해주면 된다.
강박적으로, 무리하지 말라고 하면 '설렁설렁'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아니다. 기왕에 할 때 제대로 하는 게 효율적이다. 제대로 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니 대부분의 초심자들이나 미실천자들은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쉬운 방법을 찾아 도망간다. 결국은 몸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여러 다양한 시행착오를 다 겪게 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등산을 하다 보면 '표식'이 있다. 낯선 산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표식이다. 그런데 이 표식을 믿지 않고 굳이 스스로 다시 표식을 남기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싶다면 표식이 없는 산을 고르는 게 맞다. 그게 자신의 '자존감'도, 타인에 대한 '기여'도 높이는 일이다. 굳이 기존의 표식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은 그냥 '핑계'일뿐이다.
습관적인 '오버 트레이닝'은 병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육체적 문제에 대해서 치료가 필요하다. 더불어 육체적 문제를 야기하는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도움이 필요하다.
참을 수 없는 공허함, 외로움, 고독, 스트레스 등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표출되지 못하고 몸에 머물러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운동은 하지만 '독방'에 있는 것과 같다.
수감자에게 가장 큰 벌은 '독방 수감'이다. 대화와 스킨십을 없애는 것이다. 아주 무서운 형벌이고, 반인도적인 형벌이다. 인간의 자존감을 아예 없애는 무서운 행위다.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심지어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 어린아이는 죽는다. 인간은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과도한 운동을 습관적으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 '독방'에 있는 것과 같다. 왜 그런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운동이 주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과함'은 '부족함'과 같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상태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체력과 무게나 운동 시간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한다. 내 몸 상태와 내 체력에 맞는 체력과 무게나 운동 시간이 정답이다. 남의 기준에 맞추지 말아야 한다. 단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해서 '부족'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잊지 말자.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운동 자체가 아니다. 운동 후 누리는 달콤한 휴식이 우리를 강하게 한다. 운동 후 누리는 편안한 마음과 휴식이 우리의 예쁜 몸과 예쁜 삶을 보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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