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부자 Dec 21. 2024

한강의 소설 '채식 주의자'를 읽고~

인간의 변화하는 욕망과 그를 거부하려는 인간들의 욕망을 깨닫다

얼마 전 딸의 권유로 인해 구매했던 작가 한강의 책 세권 중 채식주의자를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내용을 조금 들은 적이 있고 이 책이 불륜과 외설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블로그에 후기를 올리는 입장에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노벨상을 받은 작가는 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알고 싶어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쳤다.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던 ‘소년이 온다’에서 느낀 감정과 같이 그녀의 필체는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나를 일어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내 엉덩이에 커다란 자석이 붙어 있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코에서 나오는 태풍 같은 한숨소리가 오늘도 허벅지를 차갑게 하는 느낌을 수십 차례 받으며 약 4시간을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 세장으로 이루어진 내용들을 떠올려보았다. 


첫 장에서 주인공 영혜는 단지 채식이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왜 그녀의 끝은 비참하게 마무리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꾸었고 고기가 싫어져서 채식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인데 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남자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자신의 시계 속에 끼워져 있던 부품처럼 살아가던 그녀의 변신에 대해 남자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 거부감은 그를 불편하게 하고 그는 그녀의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부품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결국 그는 그녀를 자신의 시계 속에 계속 넣어두기 위해 사회에 대한 편견을 이용한다.


그녀의 가족도 채식이라는 그녀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채식으로 인해 야위어 간다는 걱정을 하지만 과연 그 입장은 누구의 기준일까? 각자의 잣대로 들이대는 기준에 의해 그녀의 변화하려는 몸짓은 이제 미친 여자로 그녀를 만들어 버리는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의 무서운 단면이 보인다.



두 번째 장에서 영혜의 형부 그러니까 언니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영혜를 보는 순간부터 그녀에 대한 묘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억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아내가 아들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이 영혜에게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이미 영혜를 가져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다만 그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마침 그는 보디페인팅을 비디오로 찍는 예술가라는 직업이 그 스스로에게 명문을 만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그녀에게 접근하고 결국 자신의 욕정을 채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영혜와 형부의 불륜이라는 초점에서 읽으면 단순한 야한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가는 첫 장에서 변화하려는 영혜의 몸짓을 사회가 억누르고 짓밟아 이미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심정을 알고 나니 그녀는 또 한 번 억누름을 당 한 피해자이다.


그가 영혜를 안기 위해 눈이 돌아 방법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고 잔인했으며 분노를 들끓게 했다. 결국 그도 변화를 갈망하는 영혜의 내면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자신의 인생에 부품으로 만들려는 남편과 자신들의 기준에서 고기를 먹어야 하다는 가족들의 선입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기존 사회의 일면을 보여 주는 듯했다.



세 번째 장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혜의 모습은 마음이 저리도록 아픈 이야기로 그려진다.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그녀의 심정은 그녀를 죽음의 순간까지 몰고 가지만 그녀는 죽을 수 없다. 그녀에게 남겨진 아들 지우와 동생 영혜를 챙겨야 하는 것은 남아있는 인혜의 몫이기 때문이다. 


변화를 거부하던 그들은 모두 떠났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딸과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택했다는 이유로 인혜를 손가락질했으며, 남편은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도망가듯 자기 인생을 살게 된다. 결국 그들은 변화하려는 그녀의 몸짓이 보기 싫고 거부감을 느끼니 오히려 그녀를 배척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처럼 취급해서 벼랑 끝으로 서서히 몰고 가다 결국 자신들의 테두리 너머로 밀어 떨어뜨리고 아무 일 없던 것 처 럼 돌아간다. 


동생이 입원한 정신병원에 방문한 인혜는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혼란을 느낀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자신의 동생이 이런 곳에 있는지 계속 생각해 본다. 시작은 동생의 채식이었다.


 채식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녀는 깨닫게 된다. 동생 영혜가 커오면서 겪었던 변화를 막아오던 아버지와 가족들의 일들을 생각하며 영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변화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사회에 수긍하며 자신을 감추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정신병원에 있는 영혜는 이제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다. 채식에서 시작된 그녀의 변화에 대한 몸부림은 이제 절규에 가깝다. 이 사회에서 변화를 꾀하려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미친 사람으로 보이고 그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부품이 되지 않으면 결국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분풀이하듯 작가는 써 내려간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한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자라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가 되고 싶은 나무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연에서 주는 자양분만 있으면 나무는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가 봄이 오면 파란 싹을 틔우며 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꽃을 피우며 향기를 뿜어내고 온통 푸른 잎으로 변한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다시 변화를 시작한다. 온몸에 노랑, 빨강, 초록, 파랑의 물감을 칠해 놓은 것 처 럼 화려한 옷을 갈아입고 변화를 하고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나무가 사계절에 맞춰 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방해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데 우리는 왜 사람이 변화하려고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고 방해하려고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모든 성장은 변화를 통해 생기고 그 성장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있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