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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월 28일 화요일의 맺음

음력 24년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웃음으로 끝을 맺었다.

by 마부자


이 글을 보시는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올 한 해 목표하신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이뤄지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금주 28일째, 간밤에도 역시 대구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아니 우리집 인근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 대구도 이제는 군위를 편입함으로 인해서 면적이 넓어져서 눈이 제법 내린 지역도 있다는 문자가 왔다.



무심결에 창문을 열었는데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차가운 기운을 품은 바람이 창문을 통해 베란다로 밀려들어왔다. 급히 창문을 닫고 명상을 하고 루틴을 완료했다. 지난 사흘간 우주와 생명 그리고 지구의 탄생 등 신비의 세계와 조금은 결을 같이 하는 철학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선택했다.


그동안 많은 자기계발서에 나왔고 ‘하와이 대저택’에서도 많은 소개가 있었으며, 블로그 이웃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추천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선택했다.아직 니체의 책을 꺼내 읽을 용기는 없고 일단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접근하기 수월한 책으로 시작을 하기로 했다.


딸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애매하여 점심은 각자 해결하기로 약속을 수정해서 우린 갑자기 점심을 셋이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갑작스런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 셋이 선택한 메뉴는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메뉴 하나 고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싶었다. 아내는 김밥에 쫄면, 막내는 피자와 치킨을, 나는 간단한 국밥을 원했다. 모두의 입맛이 다른 것도 문제였지만, 배달을 할지, 아니면 나가서 먹을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대화는 꼬여만 갔다. 어느 한쪽으로도 타협이 쉽지 않아 답답해질 즈음, 섬에서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절 인사차 걸려온 전화였다. 아들의 목소리가 밝아서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섬 근무 지원자가 없어 대체자가 오지 않아 내륙으로 나오지 못하던 상황에서 드디어 원하는 병과로 결정되어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들이 말하는 내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들렸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식인지 알기에, 나도 덩달아 기뻐지며 새해 첫 명절에 받은 이 반가운 소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2월 말쯤 근무지가 변경되면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기쁜 마음이 더해졌지만, 그 밝은 대화 뒤로 미묘한 감정의 여운이 흘렀다. 그래서 문득, 세 사람의 저녁 메뉴 갈등을 해결할 아이디어로 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라면 뭘 먹겠니? 우리가 네가 먹고 싶은 메뉴로 고를게."

그러나 아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는요, 방금 당직 마치고 와서 라면이나 끓여 먹으려구요." 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명절에도 혼자 당직 근무를 하고 들어온 아들에게 철없는 부모가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갑자기 질문한 것도, 아들이 당연히 그렇게 대답한 것도 서로 어색한 침묵을 만들었다.


내가 말했다.

“수고 많이 했네, 라면 먹지 말고 맛있는 것 사먹어”


아들이 말했다.

“명절이라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았어요….”


센스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아무리 아빠가 한 번 말 실수를 했기로서니 좀 에둘러 말해도 될 것을 누가 군생활 오래해서 약간 꼰대가 아니랄까봐 전혀 상대기분을 생각해주지 않는 쌀쌀한 말투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아들이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안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고 딱 군인 스타일의 성격인 것을 알기에 서운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더 전화를 붙잡고 있으면 아주 작은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 해서 아내와 안부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결국, 오늘 점심 메뉴는 배홍동 비빔면과 냉동만두찜으로 결정되었다. 멀리서 고생하는 아들이 라면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아무리 고기와 국물이 떠올라도 미안한 마음에 다른 메뉴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막내도 조용히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온 가족의 의견을 모은다기보단, 미안함과 마음을 담아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막내가 한마디 던졌다. "다음부터는 물어보지 말고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 그러면서도 "물론 이 메뉴도 정말 맛있긴 한데, 확 달라진 음식 때문에 기분이 좀 상했어요."라며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듣고 아내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따가 맛있는 거 많이 먹자!"


막내를 달래며 웃음이 넘치는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딸의 집으로 향했다. 딸을 픽업하고 세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어 볼링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설날 전날의 저녁, 도로는 한산했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링장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볼링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일이 설날인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볼링을 치러 왔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가족끼리 명절을 간소히 보내는 편이라 차례를 지내지 않고,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볼링장에 모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사정은 각기 달라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 부모님과 함께 온 중년의 가족들, 그리고 친구처럼 보이는 나이 든 사람들까지. 가족 구성과 세대는 달랐지만, 볼링이라는 공통된 즐거움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들이 신기하게도 하나로 겹쳐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명절이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가 있음을. 차례를 지내는 것만이 전통의 전부가 아니고, 이런 방식으로도 충분히 명절다움을 느낄 수 있음을 말이다.


볼링장의 북적이는 풍경 속에서 문득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 사회도 이제 많은 변화를 겪고 있구나. 예전에는 명절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던 모습이 있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남자들은 거실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던 풍경. 그것이 한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명절의 모습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 당연함 속에서 누군가는 즐겁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된 하루를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음식 냄새에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힘들었던 명절의 기억이 여전히 떠오르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명절 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볼링장이라는, 명절과는 조금 동떨어진 공간에서 가족들이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새로운 명절의 형태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전통의 변화를 아쉬워할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변화가 더 나은 방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은 더 이상 무겁고 피곤한 의무감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휴식의 날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명절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의미가 변화를 통해 더욱 폭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변화가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면서 명절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함께’**라는 가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따뜻하게 다가왔다.


볼링 팀은 자연스럽게 아내와 딸, 그리고 나와 막내가 한 편이 되었다. 어깨가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공을 굴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가족 경기의 결과는 단순히 의욕만으로 뒤집을 수 없는 것이었다. 승리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갔다.


아들은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며 이기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의 실력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볼링공을 던지는 아내의 모습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결국 패배의 대가는 저녁 식사비로 이어졌고, 이른 저녁은 아빠인 내가 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메뉴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어제의 일이 떠올라 딸에게 농담 삼아 웃으며 이야기했더니, 딸이 환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오늘은 내가 결정해줄게요. 미나리 삼겹살 먹고 싶어요.” 딸의 선명한 답변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다행히도 볼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자주 가던 삼겹살집이 떠올랐다. 그곳의 미나리 삼겹살은 항상 고소한 향과 신선한 재료로 만족감을 주었던 곳이었다.

우리는 곧장 삼겹살집으로 향하며 차 안에서 오늘 볼링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되새겼다. 서로의 실수와 재치 있는 플레이를 이야기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게임에서는 졌지만,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 시간이 주는 즐거움은 그 어떤 승패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 만들어 가는 소중한 추억이 아닐까 싶었다. 설날을 앞두고, 조금은 특별했던 오늘 하루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하는 외식 자리였다. 아내도, 딸도, 막내도 그리고 나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고소한 삼겹살 향이 식탁 위를 가득 메우고,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금주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이런 여유로운 저녁시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나를 가능하게 만든 과거의 결심에 감사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이 시간에 스스로에게 작은 격려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오늘 저녁 간식거리와 내일 아침 먹을 음식들 준비후 들어왔다. 자연스레 이어진 저녁 놀이의 화제는 ‘무엇을 할까?’였다. 포커도 떠오르고, 고스톱도 잠깐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더 건전하고 전통적인 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윷놀이. 재미로 시작했지만, 윷놀이는 금세 어제의 포커를 뛰어넘는 진지함으로 분위기를 물들였다.


윷을 던지는 손끝에는 긴장이 묻어났고, 모두의 표정은 마치 큰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처럼 심각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웃음을 애써 참으며 놀이에 집중했다. 순간순간 진지함과 웃음이 교차하는 그 시간은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며 하루를 정리하는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모든 가족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네 명이 모여 웃고 떠들며 보낸 설 명절은 대체 얼마나 오랜만이었을까? 아마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오래된 일이리라. 그동안 나는 너무도 바쁘게, 그리고 너무도 나만을 생각하며 명절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가족의 온기를 뒤로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오늘, 이 하루가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앞으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명절을 만들어야겠다. 오늘의 이 작은 루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놀이를 하고, 함께 웃는 시간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음력 24년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웃음으로 끝을 맺었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하루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음속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이 잔잔히 남았다. 이 작은 순간이 앞으로의 명절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씨앗이 될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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