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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포르텔 몽테의 잡화점

포르텔 몽테

by 마봉 드 포레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캐릭터 소개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한편, 시점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세라비들은 포르트메르에서 정신없이 도망쳐 시골 마을 포르텔 몽테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다행히 말을 돌보고 마차를 손볼 수 있는 제법 큰 여관이 있었다. 세라비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고, 이카레이유에서 곧 말과 마차를 찾으러 올 테니 며칠만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말들이 딱 봐도 어찌나 비싸고 귀해 보이던지, 여관 주인은 감히 딴마음을 먹을 꿈도 꾸지 않고 순순히 말과 마차를 맡아 주었다.


포르트메르 교역소에서 너무나 무섭고 긴박한 하루를 보낸 일행은 일단 이곳에서 지친 몸을 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포르트메르를 지나 칼베르 땅에 도착해, 칼베르의 수도인 파렌베르크까지 마차로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마차도 가져갈 수 없고 사람이 사는 마을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브뤼메 산맥 뿐이었다. 오스틴이나 스칼하븐의 병사도 여기까지 쫓아올 리는 없었다.


세라비와 레이는 앞으로 갈 길을 상의했다. 레이가 아는 한, 이곳 이후로도 사람들이 사는 작은 촌락들이 몇 개 있었다. 레이는 바닥에 지도를 펼쳤다. 산맥은 이카리아와 칼베르 사이를 길게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렵게도, 포르텔 몽테 이후로는 산맥 부분에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곳은 아직 지도를 그릴 만큼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레이가 설명했다. “여기부터는 마을도 없고 사람도 거의 살지 않아요.”


세라비는 지도의 빈 공간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을 과연 그들은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왕자님까지 데리고? 마을도 없다면 노숙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레이는 여기서 가끔 수련을 했다니 익숙할 수도 있지만 세라비를 포함 나머지 일행들은 노숙은커녕 지금 묵는 여관 침대조차도 불편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세라비와 레이는 노숙을 염두에 두고 모든 짐을 다시 쌌다. 왕자의 짐이 좀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산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왕자가 아무리 울고 불어도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세라비는 왕자의 짐도 과감히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정리를 해버렸다. 가지고 가지 않는 물건들은 마차에 실어 놓아 나중에 세르비카 경이 오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 세라비는 레이를 데리고 마을 중심가로 갔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산행과 노숙에 필요한 물건들을 좀 더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산간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레이가 말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부싯돌이에요. 그리고 먹을 것이 정말로 없을 때 죽지 않으려면 설탕이랑 소금도 좀 필요하구요. 산이니까 물은 중간에 구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을 담아 갖고 다닐 수통도 있어야 해요.”


세라비는 떠오르는 나쁜 상상들을 애써 물리치며 레이가 말하는 대로 물건을 샀다. 레이는 스승 라마야나와 산에서 대체 뭘 하면서 다녔는지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세라비는 선선한 강바람이 부는 라를르 마을의 편안하고 쾌적한 자기 집 뜰 긴 의자에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길게 누워 있던 행복한 때를 떠올리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제기랄, 이런 짓까지 해서도 입신양명 못하면 귀신이 되서라도 그 어떤 자손도 다시는 업적 비슷한 것도 못 남기게 하고 말겠다.


레이는 세라비의 마음속을 읽고는 세라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세라비의 뒤숭숭한 기분을 고려해서 레이는 산에서 맛있는 것도 해 먹을 수 있다며 퐁듀 세트 같은 것들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세라비는 조금 기분이 나아져서 웃기 시작했다.


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세라비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지혈대, 밧줄, 손도끼, 씹고만 있으면 보름까지 버틸 수 있다는 보름뿌리 등을 바구니에 넣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다 고르고 나서, 세라비는 먼저 가게 밖으로 나가 레이를 기다렸다. 그때 세라비의 눈에 아까는 못 보고 지나쳤던 이상한 가게가 하나 띄었다.


『당신만의 맞춤 잡화』


그리고 그 아래에는 좀 더 작은 글씨로 『특수약 조제 · 불치병 치료 · 집안문제 해결 · 비밀엄수』라고 적혀 있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가게로군.” 세라비는 중얼거렸다.


뭔가에 이끌리듯 세라비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낡아서 여기저기 경첩이 달강거리는 문이 십 년 만에 처음 열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구부정하고 추레한 노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진열장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잡동사니들과 수상쩍은 부적들, 먹으면 큰일 날 것 같아 보이는 물약이 든 유리병 등등이 묵은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아니 이런! 이렇게 오랜만에 귀한 분이 오셨군.” 노인이 인사를 했다.


“이렇게 훌륭한 검사님께서 와 주시다니… 반갑소이다!”


세라비는 자기 뒤로 또 누가 들어온 사람이 있나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가게 안에는 주인을 제외하고는 세라비 뿐이었다.


“검사요?”


“그렇소이다.”


“하지만 전 그냥…” 세라비는 자신을 소개할 단어가 딱히 없음을 깨닫고 잠시 말을 멈췄다. “백수인걸요.”


“훌륭한 검사님이시오만.” 주인이 말했다.


이건 틀림없이 사기꾼이다! 하고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가려는 세라비를 주인이 달려 나와 소매를 붙잡았다.


“물건을 사러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 보고 가면 되겠소? 무엇이 필요하신가?”


“어… 필요한 건 다 샀고… 그냥 둘러보려구요!” 세라비는 어물어물 말했다. “전 아픈 데도 없고 집안에 문제도 없고…”


“허허…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얼굴에 그늘이 있어! 말 안 해도 내가 다 알지!” 주인이 말했다. 세라비는 뭔가 뜨끔하여 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네는 검사인데 검이 없구먼.”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구석에서 뭔가를 부시럭부시럭 찾더니 구석에서 먼지투성이 상자를 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가게를 나가버리려던 세라비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상자를 보러 돌아왔다.


상자 안에는 겉면에 금빛 광채가 흐르는 팔 길이 정도의 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고대 왕조 때 만들어진 검일세. 만든 지 250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새것처럼 빛나고 있지! 공격력도 탁월한 데다 장식효과도 매우 뛰어난 진품일세.”


주인은 상자 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은 마치 검체 겉면을 황금색 공기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주위에 금빛 광채를 발하며 어두컴컴한 가게 안을 환히 비추었다.


검의 손잡이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죠?” 세라비가 물었다.


“나도 모르네. 고대의 말이니 그렇다면 마법의 힘을 가진 말이지 않겠는가? 누군가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게.”


세라비는 머뭇거렸으나, 이윽고 “멋지긴 한데 저는 검이 필요 없거든요…”하고는 다시 가게를 나가려고 하였다. 그 순간, 주인장 노인네의 엄숙함이 불타는 눈빛에 세라비는 깜짝 놀랐다.


“자네, 이 늙은이를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자넨 타고난 검사가 틀림없는데 왜 필요가 없다는 건가? 내가 저쪽에 앉아서 자네가 가게로 들어오는 걸 보고 검사님이라고 그러지 않았는가?”


“나, 나를 어딜 봐서…” 세라비가 더듬더듬 말했다.


“자네 조상님들 중에 유명한 검사가 계신데 그분이 조상신이 되어 자네에게 붙어 계시네. 운명을 거부하면 조상신께서 화를 내실 걸세!”


세라비는 이 말을 듣고 감히 등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정말… 뭐가 붙어있어요?”


“조상신이라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일세.”


“이거… 얼만데요?”


주인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금액을 불렀다. 세라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주인이 가게 밖까지 쫓아 나왔다. 결국 세라비는 처음에 주인이 부른 가격의 반 값을 주고 검을 구입하고 말았다. 세라비가 출장비 이외에 개인적으로 쓰려고 가지고 온 돈은 그날 그렇게 끝났다.




세라비가 먼젓번 가게 앞으로 가니 레이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라비는 레이에게 검을 보여주었다.


“웬 검을 사셨어요?”


“나보고 검사래. 검사 조상님이 붙어 있대.”


레이는 어디서 사기를 당하고 왔냐는 표정으로 세라비를 바라보았다.


“너 고대 알티스 문자 읽을 줄 아니?”하고 세라비는 레이에게 검의 손잡이를 보여주었다. 레이는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뭐라고 쓰여있어?” 세라비는 기대에 차서 물었다.


“놀라지 마세요. 「이 검의 품질을 보증함」이라고 쓰여 있어요.” 레이가 대답했다.


세라비는 온몸에 힘이 풀렸다. “겨우… 그거야?”


“네. 좋은 물건인가 보네요!”


세라비는 역시 사기꾼이었어! 하며 검을 환불받기 위해 아까 그 가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까 분명히 그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웬 평범한 빵집이 있을 뿐, 특수약을 제조하거나 집안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쓰여있는 이상한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세라비는 그 부근을 다 돌아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수상한 가게는 세라비의 돈을 삼키고 땅으로 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세라비는 레이에게 돌아갔다. 잔뜩 풀이 죽은 세라비의 얼굴을 보고 레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 대단한 말인 줄 알았는데…” 세라비가 실망해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사기당한 것 같아.”


“아닐 거예요 세라비 님.” 레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고대의 생산품에는 우리가 모르는 힘이 있다고 해요. 얼마를 주고 사셨는지 모르지만 좋은 물건을 사신 것 같아요.”


“정말?” 세라비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어떻게 알아?”


“제가 이제까지 본 고대의 검들 중에는 「비매품」이나 「개업기념」이라고 쓰여진 것도 있었는걸요. 품질이 보증된 검을 사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세라비가 검의 가격이 얼마였다고 알려 주자, 레이는 속으로 아이고 사기당했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세라비가 아까 검을 샀던 가게가 땅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자, 레이도 이 검이 어쩌면 주인을 찾아온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법사들 중에는 그렇게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듯한 신비로운 가게에서 자기만의 스태프(마법사의 긴 지팡이)를 구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법사들이 그러한 신비의 가게에서 물건값을 깎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레이는 세라비가 운이 매우 좋았거나 아니면 사기를 당하고 가게 위치를 잊어버려서 못 찾는 것 둘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세라비와 레이는 다시 여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마을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잡화점_최종.png 세라비가 황금빛 검을 내미는 잡화점 주인장 노인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장면, 어둡고 오래된 잡화점 안이 검의 빛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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