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섬, Misty Island 공연을 보러 가다
네 명의 동네 청년들이 스카이 섬의 전설과 민요를 연극하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Misty Island'라는 공연 포스터를 지나가다 발견하고 보러 갔다. 공연은 동네의 오래된 펍에서 열렸다. 헝가리와 스위스 사람 빼고는 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고 헝가리와 스위스 사람조차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라 언어 때문에 스토리를 못 따라가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진짜 재미있었다.
(아래 링크는 내가 갔던 2016년이 아니라 더 업그레이드한 버전의 2017년 공연 소개 영상임)
무대며 소품이며 정말 간단하고 소박했지만 연기력으로 부족한 무대장치와 소품을 다 커버했고 내용도 풍부했으며, 노래도 진짜 잘했다. 못 알아듣는데도 이렇게 재밌으니 알아듣는 사람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게다가 거인, 요정, 전사, 나쁜 드루이드! 가 나오는 이야기들이니 어떻게 재미가 없어(어렸을 때 읽은 에이레 민화집 영향을 너무 강하게 받아 아직도 아일랜드나 켈트에 대한 환상이 있다 - 나뿐 아니라 내 동생들조차).
공연은 뮤지컬 형식으로 노래하다, 내레이션 하다, 연극하다, 다시 노래하다, 쉬는 시간 없이 쭉 흘러갔다. 웃긴 얘기, 슬픈 얘기, 오래된 얘기, 역사적인 얘기, 요정 얘기, 왕자 얘기, 영웅과 거인 얘기... 슬프려나 싶으면 다시 웃기고, 웃기려나 싶으면 다시 무거워지면서 사람들을 들어다 놨다 하며 순식간에 공연이 끝났다. 기타 치는 사람 하나,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 셋, 소품도 몇 개뿐, 무대장치도 없는데도 몰입력 끝내줬다. 아 이렇게 퀄리티 높은 공연을 단돈 8 파운드에 웰컴 드링크(로컬 위스키)까지 주면서 보여주다니 이건 거저다 거저.
재미있는 것은 아일랜드의 쿠쿨린도 이쪽 이야기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같은 인물이 두 나라의 민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내가 아는 유일한 쿠쿨린 얘기는 아일랜드 민화에서 요정 아내의 도움으로 쿠쿨린을 물리친 장사 핀 맥쿨 이야기뿐이지만(즉 물리쳐야 하는 나쁜 놈으로 나온다), 아일랜드와 가까운 스코틀랜드의 각 섬 민화에도 쿠쿨린이 종종 등장한다(많이 돌아다닌 모양이다). 『마봉 드 포레의 장르실험실』 ‘동화'편에서 이미 한번 우려먹었지만 이 공연에서 나온 에피소드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여기에 다시 우려먹붙여넣겠다.
옛날옛날 스카이 섬에는 스키아크라는 엄청 강한 여전사가 있었어요. 무패 신화의 전사 스키아크는 산속에 전쟁과 싸움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서 섬의 젊은이들을 가르쳤어요.
무패의 전사 스키아크의 소문은 멀리 아일랜드까지 전해져서 얼스터(북아일랜드)의 쿠쿨린도 스키아크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쿠쿨린은 아일랜드에서 엄청 이름을 날리는 거인 용사였어요. 아일랜드 전설에 안 등장하는 데가 없고 싸움이라면 아주 여기저기 안 들이대는 데가 없었어요. 무패의 전사라고 하니까 마구 궁금해진 쿠쿨린은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본토까지 한번, 스카이 섬까지 한번 토탈 두 번 노를 저어 도착했어요. 축지법을 쓰는 모양이에요.
쿠쿨린은 스키아크의 학교를 찾아갔어요. 쿠쿨린은 거기 도착하면 죄다 모여들어 "헐 쿠쿨린이다... 대박! 한수 가르쳐 주세요!" 혹은 "니가 쿠쿨린이냐? 덤벼라!" 막 이럴 줄 알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까 사람들이 "신입생 환영" 막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스코틀랜드까지 쿠쿨린의 명성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서 아일랜드에서 이름만 들어도 애기가 울음을 그치는 그 유명한 쿠쿨린을 몰랐던 거예요.
듣보 취급을 당한 쿠쿨린은 화가 나서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쿠쿨린은 스키아크에게 도전했어요. 그러나 스키아크는 웬 신입 놈팽이가 도전을 하니 얼척없어서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제자와 싸우게 했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쿠쿨린은 제자들을 모두 이겨먹었어요.
제자들이 모두 패하자 스키아크는 약속한 대로 쿠쿨린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3일 밤낮으로 싸웠지만 도대체 승부가 나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어디에서 싸우면 유리할까 머리를 굴려가며 산, 들판, 골짜기, 바다에서 싸웠어요. 그 와중에 스키아크는 온 섬의 영주들에게 이런 싸움 다시 못 보니까 모두 와서 관람하시라고 초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하루 밤낮을 더 싸우고 싸웠지만 여전히 승부가 나지 않았어요. 제자들은 스키아크가 즐겨 먹는 고기를 구워서 뭐 좀 드시고 하시라고 불렀지만 싸우느라 바쁜 두 사람은 먹으러 오지 않았어요.
제자들은 이번에는 개암나무 열매(헤이즐넛이죠)를 채워 고기를 굽고 두 분 이것 좀 드시고 마저 싸우시라고 불렀어요. 견과류가 기억력에 좋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스키아크와 쿠쿨린은 지혜의 개암나무 열매를 먹으면 저ㅅㄲ/저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고기를 먹으러 왔어요.
하지만 지혜의 개암나무 열매를 먹는 순간 두 사람은 둘이 쎔쎔치면 될걸 왜 X 나게 며칠 밤낮을 싸웠나 하고 깨달았어요.
두 사람은 서로 칭송하며 "나와 동등하게 강하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평생 얻을 명예 다 가짐" 하며 서로의 강함을 인정했어요. 스키아크는 또한 학교가 있던 곳의 험준한 산 중 하나에 쿠쿨린의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써 쿠쿨린을 명예롭게 했어요. 충분히 만족한 쿠쿨린은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갔답니다. 끗.
나는 이 공연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내용을 잘 몰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다음날 동네 서점에 가서 스카이 섬 민화집을 찾아봤다. 배우 중 한 명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 서점에 들어와서 인사를 했다(그 정도로 동네가 좁다). 민화집 찾는다고 하자 그럼 이게 제일 괜찮을 거라며 책을 골라주고 갔다.
나는 책을 사서 어제 공연에 해당하는 얘기들을 재빨리 찾아 읽고, 그 공연을 다시 보러 갔다. 배우들이 놀라는 걸 보니 두 번 온 사람은 내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여기 두 번 보러 오신 분도 계십니다."라며 소개도 했다(내향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으나 의연하게 미소로 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공연을 녹화하거나 녹음하길래 나도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했다. 그리고 여행 다니면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도 틈틈이 들었다. 여러 번 들으니 무슨 내용인지 이제는 알겠는데 문제는... 폰 바꾸면서 음성파일 백업을 안 하고 폰 초기화시켜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피정 가서 산속의 새소리도 녹음하는 사람인데 이때 스코틀랜드 여행하면서 기차 안내방송(떼얼티, 떼얼티), 공연,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 글라스고 대성당의 합창단이 성가 연습하는 소리 등등 모두 날려먹고 말았다.
형제 여러분, 항상 백업하십시오. 외장하드에도 백업하고 클라우드에도 백업하십시오. 백업만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아멘.
이전 화에도 썼지만 나는 포트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날씨도 정말 춥고 해는 거의 구경도 못했지만, 뭔가 포트리만의 포근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동네 식당과 카페에서 먹은 것 사진을 찾아보니 겨우 이것밖에 안 나오는데, 딱히 맛있는 것도 없었다. 영국이 뭐 그렇지. 그나마 사진이 남은 걸 보니 먹기 전에 찍을 정신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쓰고 있는... 아니 쓰다 만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소설은 포트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몇달째 소설 안 써져서 죽겠다ㅜㅜ).
사실 이런 화창한 날씨를 본 적은 없지만(아 진짜 거기서 지낸 시간 중 10분 정도만 빼고 계속 흐리고 비만 왔다) 아마도 날씨가 좋은 날의 풍경은 이렇지 않을까? 글도 안 쓰는 주제에 이미지부터 그리고 있는 나는 '티르 타라글렌의 평화로운 나날들(지금 쓰는 소설 제목 스포)'에 나오는 식당 '티르가의 솥' 내부에서 본 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이런 모습의 포트리에 가보게 될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