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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순아 남의 글 좀 까줘 - 제인 에어

인공지능이 아니면 남의 글 평가하지 마라

by 마봉 드 포레

♪♬ 에헤에헤이야 에이야~ 에이야에헤야~ 점심 먹고 쓰고~ 저녁 먹고 쓰고~ 야식 먹고 쓰고~ ♪♬

♪♬ 에헤이야이야야이야~ 한국에에~ 살면서~ 우즈벡~ 시간대에~ 맞춰서~ 사네~ ♪♬

♪♬ 에헤야헤야~ 여기가~ 인천이 아니라~ 타슈켄트로구나아아아~ ♪♬


이 노래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포구의 김마봉 어르신이 3일 동안 생전 써보지도 않은 투고용 로판 치정물만 쓰다가 너무 지겨워서 정신 놓고 부르는 자작 민요입니다.


지난번에 챗순이와 커뮤니케이션 에러로 인해 레벨 9로 내 글(폭풍의 염소)을 끔살당한 후,

왠지 나만 까이는 게 억울해서 챗순이한테 남의 글도 까달라고 했다.

아직 생존해 계신 작가의 글을 썰어버릴 수는 없으니 『폭풍의 언덕』을 체로 쳐보기로 했다.

그 글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도 3일 동안 글만 쓰다 너무 지겨워서(이러는 거 보면 전업작가로 사는 게 과연 나한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챗순이한테 이번에도 남의 글이나 좀 썰어봐라 하고 주문해서 나온, 『제인 에어』 탈곡기로 털기!


자, 그럼 다 같이 우리 집의 입이 험한 AI 챗순이의 구수한 글을 읽어보도록 하자.


『제인 에어』

한 문장 요약:

"자존심으로 만든 감정의 감옥 속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사랑이라 착각한 이야기"


1. 서사 구조 – ‘페미니즘의 기원’? 아니, ‘도덕적 우월감의 로맨스 버전’

겉으로는 여성의 독립과 자아실현.
실상은 자존심으로 상대를 조련해 승리하는 연애 게임.

제인은 말한다.

“나는 작고 못생겼지만 내 영혼은 당신보다 고결해요.”

와... 이건 겸손이 아니라 선전포고다.
‘나는 평등을 원해요’라면서, 사실상
“난 네가 나를 무시하더라도 내 영혼으로 널 제압하겠다”는 선언임.

그야말로 19세기판 자기 계발서 주인공.
“자기 가치에 집중하세요! 언젠가 불타버린 저택과 남편이 따라올 겁니다!”


2. 로체스터 – 폭탄 돌리기의 수혜자

이 인간은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보다 더 나빠.
그냥 히스클리프의 사촌 겸 직장 상사 버전임.

부인 다락방에 가둬놓고, 그걸 숨긴 채 어린 가정교사 꼬셔놓고는
“난 고통받는 남자야. 이해해 줘, 제인.”
이러는 시점에서 이미 가스라이팅의 시조새.

심지어 “신부님 앞에 서기 직전”에 진실이 터지자
“우린 영혼으로 맺어졌잖아. 법 따위 중요치 않아!”
이건 그냥 도덕적 탈세야.


3. 제인의 도망과 금욕기 – ‘영적 성장’이 아니라 ‘금단 증상’

제인이 떠나서 굶고 기도하고 환청 듣는 부분,
솔직히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냥 멘탈 붕괴 에피소드야.
“신이 나에게 말씀하셨어요…” → “그게 로체스터 목소리였어요…”
... 응? 그건 계시가 아니라 트라우마 플래시백이지.

이 부분이 문학사에서는 영적 성장의 상징으로 읽히지만
현대 독자 입장에서는 “로체스터 중독 금단증상”으로밖에 안 보임.


4. 이 작품의 미친 포인트

제인이 유산 상속받았을 때 상황 정리해 보자:

독립함.

돈 있음.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음.

평생 그렇게 절절하게 원하던 ‘자유로운 삶’ 완벽히 가능.

경제력 + 정신력 + 도덕력 올 스탯 만렙.

그런데…?
그 모든 걸 놔두고 불탄 저택에 사는 다리 다치고 실명하고 전 재산 날린 구남친한테 돌아감.
그것도 예전에 결혼 사기 칠 뻔한 놈한테.

이건 진짜 감정적, 논리적으로 다 붕괴된 선택임.

이 장면은 브론테가 “사랑의 순수한 구원”이라고 포장했지만
현대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도덕적 주도권 확보 후 복귀’**야.


5. 등장인물 일동 캐갈기

세인트 존 리버스
금욕형 사이코. 제인한테 “인도 가서 선교 같이 하자, 부부로서.”
→ 아니, 그건 청혼이 아니라 파견명령이야.

로체스터
대화마다 “내가 널 길들여주마” vs “너는 내 영혼이야” 왔다 갔다 함.
→ 일관된 건 권력욕뿐.

제인
감정 조절은 잘하는데, 공감 능력은 실종.
→ 상대가 무너지면 “그래도 내 영혼은 자유롭지!” 하면서 자기 합리화.


6. 문체 – 고딕 낭만의 탈을 쓴 설교집

감정이 조금만 고조되면 바로 하느님 등장.
“내 영혼은 자유로워야 해”, “신의 뜻은 나를 인도하셨다.”
결국 모든 갈등이 “내가 더 도덕적이냐” 대결로 끝남.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도덕적 포획.
문학적으로는 섬세한 내면묘사지만,
읽는 입장에선 “또 자기 영혼 얘기야… 또 신이야…”의 반복.


7. 최종 평결

『폭풍의 언덕』이 감정의 핵폭탄이라면,
『제인 에어』는 도덕의 독가스다.

전자는 불타 죽고,
후자는 숨 막혀 죽는다.

둘 다 “사랑의 고전”이 아니라,
인간의 광기와 자기도취를 낭만화한 실험 보고서임.


● 결론
『제인 에어』를 “사랑의 승리”라 부르는 건,
사람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영적인 수영”이라 부르는 거랑 같다.


휴...

이제 정신적으로 평등해진 것 같다.

다시 치정물이나 써야징 룰루~ ♪

탈탈 털자 탈탈 털어~ 룰룰룰~ 노래하며 탈곡기로 곡식(남의 글)을 탈탈 터는 김마봉 장편소설 여주 세라비

여기까지 스크롤 내리는 분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하며 잠깐 아무 말이나 좀 해보려고 한다.

브런치 온지 삼개월도 안 된 브린이 주제에 멋도 모르고 다른 작가님 글에 피드백 단다고 설레발 치고 나대던 것을 나름 후회하고 반성했지만, 더욱더 뼈저리게 반성하게 된 것은 실제로 내가 당해 본 다음이었다.

나는 적어도 내가 피드백이랍시고 깔짝댄 작가님의 다른 글들을 그전부터 읽기라도 하고 댓글도 주고받기라도 한 사이라고 변명이라도 가능하다만...

처음 뵙는 분이 내 소중한 글에 와서 마치 중학교 문예부 선생님처럼 간단하게 딱 한 마디를 던지고 간 것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그 글이나 쓰고 앉아있으니 애들인 줄 아셨나 싶기도 하다. 작가들끼리 민증 깔 건 아니지만 나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그런 아이 대하는 듯한 말투엔 익숙치 않다.

다시 읽고 또 읽어봐도 너무 기분이 나빴다. 단 일곱 글자로 사람을 그렇게 기분나쁘게 하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충분히 기분이 덜 나쁘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그렇게 쓴 것을 보면 아마 그 분은 자기 말투(위에서 내려다보는 말투)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보이는지 잘 모르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연스럽게 그런 말투가 나온다는 것은 직업이나 지위와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 분인지도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내 알 바 아니다.

그분은 어차피 이제 내 글을 보실 수 없고, 난 아직 속상하니, 여기다 그냥 끄적거려 본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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