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완연한 여름 아침. 창밖에는 벌써부터 햇살이 도로를 달구고 있었다. 침대 맡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희미했지만 그조차도 내게는 반가웠다.


창밖에서 밀려든 초여름 햇살과 방 안에 들어온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영상으로 만났다.


오늘의 책은 밥 프록터의 <부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마인드’라는 개념을 중심에 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인드는 의식과 잠재의식으로 나뉘며 이 의식을 지배하는 여섯 가지 지적 요소가 있다고 한다.


관점, 의지, 상상, 기억, 직감, 판단. 나는 오늘부터 이 중 다섯 가지를 하루에 하나씩 차례로 들여다보려 한다. 그 첫 번째는 ‘관점’이다.


관점.

밥 프록터는 관점을 단순한 시선이나 의견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렌즈라고 말한다. 인간은 동일한 현실을 살고 있어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예컨대 병실이란 공간을 어떤 이는 고립이라 여기고 또 다른 이는 회복을 위한 안전지대라 느낀다. 둘 중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 감정을 만들고 그 감정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매일의 치료를 받고 있다. 같은 주사, 같은 약, 같은 경과. 그러나 내 관점에 따라 이 모든 일상의 의미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모든 사람이 아픈 사람처럼 보였고 모든 문이 닫힌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 공간이야말로 내 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며 함께 병을 이겨내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조금씩 내 안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관점 하나가 나를 위로했고 관점 하나가 내 태도를 바꾸었다.


관점은 마음의 각도를 조정하는 조그만 다이얼 같은 것이다. 아주 미세하게만 틀어도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조정함으로써 그 감정의 뿌리를 바꾸는 것. 그래서 관점은 가장 실질적인 자기 돌봄의 시작이 된다.


내가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병을 바라보는 관점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대신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묻는다.


그 차이가 내 하루를 다르게 만든다. 단지 고통을 견디는 하루가 아니라 의미를 새기는 하루가 된다. 그렇게 나는 매일 관점을 새롭게 정돈하며 내 삶의 색을 조율하고 있다.


삶은 우리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결국 우리는 날마다 관점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관점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 현실을 살아갈 나의 태도를 바꾼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 ‘관점’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관점은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그 바라봄을 해석하려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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