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과 밤

[Interview] 여행이 고픈 날엔 프랑스 디저트

마롱 글라세라는 달콤한 선물 ‘마롱5’

by maat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볕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밤조림을 베어 물며 말하죠. “밤조림이 이렇게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밤이라고 하면 연탄불에 구운 군밤이나 삶은 밤, 기성품 맛밤이 전부이던 저는 이 계절과 어울리는 밤 요리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국내 유일의 밤 디저트 연구소 ‘마롱5(MARRON 5)’.


입이 심심할 때 두어 알 먹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촉촉한 ‘마롱 꽁피’부터 프랑스 루이 14세가 즐겨 먹었다는 풍미 깊은 ‘마롱 글라세’까지 밤으로 만든 다양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곳이죠. 만드는 데 최소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이 걸리는 까다롭고 수고스러운 디저트를 꾸준히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음식 너머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어쩐지 가을이 일찍 떠나는 것 같아 아쉬울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 허전함을 채워줄 달콤함을 소개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롱5라는 이름이 흥미로워요.

안녕하세요. 저는 국산 밤으로 프랑스 프리미엄 디저트를 만드는 마롱5의 대표 김선화입니다. 이름에서 예상하셨을 수도 있는데, 가게를 열기 전 우연히 차 안에서 마룬파이브의 ‘슈거(Sugar)’를 듣고 운명처럼 이런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웃음)



<maat>의 이번 호 주제가 ‘밤과 밤’이에요. 그런데 밤 요리나 밤 디저트 전문점을 찾기 무척 어렵더라고요. ‘고구마는 많은데 왜?’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은 고구마와 달리 보관하기 어렵고 값이 비싸요. 속껍질 특유의 떫은맛을 싫어하는 분도 많고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까기가 무척 번거롭다는 점이죠. 그렇다 보니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품이 마트에서 파는 중국산 맛밤에 그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한때 유행한 보늬밤(밤조림)은 속껍질의 떫은맛인 탄닌 성분을 없애기 위해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요. 그래서 만들기는 편하지만 밤 특유의 맛과 매력이 사라지죠. 통조림에 가까워진다고 할까요? 저희는 고유의 맛을 위해 밤의 결을 살려 껍질을 제거하고 물로만 세척합니다.

솔직히 저희도 힘들어합니다.(웃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거든요. 물론 밤을 돌려 까는 기계가 있지만 겉모양을 살리면서 까는 기계는 아직 없거든요. 유튜브에 올라온 팁이나 해외 자료 등을 찾아 따라 해봤는데 모두 한계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큰 공장에서 열풍으로 밤껍질을 벗겨요. 하지만 이럴 경우 겉이 말라서 시럽이 잘 스며들지 않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저희는 고민 끝에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상처가 난 밤은 구움과자의 필링으로 활용하고 있죠.


표면에 달콤한 설탕이 코팅된 '마롱 글라세'(왼) 4가지 시럽에 절여 만든 밤당절임 '마롱 꽁피'(오)


그토록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니 더욱 궁금해요. 사실 마롱 글라세나 마롱 꽁피는 익숙한 디저트는 아니에요.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롱 글라세(marron glacé)는 프랑스어로 ‘밤’을 뜻하는 ‘marron’에 ‘윤기 나는’이라는 뜻의 ‘glacé’를 합친 말하자면 ‘윤기 나는 단밤’이에요. 프랑스에서 추운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먹는 프리미엄 디저트죠. 밤을 오랜 시간 촉촉하게 당절임 한 후 겉을 시럽으로 코팅해 낱개로 팝니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슈거 글레이즈로 코팅해 서걱거리는, 달콤한 맛과 사각사각한 식감이 살아 있는 디저트예요.

마롱 꽁피(marron confit)의 ’confit’는 ‘절인’이라는 뜻이에요. 바닐라나 홍차 등을 우린 시럽에 당절임 한 밤을 시럽과 함께 병에 담아 팔고 있습니다. 시럽의 활용도가 높아서 좋아하는 분이 많아요. 커피나 요거트에 넣어도 좋고, 프렌치토스트에 뿌려 먹어도 맛있죠. 마롱 꽁피 자체가 촉촉하고 부드러운 건 말할 것도 없고요.



3년 전에 오픈했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더 생경한 메뉴였을 것 같아요. 시장의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판매하게 됐나요?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에서는 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마롱 글라세를 먹어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처음 맛보았을 때 과하게 달아서 부담스러웠어요. 당도를 올리는 건 유통기한을 길게 늘리기 위한 방법이거든요. 오랫동안 팔 수 있으니까. ‘유통기한을 짧게 잡으면 단맛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죠. 이후 한국에 돌아와 몽블랑 케이크를 만들면서 마롱 글라세가 필요했는데 국내에는 파는 곳이 없더라고요. 구하는 방법은 해외 직구뿐이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좋은 밤이 있는데 만들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년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기성품과는 다른, 적당한 단맛과 풍미를 갖춘 건강한 디저트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제가 필요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해요.


구움과자의 필링으로 들어가는 마롱 글라세


당도를 낮추려면 밤 자체가 더 달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밤과 프랑스 밤의 차이가 있나요?

국산 밤은 단단하고 달아요. 프랑스에서는 가로수로 밤나무를 많이 심는데 이 품종(마롱)은 떫고 맛이 없어서 못 먹어요. 보통 샤테뉴(châtaigne)라는 품종의 밤으로 디저트를 만들죠. 그런데 이 샤테뉴보다 우리 밤이 당도가 훨씬 높거든요. 생각해보면 밤 자체가 맛이 없으니까 당절임을 해서 더 달고 고급스럽게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요? 현재 저희는 공주, 부여, 청양 세 곳의 농가와 계약해 가장 큰 특대 사이즈 밤을 조달하고 있어요. 과일처럼 밤도 기온차가 많이 날수록 당도가 올라가거든요. 특히 청양은 고산지대라서 햇빛도 많이 받아 더 좋은 밤이 나죠. 그 자체로도 맛있는 밤을 시럽에 졸여 설탕 코팅을 더했으니 맛없을 수가 없겠죠? 일단 저희 마롱 글라세를 한번 드셔보세요.


쫀득한 정도는 양갱과 비슷한데 입 안에 퍼지는 향이 아주 진하네요. 그동안 제가 밤 향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시럽 코팅을 한 덕분에 반짝거려서 보기에도 예쁘고, 기분 좋은 단맛이라 커피 생각이 절로 나요.

네 맞습니다. 이것만 먹기에는 꽤 단맛이 강한 디저트죠. 차나 커피, 와인, 위스키와 궁합이 좋아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페어링은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입니다. 밤에 간단하게 한잔할 때 아주 좋은 조합이에요. 짠 안주를 먹으면 다음 날 몸이 붓잖아요.



맞아요. 저도 와인에 케이크나 크래커를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칼로리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요.

낱개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작게 잘라 예쁜 접시에 올려 먹으면 딱 좋죠. 칼로리 걱정 없이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까. 당을 섭취하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어느 정도 알코올이 들어오니까 잠도 잘 오고. 가을밤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죠.



프랑스 지인들에게도 선물하셨다고 들었어요. 반응이 궁금해요.

파티시에, 제과업계 관계자 모두 좋아하셨어요. 저희는 바닐라, 오렌지, 마르코 폴로, 웨딩 임페리얼 등 다양한 향을 입히고 있어요. 제가 알기론 프랑스에서 홍차를 입힌 마롱 글라세는 없어요. 보통 알코올이나 바닐라를 입히거든요. 우리만의 강점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브랜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퀄리티 유지가 관건인 것 같아요. 저희는 3개월에 한 번씩 전문 기관에 의뢰해 식품 검사를 하고 있고, 특대 사이즈의 밤만 써요. 양은 적고 값은 비싸죠. 하지만 앞으로도 이 밤을 쓸 예정이에요. 덧붙여 연말이나 밸런타인데이에는 특별한 선물을 찾는 분들을 위해 프랑스 고급 발로나 초콜릿으로 코팅한 인스피레이션 제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고민도 많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마롱5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수업을 하다 보니 제가 사용하는 재료의 60% 이상이 수입산이더라고요. 초콜릿, 밀가루. 버터 등.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건 기껏해야 달걀, 물, 우유 정도? 수요도 단가도 중요하지만, 상품을 만들면서 우리 농가에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셰프에 의해서 1차 산업, 2차 산업이 활력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두 같이 성장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농장과 직거래하며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많이 힘드세요. 연로하시고 힘에 부치는 데도 왜 계속하시냐고 여쭤보면 “원래 하던 일이잖아. 밤나무가 계속 크니까.”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큰 힘은 못 되더라도 이 밤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농부들과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가격을 흥정하지 않아요. 사실 저희로서도 무척 어려운 결정이지만 좋은 밤을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언젠가 국내산 재료만으로 학생들에게 수업하게 된다면 흥미로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지만, 제가 마롱 글라세를 가지고 프랑스 제과 박람회에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조그맣게 부스를 열어서 국산 밤과 상품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걸 만든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미래를 그리면서 조금씩 꾸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뭐든 허투루 할 수 없죠. 최종 목표는 다섯 가지 고정 메뉴를 판매하는 거예요. 마롱 글라세, 마롱 꽁피, 인스피레이션(초콜릿), 구움과자, 잼이요. 대부분 수작업을 해야 하는 상품이다 보니 주문이 많아도 문제, 없어도 문제지만요.(웃음)



주소 경기도 의왕시 양지편로 13-17

가격 마롱 글라세(4만 5천 원), 마롱 꽁피(3만 4천 원), 구움과자(3만 8천 원)

문의 031-346-8814 @marron5_bakinglab




Editor 노유리

Photographer 김병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