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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다

우리 애들, 나 없으면 누가 키워줘...

by 마봉 드 포레

2025년 10월 현재 상황

브런치 입성 4개월째. 구독자는 조금씩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정적으로 220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100명만 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맞구독과 품앗이의 힘이 80% 정도 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큰 성과다.


어차피 브런치에서 마이너의 길을 걸을 생각하고 들어온 거긴 한데, 최근에 고민이 생겼다.


원래 계획은 브런치에서는 비소설류와 잡담이나 올리고 다른 작가들 글 구경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내 이미 다 써 놓은 소설들은 어디에 올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가장 큰 문제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내 소설 어디다 올리지?

브런치에서 일반 소설 이외에 SF, 무협도 꾸준히들 올리고 계신 분들이 있지만, 브런치가 소설, 특히 장르소설에 대해서는 천대하는 것은 맞고 브런치라는 플랫폼 자체가 에세이밭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서 들어오는 독자들도 기대하는 것은 에세이지 장르소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 애매한 판타지들은 어디로 보내야 하는 것일까?


일단 웹소설 플랫폼에 보내면 파묻히기 딱 좋다. 웹소설 플랫폼에 로판뿐 아니라 그냥 판타지도 올라오기는 하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고, 있다 해도 거의 회빙환(특히 판타지 게임 캐릭터 빙의가 대다수)이다. 내 소설은 정통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마수, 마왕, 엘프 이런 것도 안 나온다. 아아 난 대체 왜 이런 애매한 이도저도 아닌 글을 써버린 걸까, 그것도 무지막지한 장편으로.


내 소설 얘기

내 소설 얘기를 좀 해야겠다. 이제는 할 때가 된 것 같다. 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 세상은 예측 불가한 세상이고 사람은 자기에게 병이 있든 없든, 조심을 하든 안 하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일 자신이 살아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애들은 대체 누가 세상에 내보내 준단 말인가? 그동안 내가 세계관도 올리고, 캐릭터 사진으로 글 썸넬에도 써먹고 한 것은 조금씩 우리 애들을 세상에 내보내 주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었다. 사실, 릴카, 염소, 이런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낼 수 있었다. 그건 그냥 내 낙서 같은 것들이니까. 그런데, 내 진짜 날것의 영혼을 담은 소설은 막상 어디에 내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종이책과 웹소 플랫폼

원래는 종이책으로 내보내려고 했었다. 너무 길고(43만 7천 자), 호흡이 길기 때문에 연재물로 하면 제대로 쫓아올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종이책이 적합한 것 같았고 실제로 어떻게 읽히나 궁금해서 완결한 후 제본해서 책으로 만들어 보았더니 엄청 두껍긴 했지만 읽는 호흡으로는 역시 종이책이 적합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투고를 했지만 쌩판 신인의 43만 자짜리, 두꺼운 책 2권이나 적당한 두께의 책 3권까지 나와야 하는 총 3부짜리 판타지 소설을 출판해 줄 곳은 찾기 어려웠다. 나라도 그런 리스크를 지고 출판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다.


웹소설 플랫폼에 싣기에는 너무 장편이고 회차당 호흡도 길지, 브런치에 싣기에는 장르소설이라 외면당하지. 원래는 우리 애들 정말 최고로 빛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깔아주고 싶었다.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안될 것 같고 여기나 저기나 외면당하긴 마찬가지일 거라, 우리 애들은 그렇게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그러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 우리 애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우리 애들, 나 없으면 누가 키워줘...

그럼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나 정으니의 침략이나 소행성이나 기타 등등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로 인해 죽는다면? 이건 재수 없는 말 하지 말라는 그런 레벨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다 느끼는 걱정과 똑같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애들은 누가 돌봐줘? 우리 애들 고아원 보내? 배우자나 아이들의 조부모, 친척 등이 있다면 그들이 키워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온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우리 애들을 알고 있고 내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렇다면 지금 나는 활동하는 글쓰기 플랫폼이 브런치 하나뿐이니 우리 애들을 브런치에 내보내야 하는 것인가. 브런치는 비소설류 좀 올려보고 심심풀이로 잡담 올리러 가입한 데라 본진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장르소설이 외면당하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연재 중이신 작가님들은 그걸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브런치 독자들이 초반의 빠른 후킹 같은 거 상관하지 않고 우리 애들을 봐주시지 않을까.


우리 애들 돈 많이 벌어서 국제학교 보내주려고 뼈 빠지게 돈 모으다 과로로 사망해서 애들을 미취학 상태로 고아를 만들어 버리느니, 그래도 의무교육이라도 받게 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100회 차 넘어가는 긴 소설을 과연 누가 따라올까도 싶다.


이렇듯 요새 나는 매일 이럴까 저럴까 고민 중이다. 우리 애들, 이렇게 얘기하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얘네들을 세상 빛을 보게 해주지 않고서는 죽을 수가 없다. 죽는데 미련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지가 추가된 건 사실이다. 나는 얘네들을 반드시 내보내 주어야 한다.


얘들아, 에미에게 지혜를 다오

내가 세상에 아주 조금이라도 글 쓰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아마도 그건 얘네들을 위한 것일 텐데. 원래 가장 소중한 건 어디에도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나 빛나고 소중한 아이들이지만, 그래서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다. 얘들아, 너희들을 반드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해주고 싶었고 팬덤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장르소설 찬밥취급 당하는 양에 안 차는 곳(브런치)이지만, 그래도 에미가 언제 니들 보러 가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도 먼저 내보내 주는 게 좋겠니? 오늘 밤에 잠들면 애들한테 한번 다시 물어봐야겠다.


배경에 눈 덮인 산과 푸른 산들이 겹쳐져 있고, 강이 흐른다. 비탈에는 포도밭과 농가가 보인다. '라를르', '프티 몽텔리'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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