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38일째, 바람이 조금은 차가웠다. 그래도 하늘은 5월답게 환했고 햇살은 조용히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을 가볍게 풀고 거실로 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제보다 더 맑은 하늘, 구름, 바람 그리고 그 사이를 조용히 거니는 사람들. 잠시 눈을 감고 그 공기의 감촉을 느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런 날의 하늘은 특별하다.
제목: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명상을 했다. 익숙하지만 늘 새롭게 마주하는 시간. 머릿속은 조용했고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공간을 채웠다. 그 짧은 고요가 하루의 시작을 다르게 만든다.
책상에 앉아,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드디어 펼쳤다. 나폴레온 힐의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줬고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라 불릴 만큼 명성을 가진 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는 그가 남긴 가장 결정적인 한 권. 언젠가 꼭 읽어야지 생각만 해오다 오늘 그 첫 장을 열었다.
책 속에서 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13가지 원칙에 집중했다. 마치 오랜만에 학교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저자가 제안하는 이 원칙들은 단순한 성공의 요령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게 느껴졌다.
특히 ‘명확한 목적’, ‘신념’, ‘자기암시’ 같은 항목은 내가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낸 생각과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얼마나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는지, 그 목표를 믿는 힘이 실제로 내 삶을 움직이고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폴레온 힐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갖고 싶다’가 아니라 ‘반드시 된다’는 확신, 그리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힘.
나는 오늘 그 원칙들 속에서 막연했던 희망이 선명한 구조를 갖추는 느낌을 받았다. 성공은 결국 마음속에서 먼저 완성되는 것이라는 말,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말하고 있다기보다 믿고 있다’고. 그러니 독자인 나도 자연스레 따라 읽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 믿음이다.
나폴레온 힐이 강조하는 모든 원칙의 중심에는 결국 ‘믿음’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었다. 믿음이 없는 생각은 흔들리기 쉽고, 행동은 결국 그 믿음의 농도만큼만 따라온다.
모든 것을 믿으라.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믿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문장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나를 얼마나 진심으로 믿고 살아왔을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자주 흔들리고 스스로를 낮게 평가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힐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단지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움직이는 힘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전엔 나만의 시간을 보낸 뒤 오후가 되어 거실로 나왔을 때, 허기진 두 명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둘러쌌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조용한 위협이 감돌았다.
굶주린 하이에나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흡사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 급히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비 오는 날 마트에서 사 두었던 칼국수가 눈에 띄었다.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일주일가량 지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가서 무엇을 사오기에는 하이에나들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잠시 망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순간에 더 확신을 느낀다. 소비기한이라는 의미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괜찮을 꺼야…
굶주린 하이에나들에게 김치 칼국수 해 먹을까? 라고 물었더니 흔쾌히 좋다고 말한다. 물론 유통기한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저들은 아마 한달이 지난 칼국수로도 먹을 정도로 허기져 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먹을 거니까 라는 자조 섞인 위안을 가지며 요리를 시작했다.
호박과 양파는 있었지만 육수 낼 재료는 없었다.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한 건 생라면 먹고 남겨뒀던 대한민국 공통 MSG 라면 스프가 생각났다. 어차피 직접 육수를 내지 않고 코인육수를 쓸 거라면 스프나 진배없다고 또 자조 섞인 위안을 또 가지며…
스프에 양파와 호박, 신 김치 국물을 더하니 그럴듯한 향이 나기 시작했다. 면의 전분은 가볍게만 털었다. 약간 걸쭉한 국물이 어울릴 것 같았다.
대파를 넣고 김치를 썰어 넣고 5분간 잘 저어주고 나니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칼국수가 완성이 되었다..
막내와 아내를 불러 함께 식탁에 앉았다. 첫 젓가락을 든 순간, 동시에 들려온 “맛있다”는 말. 그 짧은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다 품어주는 것 같았다.
특별한 재료도 없고 거창한 과정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한 끼. 요즘 나는 그런 순간들에 오래 머문다.
고작 칼국수 한 그릇이지만 그 안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들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배부른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집 안은 오랜만에 고요하고 느긋한 공기로 가득 찼다. 휴일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어떤 노력도 강요하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아내는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며 멸치를 손질했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보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오후였다.
이른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막내는 들어오자마자 오늘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려넘겼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패스트푸드의 유혹은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칼로리 걱정이나 영양의 균형 같은 건 그 순간만큼은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어쩌면 위장은 조금 놀랐을 것이다. 기름기와 소금기, 단맛과 짠맛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낯선 저녁. 하지만 그 과한 풍요로움이 오히려 하루의 마무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포만감이라는 건 때때로 기분 좋은 만족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력함이기도 하다. 배가 부르자 책상 앞에 다시 앉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내도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무언의 합의처럼, 우리는 말도 없이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동네 산책로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워져 가는 밤, 울타리에 고정된 네온 불빛과 드문드문 비추는 가로등이 우리의 길동무가 되었다.
빛은 생각보다 멀리 가지 못했지만, 그 한정된 밝음이 오히려 걷는 속도에 리듬을 주었다.
우리는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걸으며 칼로리를 소비했다. 그것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것이었다.
무언가를 씻어내고 비워내는 시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벼워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 그렇게 땀을 흘린 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니 일요일이 조용히 닫히는 느낌이었다.
별다른 계획 없이 흘러간 하루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