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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t Dec 03. 2021

[Focus] 올해의 웰던

수고했어 올해도


슬슬 캐럴이 들려오는 시기. 한 해의 마지막으로 달려갈수록 헛헛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화려하고 신나는 연말 분위기와 대비되어 이유 모를 공허감과 쓸쓸한 기분이 더해지기 하고요.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챙기지 못했다는 마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나의 성과에 대한 아쉬움이 이 ‘연말 정산’ 기간에 스멀스멀 발현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디언의 달력에 따르면 11월은 모두 아직 끝나지 않은 달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을 지나 달력의 마지막 장이 남은 지금, 우리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해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올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여러분이 꼽는 성취와 변화는 무엇인가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이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 있을 테니까요. 오늘만큼은 자신에게 너그러운 한마디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 





반려견을 들이고 싶지만 무거운 책임감과 여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비글구조네트워크를 통해 임시 보호라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우리에겐 3개월이라는 기간이 주어졌어요. 비글과 같이 지내면서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도저히 보낼 수 없어 입양이라는 절차를 거쳐 가족이 된 지 3개월가량 되었습니다. 영화 <마스크>에 등장하는 잭 러셀 테리어의 이름을 따 ‘마일로’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비글은 원체 활동성이 뛰어난 견종이에요. 요즘 매일 두 시간 가까이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요. 마일로가 지루하지 않게 여러 경로로 산책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의 모르던 길도 찾게 되고, 저 역시 밖에서 환기하며 활기찬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현재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마일로가 답답해하니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진취적인 생각도 들어요.(웃음) 

안종훈 음악 레이블 PD


일을 처음 시작한 12년 전 신입 시절, 선망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가령 매거진의 판권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각 부문 옆에 이름이 적혀 있던 주인공들이요. 시간이 지나 지금 내가 항상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며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사실이 때때로 낯설게 느껴지면서 신기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올해 이직해서 새 회사의 팀장을 맡게 되었어요. 팀원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팀원 중 한 명이 “항상 좋은 결과물로 봐오던 분이 저희 팀장님으로 오셔서 무척 기쁘고 신기해요. 언젠가 꼭 같이 일하고 싶었거든요.”라는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분투해온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내가 헛일하지 않고 잘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근래 커리어에 대한 고민으로 흔들렸던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요. 

장연화 엔터테인먼트 비주얼 디렉터 


전셋집을 빼달라는 주인집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도어 투 도어 20분 걸리는 자취 라이프에서 통근 1시간 반이 소요되는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나니 오히려 선고를 받아들이기 수월했어요. 다만 삶의 모양을 새로이 바꿔야 했죠. 가능한 한도 안에서 내게 유리하게끔요. 통근 시간이 늘어난 저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요. 덕분에 길어진 하루는 보다 잘 활용하고 있어요. 자취를 할 땐 나만 기다리는 반려견 버찌 생각에 최대한 일찍 귀가해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있기에 믿고 저녁 시간을 보다 여유로이 쓸 수 있고요. 무엇보다 버찌의 행복을 확인하는 것이 참 좋아요. 가족 구성원이 여럿으로 늘어나니 버찌에게는 다채로운 관계와 새로운 루틴이 추가된 셈이죠. 모두가 즐거운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가요. 

마진오 만화가 



집을 옮기게 되었는데 구조가 조금 독특했어요. 저는 주거가 목적이었지만 다른 친구는 작업실로 사용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셰어 하우스였죠. 그만큼 공간이 넓고 멋진 집이에요. 입주했을 때 텅 빈 백지상태의 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다가 작은 화분을 들여놓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식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점점 더 멀리 대형 도매시장까지 가게 되고, 식물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도 분명해졌어요. 지금은 집이 거의 식물원이 되었습니다.(웃음) 이 흥미로운 변화를 살려 마음 맞는 사진과 동기 둘과 ‘아시안 하이웨이’(@asian.highway)라는 식물 숍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평일엔 본업인 포토그래퍼로서 사진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숍을 운영해요. ‘부캐’가 생긴 거죠. 확실한 건 요즘 제 삶이 더 풍성해졌다는 거예요.

이원재 포토그래퍼 


올해는 내 평생 안 해본 일들을 시도한 해예요. 어릴 때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만 먹으면 하기 싫은 일은 얼마든지 안 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언제까지 피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해볼까?’ 하고 해본 거죠. 그냥 했더니 할 수 있더라고요. 저는 아직 자전거를 잘 못 타요.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태생적으로 못 타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제가 ‘따릉이’로 자전거 타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잘 안 되길래 유튜브 영상도 찾아 꼼꼼히 보면서 기술을 연마하는 중인데 이런 제가 스스로 낯설면서도 재미있어요. SNS 채널에 러닝 계정을 개설해 나 혼자 기록을 쌓아가는 것도 그 일환이에요. 애초에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게 아니어서 아주 미약한 1g의 성과도 나름 성과인지라 기분이 좋더라고요.            

최동주 음원 유통사 콘텐츠 제작자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자 올해 제가 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한 이 꽤 이상한 위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저는 안 될 걸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덜 기대하는 편이 기대가 무너졌을 때 오는 상실감이 덜하기에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거든요. 이 책을 내면서 가까운 지인 몇몇에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회신을 받아 보는데, 하나같이 저를 두고 인생의 작은 일에도 잘 감탄하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더라고요.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 이것이 진짜 나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좋은 부분을 알아봐주는 친구들이 고마웠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이름만 올린 채 거들지도 못한 저자 대신 두 팔 걷고 나서준 이들의 도움과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 올해의 가장 소중한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김송희 작가




Illustration by @llaonkim

Word and Photography <maat> Editorial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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