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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월 29일 수요일의 채무

설날에 부모는 아이에게 채무가 존재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고 있었다.

by 마부자

금주 29일째. 2025년,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새해 아침이 밝았다. 어쩌면 오늘은 새해 첫날 세웠던 목표나 다짐이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날일지도 모른다. 혹여나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계획이 흐트러졌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은 날.


다행히도 나는 올해 초 나 자신과 한 약속을 꽤 성실히 지켜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29일째'라는 숫자를 붙이며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쌓아가다 보니 어느덧 29일.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다짐이 아닌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뜻하지 않게 시작된 금주도 주변의 도움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때는 별것 아닐 거라고 여겼던 이 작은 변화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취로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새해 첫 명절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작년의 나와는 다른 태도로 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변화는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작은 습관을 지켜내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하루가 되길.


수도권과 중부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는데, 대구는 여전히 눈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러나 날씨만큼은 완전히 겨울이 되어버린 듯했다. 창밖의 온도는 그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밀도가 높고 단단했다.


거센 바람이 마치 자신을 들여보내 달라는 듯 창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혹시나 하고 창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오늘은 굳이 손을 내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겨울이란, 이렇게 피부가 아닌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었다.


아침 명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새해 첫 다짐을 다시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제 읽다 잠시 덮어두었던 철학의 세계로 다시 빠져들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많은 자기계발서와 다양한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문장이 자주 인용되는 걸까? 그의 철학은 왜 이토록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적이지 않은 철학자라고나 할까? 그의 사상은 현실과 유리된 관념이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만든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고통,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삶, 그가 말하는 것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고민들이다. 철학이라 하면 흔히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리지만, 쇼펜하우어의 글은 마치 날카로운 겨울바람처럼 직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오늘도 대구의 하늘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마음속엔 쇼펜하우어의 문장들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의 말처럼 욕망을 줄이는 연습을 한다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바람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나는 다시 한 번 다짐을 새기듯 조용히 책 위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철학이란 늘 어렵고 추상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자들의 사상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차원적 사고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조차 선뜻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로랑스 드빌레르의 책을 읽고 나서 철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읽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역시 철학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 온 필수적인 학문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오늘, 쇼펜하우어를 만나면서 철학에 대한 내 관점은 한층 더 명확해졌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욕망, 고통, 인간관계, 행복,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철학이 단순한 사색의 도구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고민들을 해결하는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삶의 괴로움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더 많이 얻고, 더 크게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도 커지고, 결국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행복을 얻기 전에 먼저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내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나는 이제 무조건 더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덜 원하려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채우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었지, 비우는 법을 배우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또한 ‘살아 있어야 행복도 불행도 느낄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통찰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살아가는 이유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너무나 살고 싶어서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에 멈춰 서게 되었다. 삶이 버거울 때 죽음을 떠올리는 것도 결국 생에 대한 강렬한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고, 그것이 곧 인생이라는 메시지가 내게 깊이 스며들었다.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너무 가까운 관계는 오히려 상처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남녀 관계의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종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과정으로 해석하는 그의 시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맺는 관계조차도 결국 생존 욕구의 연장선에 있다면, 나는 그동안 너무 감정에 휘둘려 관계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인간관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쇼펜하우어는 많은 사람들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결국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니 정작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고 지적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곧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같으며, 모든 기준을 나 자신에게 두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얼마나 자주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쓰며 살아왔던가.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평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만족할 때 찾아온다는 것을 쇼펜하우어를 통해 비로소 깨 달았다. 철학은 단순히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실적인 도구였다.

이제야 조금, 철학이 내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 같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새해 아침엔 다 같이 떡국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꼭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살을 함께 먹는 의식 같은 식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모두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탓에 아직 집 안에는 깊은 밤의 공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지런히 떡국을 준비했고, 뜨끈한 국물이 퍼지는 순간 집 안에도 조금씩 아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제 너무 늦어 집에 가지 못한 딸, 그리고 아직 한참 더 잘 시간이었을 아내와 막내까지, 눈을 비비며 하나 둘 식탁으로 모였다. 사실 정신이 반쯤 꿈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떡국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의무감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모두들 나름의 리액션을 하며 “맛있다”는 말을 건넸다.


떡국 한 그릇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 해의 첫 명절 아침을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면서 문득 생각했다. 새해의 의미는 결국 이런 순간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거창한 목표를 세워야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우리 가족은 그렇게 또 한 살을 함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께 새해 인사를 드린 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범한 명절 아침,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몸을 기대던 그 순간, 막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날인데 세배는 받으셔야 하지 않겠어요?"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세배라니… 생각도 못 하고 있던 명절 세레머니였다. 차례를 지내지 않은 이후, 그리고 큰딸과 둘째가 성인이 된 이후로 우리는 세배라는 행사를 자연스럽게 건너뛴 지 적어도 5년은 된 것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정작 세배를 하겠다고 나선 막내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잠옷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떡진 머리, 맨발. 세배를 할 준비도, 받을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지? 하는 순간, 깨달았다. 오늘 같은 날, 아직 학생 신분인 막내에게 우리는 빚이 있었다는 것을.


명절, 특히 설날에는 부모는 아에게 묵묵히 갚아야 할 채무가 존재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고 있었다.


결국 언제 빌렸는지도 모를 빚을 막내에게 갚아야 했다.


그러나 녀석의 욕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자연스럽게 다음 타겟을 누나로 설정했다. 평소엔 관심도 없는 누나를 뜻밖의 다정한 말투로 부른다.


"누나~"

그러나 딸은 이미 눈치를 챘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눈빛으로 동생을 째려보며, 말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만약 너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너의 머리가 숙여지는 그 순간, 나의 손바닥이 너의 머리를 향할 것이다."


그럼에도 막내는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협상을 시도했다. 그리고 결국 둘은 적당한 선에서 절충하며, 새해 첫 가족 행사를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돈이 오가고, 눈빛이 날아다니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아침.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 가족만의 설날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새해는 이렇게 작은 해프닝과 웃음 속에서 지나간다.


평소 같았으면 서재로 들어가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었을 텐데, 오늘은 조금 더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막내가 "오늘까지는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그 제안에 우리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어제에 이어 윷놀이 2차전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낮에 한참을 웃었다. 공중으로 던져진 윷가락이 떠오르는 만큼, 우리 네 명의 기분도 함께 떠올랐다. 하나둘씩 업고 있는 윷판의 말들처럼 우리 기분도 점점 업되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몰입했다. 단순한 놀이지만, 이 작은 나무토막 몇 개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딸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고, 모두 배도 출출해졌다. 결국 오늘 저녁도 외식으로 결정. 집 근처의 해물찜 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워낙 오래된 노포라 평소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오늘은 유독 붐볐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리가 없을 뻔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들. 우리처럼 차례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어제 볼링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명절 풍경은 점점 변하고 있지만,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차례를 지내든 지내지 않든, 중요한 건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웃고, 함께 한 끼를 나누는 것 아닐까. 오늘의 윷놀이처럼, 또 이 해물찜 한 끼처럼. 이렇게 또 하나의 설날이 지나간다.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해물찜을 맛있게 먹었다. 딸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아내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이틀간의 명절을 되돌아보았다. 아내는 너무 즐거웠다며 환하게 웃었고,


나도 진심을 담아 "행복한 시간이었어,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막내가 자기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더니,


"저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내와 나는 순간 멈칫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큰소리로 웃으며 설날을 마무리했다. 하루를 정리하며, 이렇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득 안고 일기를 쓴다.

올해 설날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울할 수도 있었다. 퇴사를 했고, 작년처럼 보너스를 받지도 못했다. 물론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실직했다는 사실이 나를 짓누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세운 목표와 계획이 있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 길을 향해 가는 중이다. 눈앞에 보이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저 끝에 분명 내 꿈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우울할 이유가 없다.


행복하고 감사한 설날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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