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공기는 조금 흐려 있었다. 하늘은 흐릿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창문을 여니 어제보다 적게 들어온 햇빛이 병실 구석 구석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도 한 편의 영상을 통해 밥 프록터의 메시지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마인드의 지적 요소, 그 셋째는 기억이다.
기억.
책에서 저자는 기억을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짓는 데 있어 무엇을 겪었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기억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인 ‘나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병실에 들어온 첫날을 기억한다. 병원 특유의 냄새와 낯선 기계음, 창밖의 멀어 보이는 하늘. 나는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이 곧 절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의료진의 따뜻한 눈빛이나 딸의 손을 꼭 잡았던 순간처럼, 위로받은 장면들도 동시에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억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축적이다.
우리는 ‘나쁜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면 고통스러웠던 ‘감정’이 그 기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같은 사건도 달리 보인다.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때로는 고마움까지 느끼게 된다.
시간이 기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 것이다. 기억은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상이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중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저장하고, 나머지는 편집하거나 삭제한다.
문제는 이 왜곡된 기억조차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 실패한 기억이 지금의 선택을 망설이게 만들고 한 사람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이후의 관계를 차단하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가 만든 것인 동시에 우리를 규정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억을 지워야 할까. 아니다. 기억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깊은 뿌리다.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살아가며 또 어떤 사람은 추억 하나에 생을 지탱하기도 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배우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어제의 기억을 안고 하루를 산다. 좋은 기억은 나를 미소 짓게 하고 아픈 기억은 나를 다듬는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은 나를 지금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기억은 삶의 대본이며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지난 무성영화이다.
나는 오늘 ‘기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기억의 과거의 저장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감정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