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몰래 함께 달려 본 결심 48일 차

#누만예몸 #실천법 #달리기 #러닝 #런린이 #펀러닝 #나이트런 #크루

by Maama


오늘(7월 12일 금요일)도 달렸다. 불금에 어울리는 불같은 날이었다. 잠깐 산책을 했을 뿐인데 강아지도 나도 땀에 흠뻑 젖는 날씨였다. 장마는 이제 끝난 것인가? 산책을 다녀와 낮잠을 자느냐 저녁 뉴스를 못 봤더니 안 맞는 일기예보도 아쉽게 느껴졌다.


금요일답게 트랙은 여느 날보다 덜 붐볐다. 오늘도 염전 같은 땀범벅은 각오를 해야 했다. 해는 쨍쨍했어도 습기는 다 날려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성껏 몸을 풀고 아주 가볍고 느리게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소중히 여기는 금요일에 한 무리의 러닝 크루가 몸을 풀고 있었다. 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군! 가볍게 몸을 풀며 달리고 있던 내 앞으로 그들이 들어왔다. 크루 리더가 말했다. '오늘은 최대한 천천히 뛸 거예요'라고.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빨랐다.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크루인 것 같았다. 초보라 하더라도 그들은 젊었다. 젊음은 시간을 이긴다.


모두가 나를 앞서 가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내가 앞서 달리고 있었는데 내 케이던스와 그들의 케이던스가 거의 같았다. 저벅저벅 발 떨어지는 소리가 나와 리듬이 딱 맞았다. 등 뒤로 크루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발을 맞췄다.


달리다 보면 뒤에서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달려오는 소리에 리듬을 잃은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케이던스가 미묘하게 다르다 보니 합창할 때 내 파트 놓치는 것처럼 자주 내 리듬을 잃었다. 누구는 너무 느리고, 누구는 너무 빠르고, 비슷한 듯싶으면서도 어깃장 나는 리듬들이 뒤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리듬이 꼬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초보자들을 교육하는 크루여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한 가지 힘든 건 음악을 틀고 있었다. 나는 뛸 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메트로놈도 이제 졸업을 했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내 몸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려면 그게 좋았다. 인위적인 소리가 없어지면 자유도가 높아졌다. 누군가가 그랬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부모의 원수에게 복수를 준비하는 사람뿐'이라고. 내가 그랬다. 부모님께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는지 여쭤봐야겠다.


그래서 크루를 앞으로 보내주고 그들 뒤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달렸다. 보통 이런 걸 '피를 빤다'라고 한다. 여기서 피는 혈(血) 또는 Blood가 아니라 'P'다. 'Power'를 게임 생태계에서는 P라고 줄여서 부른다. P는 체력을 의미한다. P를 빤다는 것은 상대 체력을 줄인다는 뜻이다. 즉, 내 체력은 아낀다는 의미다. 게임 내에서는 상대를 kill 하면 내 체력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상대의 체력이 낮아짐으로써 내 체력을 유지, 보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전거가 유행했던 시절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였다. 앞서 가는 사람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바람 저항을 피하는 것을 '피를 빤다'라고 표현했다. 바람을 직접 맞는 사람은 체력이 빠지고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사람은 바람을 피할 수 있어 체력 소모가 덜했다. 바짝 붙어서 달리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합의되지 않은 피 빨기는 비매너 행동이었다.


러닝 크루의 뒤를 따라 뛴다고 바람의 저항을 줄이거나 내 체력을 보전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것을 이용해서 페이스 메이커로 활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니 피를 빠는 축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육체적, 심리적으로 어떠한 방해나 거슬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 피 빠는 일은 오직 나만의 일이었다.


몇 바퀴를 따라 뛰어보니 러닝 크루는 6분대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나보다 평균 1분이 빨랐다. 아직 페이스를 올릴 계획은 없었는데 덕분에 우연찮게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8km를 뛰고 우린 헤어졌다. 크루도 나보다 두어 바퀴 더 뛰고 정리 운동을 했다.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날씨 탓도 있었지만 올라간 페이스 탓도 있었다. 땀이 너무 나서 눈이 따가웠다. 러닝 레깅스도 속옷도 모두 젖었다. 무거워진 옷의 무게만큼 상쾌함은 컸다. 내일도 좋은 러닝 파트너를 만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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