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난 글로써 내안에
사고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by 마부자


금주 111일째, 매일 같은 시간 눈을 뜨지만 어떤 날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느껴지는 아침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고나 할까.


계절이 바뀌는 건 갑작스러운 순간이 아니다.

오늘은 공기는 맑지만 피부에 닿는 온도에서 봄의 끝을 느끼게 되는 아침이었다.


제목: 너를 두고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이것

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아침, 언제나처럼 창가에 섰다. 습관처럼 내려다보는 아파트 입구.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도 크고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일반 쓰레기를 처리하는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차는 곧 익숙한 루틴으로 가득 찬 통을 들어올리고, 비워진 새 통을 내려놓고, 다시 쏜살같이 옆동으로 이동했다.


짧은 몇 분의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바라보다, 문득 '쓰레기'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버려지는 것, 치워지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순환되는 것들. 생각해 보면 쓰레기는 물질 그러니까 물건에만 적용되지 않는 다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린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은 어딘가로 향한다. 일부는 재활용되고, 일부는 매립되거나 불태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는 일. 그러나 그 사라짐은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이동일 뿐이다.


소멸되지 않는 쓰레기의 형태의 이동.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버리고, 감정을 태우고, 의미 없는 판단들을 매립한다. 그건 어쩌면 ‘사고의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오래돼 부식되고 상해버린 감정들과 버렸다고 믿었던 생각 즉, 사고의 쓰레기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어딘가로, 더 깊고 조용한 곳으로 스며들 뿐이다.


어쩌면 상처, 열등감, 과거의 후회 같은 것들이라는 다른 감정으로, 다른 판단으로 혹은 다른 말투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사라진 게 아니라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쓰레기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물리적인 쓰레기가 잘 분류되고 재활용될 때 자원이 되듯 사고의 쓰레기 역시 어떤 사유를 통해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버려진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고의 쓰레기들을 그동안 어떻게 다뤄왔을까.


과연 어떻게 재창조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깊은 사유 속에서 돌아본 감정은 나를 씁쓸하게 만들어 버렸다.


생각해보니 난 재창조를 하기 보단 저 깊은 곳에 묻어버린 경우 아니 버린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밀어 넣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감정, 정리했다고 착각했던 과거의 일들. 그 모든 것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잊는 척했다. 넘긴 척했다. 하지만 불쑥 올라오는 말투, 관계에서 튀어나오는 방어적인 반응, 스스로를 향한 작은 혐오 같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모두 오래전에 버리지 못한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결과였다. 한때는 그걸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잊어야 하고, 견뎌야 하고, 무덤덤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버릴 수 없었던 생각도 제자리를 잃어버린 감정도 모두 다시 꺼내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

그게 재활용이다. 완벽한 정리는 아직 어렵지만, 이제는 최소한 그것들이 내 삶에 어떤 식으로 쌓여 있었는지 들여다볼 용기는 생겼다.


예전엔 그저 피하고 눌러두던 마음들이 지금은 나의 글로, 언어로, 기억의 방식으로 조금씩 새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들 또한 결국은 나만의 사고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지난 주말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한 선택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란 생각이 든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껴안고 있는 대신 아직은 비워내는 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선택은 내 안의 사고의 쓰레기들을 천천히 꺼내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리에는 조금 더 천천히 가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침에 문득 눈에 들어온 쓰레기 차량 한 대로 인해 사유가 깊어진 아침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나름대로 멋진 출발이었다. 쓰레기더미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기분이 랄까? 분주한 아침도 지나고 책상에 앉아 새로운 책을 펼쳤다.


오늘은 ‘관점’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 서포터즈 모집에 신청했었고 다행스럽게도 선정이 되었다. 박용후 작가의 <관점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이었다.


출판사는 쌤앤파커스. 개인적으로는 나와 코드가 맞는 출판사다. 한동안 그곳에서 출간되는 책들을 자주 찾아 읽었다. 그래서 ‘관점’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박힌 이 책의 서평 이벤트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점에 관한 이야기라니, 지금의 나에게 더없이 필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설렘이 섞인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고 비록 오늘 오전엔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나를 사로잡았다.


책을 잠시 내려놓고 운동을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며 영상 하나를 틀었다. 오늘은 그 안에서 ‘간격’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머물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나 사이, 기대와 현실 사이. 간격이라는 말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 이상이었다.


그 단어에 대해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고, 그것을 글로도 옮겨 적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서는 평소 계획대로 하루의 루틴을 완료했다.


저녁엔 아내와 함께 이른 식사를 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서로가 충분히 익숙한 온도로 하루를 공유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마무리했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던 하루였다. 익숙한 루틴, 대화, 공간 속에서 흘러간 하루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문득 눈에 들어온 장면 하나가 깊은 사유로 이어졌다.


크게 움직인 것도 없고, 새로운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생각 하나가 하루를 다르게 만든 날.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던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조용히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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