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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르비카 경의 기막힌 처지

세르비카 경

by 마봉 드 포레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캐릭터 소개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세르비카 경은 테라스에서 아침을 들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세르비카 경의 취향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정원에서 바람을 타고 라벤더 향기가 실려왔다. 정원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 난간에는 제라늄과 부겐빌레아가 가득 핀 항아리 화분들이 걸려 있었다. 정원사가 어제 막 손질한 장미 가지들 위로 붉은 장미와 분홍색 장미가 포슬포슬한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는 향기롭고 햇볕은 따스했지만, 세르비카 경의 마음속에는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세라비들이 떠나고 며칠 후에 집에 도착한, 『누나 따라가니까 저 찾지 마세요.』라고 달랑 한 줄 적인 아들놈의 편지였다.


세르비카 경이 기겁을 하여 포르트메르로 떠나기도 전에 코토란이 이카레이유에 홀로 돌아왔고, 예의 왕자님 실종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추적대를 구성해서 조용히 찾아보자는 세르비카 경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걱정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왕비의 주도 하에 전국적으로 포스터를 붙이는 바람에 온 국민에게 왕자가 실종임을 알리게 되는 전대미문의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왕비가 바로 몸져눕는 바람에 세르비카 경은 전담반을 구성하여 전국을 돌며 재빨리 포스터를 수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명한 극작가인 부친(세라비와 레이첵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왕자님 실종 사건》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재빨리 기획하여 전국 홍보 순회를 돌게 함으로써, 포스터가 사실은 연극 홍보 포스터였다고 믿게끔 하였다.


그렇게 하여 플로르 왕자의 실종은 이제 왕가와 일부 측근 신하들 사이에서만 쉬쉬하는 사건으로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스칼하븐 대사가 팔레 에클라에 나타나 거세게 항의를 했다.


“포르트메르에 주둔 중인 우리 스칼하븐 평화 유지군의 제보에 의하면 며칠 전 이 나라의 지체 높은 사람들인 듯한 일행이 무단으로 출국을 시도하다 도망쳤는데, 일행 중의 한 명이 얼마 전에 실종된 이 나라의 플로르 왕자가 틀림없다고 하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오!”


마르셀 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세르비카 경은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대사에게 대답했다.


“우리 전하께서는 건강히 잘 계시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요.”


“거짓말 마시오! 왕자가 잘 있으면 왜 전국에 왕자를 찾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는 거요? 우리 스칼하븐의 연락망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스칼하븐 대사는 전담반이 미처 수거하지 못한 포스터 한 장을 마구 흔들며 소리쳤다.


“저런, 또 그 얘기입니까?” 세르비카 경은 애써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도 지금 극단 관계자를 엄중히 처벌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세르비카 경은 며칠 전 극단 대표의 이름으로 자신이 내보낸 공개 사과문이 실린 신문을 대사에게 보여주었다. “왕실 모독죄로 처벌하려고 생각 중입니다만…”


스칼하븐 대사는 기운이 한풀 꺾여 물러갔다. 세르비카 경은 정신을 차리고 정보요원들을 포르트메르에 보내어 정보를 수집하게 함과 동시에, 감옥에 갇힌 코토란을 만나러 갔다.


코토란은 왕자가 따라간 밀사단을 기획한 사람이 세르비카 경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순순히 세르비카 경에게 왕자의 행방을 불고 말았다. 세르비카 경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포르트메르 교역소에서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하니 다들 무사하긴 한 것 같은데, 대충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그 순간의 아찔함을 상상하며 세르비카 경은 신문의 포르트메르 지역 소식란을 뒤졌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큰 소식은 없었다.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아내 클레망스는 귀한 외아들과 조카가 행방불명된 줄도 모르고 평온한 얼굴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지방의 법원으로 장기 출장을 간 줄로 믿고 있었다.


세르비카 경은 어지러운 마음으로 서재로 들어가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 세르비카 경은 고뇌하기 시작했다. 밀사로 조카를 선택한 것은 세르비카 경의 논리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은 시골 한량 같아 보여도 세라비는 수십 차례 세르비카 저택에서 탈출했다 도로 잡혀와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담벼락 따위는 가볍게 넘는 날렵함, 그리고 평소에는 비록 잘 사용하지 않지만 위기상황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빠르게 돌아가는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세라비는 그 엉망진창인 태도와 경계심 없는 말투로 인해 밀사 같은 중요한 임무의 수행자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조카라서가 아니라, 세라비는 세르비카 경과 같은 냉철한 정치인의 눈으로 보아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물론 장손의 임무도 이 참에 이룬다면 더욱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세라비가 무슨 말로 꾀었는지 바보 같은 아들놈이 따라가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왕자님은 또 왜!


이제까지 자신이 기획한 모든 일들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달랐다. 세르비카 경은 자칫 잘못하면 왕자의 가출을 방조한 죄로 감옥에 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세르비카 경을 믿고 왕자의 행방을 고백한 코토란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었지만, 세르비카 경은 세라비가 어디론가 이상한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왕자와 아들놈을 되찾아오기 위해 포르트메르 근교에 있는 모든 마을을 뒤졌다. 그러나 애써 뒤질 필요조차도 없었다. 세르비카 경에게 다른 편지가 또 도착했던 것이다.


『삼촌, 말이랑 마차 맡겨 놨으니까 찾아가세요.』


괘씸한 아들놈의 편지처럼 달랑 한 줄 적힌 세라비의 편지였다. 그 밑에는 시골 마을의 한 여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세르비카 경은 몸소 포르텔 몽테로 달려가, 네 명의 일행이 마을을 거쳐 산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포르텔 몽테부터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없으므로 말과 마차를 여관에 맡긴 모양이었다.


그러나 포르텔 몽테 인근의 산촌 마을을 끝으로 일행의 흔적은 사라지고 말았다. 세라비들을 놓친 세르비카 경은 절망에 빠졌다. 세르비카 경은 이제 아들에 이어, 왕자의 행방불명에 대한 뒷수습까지 해야 했다.


세르비카 경은 뜻하는 바가 있어 수도원에 들어가 영성 수련을 하고 오겠으며 당분간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쓴 왕자의 가짜 편지를 왕에게 전달되도록 손을 썼다. 왕은 공부만 하던 애가 갑자기 웬 영성 수련인가 싶어 신하를 수도원에 보내어 정말로 왕자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신하도 어차피 세르비카 경이었기 때문에 왕은 다시 안심하고 국정을 돌볼 수 있었다.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생각하며 세르비카 경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르비카 경은 왕에게도, 왕비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심지어는 아내에게 조차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같이 보낸 수상쩍은 마법사의 능력이 증명되었다는 점이었다. 포르트메르에 조사하러 보낸 세르비카 경의 정보요원들은 놀라운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바로 포르트메르 교역소의 부서진 나무 외벽에 관한 것이었다.


“썩지도 않은 외벽이 대포를 쏜 것도 아니고 도끼로 쪼갠 것도 아닌데 부서졌습니다. 마차 딱 하나 빠져나갈 정도로만요.”


‘파괴 마법사 맞군.’ 세르비카 경은 생각했다. ‘심지어 딱 필요한 만큼만 부수고 갔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놈일지도…’


세르비카 경은 레이의 출신학교이자 이카리아의 유일한 마법학교인 몽켈리에 마법학교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 스칼하븐 대사가 또 찾아와서 소리지르기 전에 황급히 사람들을 보내어 외벽을 순식간에 수리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칼하븐 대사는 또다시 세르비카 경을 찾아와 도망친 일행이 포르트메르 교역소의 외벽을 마차로 들이받아 부수고 갔다며 이건 일반적인 마차로는 불가능하니 마차로 위장한 신무기를 개발 중이라면 당장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나무 외벽이 유리벽도 아닌데 말발굽으로 들이받아서 부서지겠냐…’ 세르비카 경은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이카리아 소유인 교역소를 마치 자기네 것인 것처럼 구는 스칼하븐에게 다시 한번 분노했다. 스칼하븐 대사는 “당신들이 교역소를 점령해서 이카리아 사람들이 접근도 못 하는 바람에 썩은 외벽의 보수공사가 늦어져서 그런 것이다. 이번에 저희가 아주 기가 막히게 보수를 해 놨으니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세르비카 경의 설명에 납득하지 못하고 마구 화를 내다가 지쳐서 돌아갔다.


며칠 후 몽켈리에 마법학교 학장에게서 세르비카 경 본인만 열 수 있도록 봉인된 회신이 도착했다. 회신의 내용은 간결했다.


『그 녀석은 뭐든지 다 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세르비카 경은 코토란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날 그를 만나러 갔다. 왕자가 진짜로 수도원에 있다면 코토란이 같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므로, 그를 마치 왕자의 시중을 들러 가는 것처럼 생뜨 비쿠아르 수도원에 보낼 생각이었다. 코토란은 새로운 임무를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저는 수도원에서 지내며 왕자님께서 칼베르에 건강하게 도착하셔서 원하시는 바를 다 이루시기를 신께 기도할 생각입니다.”라고 충성스러운 코토란은 말했다.


“대체 왕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뭔가?” 세르비카 경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코토란은 경건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세계 평화 아닐까요?”


세르비카 경도 같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괘씸한 아들놈(과 조카와 왕자와 마법사 놈)의 여행길이 제발 무사하기를 세르비카 경은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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