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ama Feb 24. 2019

#97. 임신 중 몸을 지켜내는 노하우

[누만예몸][극사실 실천법] #임신 #임신AtoZ #임신대백과


    인간은 나이가 들면 '감사'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된다. '철이 든다'라고도 표현하는 기특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들면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감사해진다.


    만나줬던 '그녀'도 고맙고, 조용히 헤어져줬던 '그놈'도 고맙게 느낀다. 함께 해준 선배, 파트너, 동료, 후배, 제자 모두 고맙게 느낀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도 인정하게 된다. 실수나 이기심으로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게 된다.


    특히 모성을 의무인 양 지고 사는 엄마도 안쓰럽고, 늙어도 여전히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아빠도 안돼 보인다. 벌리지 않는 것이 다행인 형제도 짠하다. 이렇게 함께 늙어가며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모두 각자의 경험과 사연으로 철이 든다. 훨씬 일찍 들 수도 있고, 훨씬 늦게 들 수도 있다. 영원히 안 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철이 드는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임신'이다. 임신이라는 빅 이벤트는 직접적인 당사자인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 책임자인 남성마저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엄청난 사건이다.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과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 심적 무거움은 마치 러시아 불곰 5마리를 고스란히 어깨에 얹고 사는 것과 맞먹는 기분이다.


    9개월의 임신기간은 기쁨만큼 큰 부담과 책임을 미리 체험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을 겪으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미리 겪은 선배들의 고충을, 앞으로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고통의 크기를 체감하게 된다.




    임신은 매우 고귀한 일이다. 존재를 만들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다.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생명체'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신이 우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신처럼 생명을 창조하는 기쁨을 체험한다.


    임신은 사회 유지를 위한 최소 단위를 지속케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론 가계를 존속시키게 한다. 끊임없는 소비와 생산의 '기초 단위'를 유지, 증가시켜 자본주의를 증식시킨다.


    창조주 코스프레의 두 주역인 부부에겐 '사랑의 증표'가 되며, 더불어 결혼이라는 '계약'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 사랑의 증표가 나중에 어떤 즐거움과 고통을 줄지는 미리 말하지 않겠다. 결혼이라는 본 계약을 뛰어넘는 2세라는 부속 계약이 어떤 끈끈함과 괴로움을 가져올지도 미리 말하지 않겠다.


    이렇듯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적으로 임신은 매우 고귀한 일로 대접과 축복을 받는다. 인구는 여전히 국력이며, 소비와 생산의 주체이고, 법 보다 강하게 사회를 유지해 주는 것은 동서고금에 동일하다. 때문에 아기를 갖고 낳는 것은 적극 권장할 일이고, 지원받아야 하는 일로 취급받는 것이다.

   



    '임신을 한 여성'은 고귀한 행위, 권장받을 행위를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신과 그 과정이 그만큼 힘들고 혹독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견뎌야 할 고통의 강도와 기간이 엄청 고 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입에 발린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와 인내와 고통과 후유증을 여성의 몸에 남긴다. 오직 여성의 몸에만 남긴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의미는 '번식'이다. 후세를 낳고 생존시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끊임없는 번식은 필수적이었다. 기회와 능력만 있다면 사양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구라는 별에서는 지속적인 번식을 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효용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다. 의학이 발달했고, 환경은 개선되었다. 더불어 태아, 유아, 소아의 생존율도 높아졌다. 이제는 남성도 여성도 번식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자의로 타의로 번식 기능을 포기하고도 지구별에 기여하며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달라진 환경과 역할은 길고 강한 고통인 임신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게 했다. 왜일까? 임신의 당사자인 여성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작기 때문이다.

  



    솔직히 임신은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1도 '유익'하지 않다. 여성이 처한 거의 모든 면에서 '유익'함을 찾기 힘들다.


    임신 기간 중엔 고통과 인내가 반복되는 몸과 마음에 변화가 온다. 사회적 경력이 단절되기도 한다. 또한 모든 과정을 어쩔 수 없이 '독박'으로 겪는다. 출산 자체도 고통이지만, 출산 이후의 '독박 육아'도 고통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이 있지 않냐고? 그건 화초나 반려동물을 키우면서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양육하는 것은 '양육의 즐거움'에 비해 여성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크다.


    미성숙하게 태어나는 아이에게 최소 10년 정도는 신경을 써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아이 엄마' 이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모성'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모성은 학습된 것이다. 유전적 성향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학습된다. 보고 배운다는 말이다. 지극 정성의 '모성 학습'도 이예전 같지 않다. 지금 40대들만 보더라도 본인들 클 때 엄마처럼 하고 있을까? 그러기엔 시대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원시시대로 가보자. 한 여성이 임신을 했다. 누구의 아이인가? 여성의 아이는 분명하다. 아빠는 누구일까? 이 여성이 한 명의 남성과만 섹스를 했을까? 그건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진화론적으로 여성은 '여러 남성'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안정적으로 번식과 양육의 환경을 제공하는 파트너를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의 과정은 '여러 유전자'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가혹한 테스트로 뛰어난 유전자를 선별 할 수 있게 진화하고, 아기는 강한 생존력을 어필하여 모체로부터 버림받지 않도록 진화했다. 그게 서로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선택한 '유전자'는 모체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내려고 한다. 반면 모체는 단 하나의 유전자만 선택하고 최소한의 지원만 하려고 한다. 이것이 임신이라 불리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다.




    임신은 '엄마와 아기와의 경쟁'이다. 인간은 '유산'을 하면 모체가 생명을 잃는 특이한 포유류다. 이것은 아기의 전략이다. 엄마의 생명을 인질로 자신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기는 엄마의 자궁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궁에 깊게 혈관을 뿌리내리고, 호르몬을 방출하여 엄마의 몸을 조정한다. 태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벌이는 일이다.


    '임신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자간전증'도 아기의 전략이다. 아기는 태반으로 많은 영양분과 혈액을 오게 하기 위해 엄마의 혈압을 올린다. 그러면서 엄마의 혈액에 특정 물질을 주입한다. 그 양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면 엄마는 '임신중독증'에 걸린다. 뇌를 키워야 하는 아기가 충분한 영양분을 얻고 있지 못할 때 벌이는 일이다.


    입덧을 시키는 것도 아기다. 입덧은 임신 초기에 일어난다. 물론 아홉 달 내 내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 초기는 아기의 기관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병균이나 독소가 든 잘못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진화적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입덧과 관련이 있는 GDF15라는 단백질이 임신 초에 태반에서 나온다. 그래서 입덧을 한 엄마들의 유산 위험이 더 낮다.




    가장 왕성하게 온몸의 기관을 만드는 시기에 입덧으로 제대로 섭취를 못하면 아이는 어디서 영양분을 얻을까? 바로 엄마의 몸이다. 근육, 지방, 뼈까지 쪽쪽 빨아간다.


    원시시대를 생각해 보자. 임신을 했다고 기아가 해결되고, 포식자의 위협이 없어지고, 장거리를 걷지 않아도 되고, 매일 먹을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절대 아니므로 아기는 생존을 위해서 엄마의 몸을 빨아먹는다.


    임신 초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말만 듣고,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보라고 했던 옛 어른들의 지혜가 새삼스럽다. 물론 옛 어른들은 아기 편이었다. 이처럼 안정을 취하고 잘 먹고, 잘 쉬어야 아기의 생존 전략으로부터 엄마의 몸을 지킬 수 있다.


    이런 임신이 여성의 몸에 좋을 리가 만무하겠는가? 임신은 모체인 여성과 '친숙한 이물질'인 아기가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치열한 과정이다. 막연하게 행복한 시절이 결코 아니다. 아기는 생명을 걸고, 엄마는 건강을 걸고 다투는 그런 시기다.      

  



    엄마도 무작정 아기에게 퍼주기만 하진 않는다. 아기는 엄마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직접적인 라이벌이다. 엄마의 몸은 이 라이벌에게 무작정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엄마는 초기에 배아 착상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든다. 자궁 내막은 배아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것은 배아에 대한 '압박 면접' 같은 일종의 테스트다. 건강하고 생존력이 강한 배아를 골라내 착상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임신 중 유산으로 엄마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배아들이 제대로 착상하지 못한다. 때문에 여성이 인지하지 못하는 유산도 많다. 이 강력한 테스트 때문에 자연적인 임신 성공률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엄마는 아기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필터링한다. 엄마의 '입맛'에 맞게 말이다. 엄마는 주도권을 쥐고 스스로가 선택한 것만 제공을 한다. 따라서 부계 유전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


    '자간전증', '입덧'과 함께 '임신성 당뇨'도 아기의 소행이다. 이에 엄마는 선제적으로 몸의 혈당을 낮추는 것으로 대응한다. 엄마의 호르몬 분비는 늘리고, 배아 호르몬은 제한한다.


    엄마와 아기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엄마 입장에서 태아는 50%만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이물질이지만 친숙하다. 하지만 태아의 입장에서는 100% 자신 그 자체다. 당연히 아기가 더 절박하다. 따라서 아기는 생명을 걸고 줄을 당긴다. 그래서 여성은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많은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엄마의 자궁은 흔히 '가장 안락한 곳'을 상징한다. 이것은 반의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기의 입장이며, 심지어 아기의 입장에서도 자궁은 가장 안락한 곳이 아닌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른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임신과 관련한 표현에는 '문화적 압력'이 상당히 작용되어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임신과 출산은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감상적, 낭만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여성은 이런 견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엄마는 아기와 '생존 다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며, 모두 아기 편만 드는 셈이다. 여성의 입장에선 억울할법한데, 문제는 여성들도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아기가 여성의 몸을, 심지어는 뇌와 마음까지 망가뜨린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감상적, 낭만적 견해는 잔인한 사실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사실을 알지 못해서 발생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문제는 임상의학이 처리한다.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임신 후, 몇십 년 후에 생긴 문제는 오롯이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버린다.


    굳이 번식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 여성의 입장에서 임신과 출산은 큰 이익이 없다. 몸이 상한다. 사회적 경력이 중단된다. 육아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미발달 상태로 태어나서 돌봐야 할 기간이 엄청 길다. 심지어 돈도 많이 든다. 맞벌이를 하면 힘들고, 전업을 하게 되면 삶의 주도성을 갖기 어렵게 된다. 자신과 삶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돌아오는 것은 나빠진 몸과 그것을 지켜내는 피폐해진 마음뿐이다.  




    임신은 겉보기엔 매우 자연스럽게 보인다. 심지어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내막은 치열하다. 그 와중에 여성의 몸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우선 임신을 하면 엄청 피곤하다. 고통스러운 입덧도 하게 된다. 소변도 자주 마렵게 되고 기침을 하면 요실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기에게 보낼 혈액을 만드느냐 현기증도 경험한다. 영양분을 오래 쪽쪽 흡수하기 위해서 뱃속에 음식물이 오래 머물게 되어 가슴이 답답한 증상도 생긴다.


    철분제 때문에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심장 박동이 증가하면서 거미줄 같은 푸른 정맥도 보인다. 혈액 순환이 증가하면서 피지 증가와 여드름도 나타날 수 있다. 가슴도 점점 커져 불편해지고, 질 출혈도 생긴다.


    호르몬 과부하 상태 때문에 마음이 변덕스럽게 되고, 건망증도 생기며, 집중력도 떨어진다. 변덕스럽고 예민하게 구는 것은 남편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호르몬 탓일 뿐이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로하게 된다. '친숙한 이물질'과의 치열한 경쟁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이다.


    사회적 배려는 낮고, '유난스럽다'라는 나이 든 동성의 말은 상처가 된다. 공감력 떨어지는 '이성 동업자'는 도움이 안 된다. 모두 '약한 권력'을 휘두르는 아기의 편이 되어 여성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여성과 부부들이 임신과 출산의 상세한 내용에 대한 고려나 학습 없이 아기를 갖는다. 그리고 상당기간 몸과 삶의 주도권을 잃는다. 안타깝게도 '임신 대백과'에는 여성의 몸과 삶과 정체성을 어떻게 보호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임신은 자연스럽다. 오랜 시간 진화한 잘 갖춰진 프로세스는 자연스럽게 보인다. 엄마의 '생존 검증'과 아기의 '생존 본능'은 임신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현대 여성의 입장에서 임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시 돌아가야 할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찾아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거 아닌 일에 유난 떠는' 사람이 되어 고통과 힘듦의 나머지 몫을 혼자 감내하게 된다.


    임신 중 스스로를 돕고, 임신 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임신 중 운동'은 매우 훌륭하다. 사실 언제 해도 훌륭한 운동이지만 임신 중 운동은 더욱 훌륭하다.


    임신 중 운동은 기분을 향상해주고, 수면의 질을 높여주며, 통증을 감소시킨다. 근력과 지구력을 강화해서 출산을 준비하고, 출산 이후 임신 전 상태로 회복을 돕는다. 또한 아기의 전략인 임신성 당뇨와 임신중독증의 발생 위험과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


    임신 전에 운동 습관이 있는 사람은 임신의 상태에 따라서 기존의 운동 습관을 유지하면 된다. 운동량이나 강도는 임신 전 건강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그래서 운동의 최대치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보통은 최저치를 말한다.




    문제는 평소에 운동 습관이 없는 여성들이다. 건강한 아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임신을 한 후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늦게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욕심에 무리를 하면 큰 문제가 된다. 그리고 아기는 알아서 엄마의 몸에서 잘 뽑아 먹는다. 건강을 걱정할 것은 엄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임신 이후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임신을 하지 않았어도 운동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신경 써야 할 일이 훨씬 많아진다. 안 그래도 약한 몸에 아기가 필사적으로 '빨대'를 꼽는다. 방어를 한다고 하지만 안 줄 수 없다.


    이때 약한 몸은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임신 전에도 못했던 운동을 임신 후에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기본적으로 몸이 피로해지는 상황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죽을 만큼 어렵다. 입덧이라도 심하게 하게 되면 운동은커녕 숨 쉬는 것만도 힘들다.


    가장 좋은 것은 임신 전에 좋은 운동 습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임신 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운동 습관을 임신 전에 갖게 되면 임신 이후라 할지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의하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임신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산소와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눈에서 별이 보인다.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이 있는 이유다. 특히 가만히 오래 서 있는 것은 매우 안 좋다. 그래서 임산부에게 지하철이나 버스는 최악이다. 그러니 멀쩡한 사람은 남녀를 떠나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마라. 제발.


    임신은 심혈관 및 근골격계에 많은 부담을 준다. 인대나 건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늘어나서 부상의 위험이 커진다. 이때 무리하면 평생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다. 임신 후반이 되면 허리나 골반의 관절과 근육에 많은 스트레스가 가해진다.

    

    요가, 웨이트, 필라테스 등을 하면서 숨을 참는 것도 좋지 않다. 숨을 참아야 할 정도로 힘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아기가 가장 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충분한 산소다.      

    

    바닥에 똑바로 등을 대고 하는 운동도 좋지 않다. 이렇게 하면 무거워진 자궁이 대정맥을 압박하여 뇌와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현기증이나 호흡곤란, 구역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신체 접촉이 많거나 균형감이 많이 필요한 운동도 적합하지 않다. 복부 외상이나 낙상 등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스쿠버 다이빙도 좋지 않다. 잘못하면 선천성 장애와 태아 감압증이 생길 수 있다. 스쿠버 다이빙은 몸치나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안전한 레저 가운데 하나다. 의외로 운동을 안 하고, 잘못하는 사람도 스쿠버 다이빙은 하는 경우가 있기에 임신 중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상식 차원에서 말해둔다.


    해발 2500m 이상 올라가면 고산병 때문에 태아에 산소 공급이 안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 산 중에는 2500m가 넘는 산은 없다. 그렇다고 마구 올라가지 않길 바란다. 멀쩡한 사람도 무리하면 사고 나는 곳이 산이다.


    임신 중엔 체온이 빨리 올라간다. 혈류도 증가되어 있고 신진대사율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운동까지 했다면 몸은 더욱 뜨거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 중에는 덥고 습한 환경에서 운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되고 무리한 운동은 '복직근 이개'라고 불리는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복직근 이개란 식스팩이 배꼽을 중심으로 세로로 벌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평생 비키니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임신 중 운동은 주의할 점이 많다. 특히 평소 운동이 안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면 평소 고강도 운동을 소화한 사람이라면 임신 기간 동안에도 운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단, 과유불급!




    임신 중 '여성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운동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할 순 없다. 이건 임신 중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운동 습관이 없는 여성은 어떻게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을까? 바로 '잘 먹는 것'이다. 똑바로 알아듣자. 많이 먹는 게 아니라 '잘 먹는 것'이다.


    임신 초기에는 더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중기엔 340kcal/day, 말기엔 450kcal/day를 평소보다 추가로 먹어주면 된다. 생각보다 추가로 먹어야 하는 양이 많지 않아서 놀랐을 것이다. 아마 평소에도 이 정도는 훌쩍 넘겨 먹고 있을 것이다.


    라면 하나가 평균 500kcal 정도 한다. 임신을 했다고 엄청 더 많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허탈한가? 몸을 보호하는 데는 많이 먹는 게 아니라 골고루 잘 먹는 게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과식'과 '영양식'을 헷갈려한다.


    뱃속의 아기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뽑아 간다. 그래서 아기가 가져가는 다양한 영양소를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피자나 빵이 아니라 '미세 영양소'들 말이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음식으로 먹어줘야 한다. 이런 성분들은 많은 양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있다 없다'로 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많이 먹어야 할 때는 임신 중보다는 '수유'를 할 때다. 그때는 정말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잘 먹고 쉬는 게 힘들 거 같으면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게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모유 수유한다고 '효자'로 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힘들면 모유수유를 중단하자. 평생 아픈 것보다 낫다.


    하지만 임신 중엔 그리 많은 에너지가 필요 없다. '두 명 분'을 먹겠다고 많이 먹으면 임신 중 비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 출산 이후에 원래 몸으로 회복하는 게 쉽지 않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잘' 먹는 것이 필요하다.




    신기하지 않나? 예쁜 몸을 만드는 것이나 임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나 '방법'이 똑같다.


    무조건 편히 쉬고 잘 먹는 것도, 무조건 힘들게 운동하고 안 먹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움직이고 제대로 잘 먹는 것이 우리 몸을 제대로 지키는 방법이다.


    아기와의 치열한 경쟁 중에도 이 방법은 그대로 통용이 된다. 아기가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면 아기는 절대로 엄마의 '곳간'을 바닥까지 털지 않을 것이다. 아기가 필요한 것은 뇌를 키우고, 각종 기관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영양분이다. 단순한 열량이 아니다. '아기가 먹고 싶어 한다'면서 과식, 폭식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아기는 '친숙한 이물질'이다. 엄마 입장에선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회사에서 'J 상무'가 지랄하면 받는 스트레스와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먹는 걸로 푸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망가지는 건 내 몸이다.


    아기는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엄청 이기적으로 군다. 그래서 엄마가 '숙주'처럼 축 늘어져 있어 주길 바란다. 그래야 아기가 편하게 엄마의 곳간을 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엄마 몸이 엄청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적당히 산책도 하고 가벼운 맨손 체조도 하면서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좋은 음식들을 먹어서 아이가 엄마 몸의 곳간을 바닥까지 털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아기와의 경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길이다. 나중에 다시 '원래의 나'로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다. '번식의 도구'로 망가질 것인지,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자아'로 회복할지는 9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임신은 아기에게도 여성에게도 중요한 기간이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남은 인생의 건강이 좌지우지된다.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최종 스코어는 '동점'이어야 한다. '공동 승자'가 되어야 한다. 온전히 자신을 걸고 죽기 살기로 임하는 아기에 대응해서 동점을 이루기 위해선 엄마도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하던 운동'을 '지속'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 주체'의 아량으로 다양한 영양을 아기에게 잘 공급해 주는 것이다.


    무리하게 운동할 필요도 없고, 많이 먹을 필요도 없다. 적당한 운동과 다양하고 영양 위주의 식사면 족하다.




    임신은 낯설고 힘든 과정이다. 뜻하지 않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치열한 경쟁'도 있다. 까딱 방심하고 잘못하면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쌓아 온 나의 '경력'과 '삶'과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 회복하는데 더 큰 고통을 수반할 수도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더 가치롭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


    특히 동성들의 격려가 필요하다. '나도 겪었으니 너도 겪어라'라는 태도는 악습의 대물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밭에서 애 낳은 얘기는 그만하고, 달라진 환경과 주체들에 맞는 격려를 부탁한다.


    동일한 경험이 생길 수 없는 이성의 후원은 한계가 있다. 공감대가 생기기 쉽지 않다. 머리로 공감하는 것과 온몸으로 공감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동 작업자'가 같은 맘이 아니라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그에게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라고 채찍을 휘둘러주자.




    인간의 임신은 그저 대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겪고,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여성이 감내하고 겪어야 하는 고통의 크기가 너무 크다. 그 고통에서 여성이라는 '사회적 자원'과 여성의 '주체적 삶'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서 아기가 된다는 따위의 지식만 가지고 이 험난한 길을 홀로 걷지 않길 바란다.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습관 한두 개 없이 이 어려운 길을 불쑥 나서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자원과 주체적 삶을 보호하는 첫 번째 대상은 '본인'이다.


    가임 능력이 있고 향후 임신을 고려한다면 명심하기 바란다. 이미 그 과정을 거쳤다면 '회복'에 온 힘을 쏟기 바란다. 회복의 방법도 똑같다.


    [누만예몸]의 정보 없이 임신과 출산을 겪은 후라면 더욱더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임신과 출산의 후유증은 삶의 후반부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충분히 회복을 해야 한다.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빼앗긴 영양소를 잘 채워줘야 한다. 그리곤 충분히 쉬어야 한다.


    낮은 체지방률 따윈 잊자. 낮은 체지방은 회복의 지표가 아니다. 진정한 회복은 이전의 스스로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전과 같은 밀도 높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갖는 것이다. 그게 낮은 체지방보다 훨씬 섹시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 주기 바란다. 그래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공동창조자의 '죄책감'이라도 덜 수 있을 듯싶다. []



* 공감, 댓글, 질문 등은 항상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94. 운동할 때 꼭 필요한 '베스트 운동 아이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