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르익는 속도가 더워지는 기온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아침. 창문을 여니 고요한 도시의 바람이 방실 안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온몸이 일으킨 체온이 벽을 따라 사라질 즈음, 나는 밥 프록터의 <부란 무엇인가』>두 번째 이야기. 오늘은 '상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상상.
밥 프록터는 상상을 ‘미래를 현재에 끌어오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상상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로 가져오는 ‘창조의 시작’이다. 관점이 현재를 보는 태도라면 상상은 미래를 준비하는 감각이다.
병원 복도를 걷다가 문득,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의 나를 떠올린 적이 있다. 숨이 편안히 쉬어지고 날이 맑은 어느 오후에 가벼운 차림으로 공원을 걷는 모습.
누구와 나란히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걷는 나라는 상상 하나만으로도 그날 하루의 통증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통은 현실에 머물지만 회복은 상상을 타고 찾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상상하는 존재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세계를 만들고 어른들은 계획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디자인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상상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믿지 않게 되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단정한다.
그러다 보면 상상은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치부되고 더 나아가 위험한 낭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상상했던 그 시간,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인간을 그려보았던 순간, 그 모든 출발점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비현실’이었다.
상상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견디는 힘이자 살아야 할 이유를 품은 씨앗이다.
지금 나는 병이라는 이름 앞에 놓여 있다. 나의 상상은 어떤 날에는 용기 있는 상상으로 어떤 날에는 도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면하는 힘과 그 현실 너머를 그려보는 상상의 균형이라는 것을.
무너짐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고 회복을 상상하며 하루를 산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이 이끌어주는 하루.
상상은 내 마음을 미래로 이끌고 미래는 상상 속에서 구체적인 모양을 얻는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버티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무력한 희망도 아니다. 상상은 내가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방식이며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을 현실에 불러오는 능력이다.
현실이 나를 규정하려 할 때 상상은 나를 확장시킨다. 현실이 날 가둔다면 상상은 문을 연다.
상상은 지금을 넘어서 ‘그 후’를 보게 만든다. 그래서 상상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오늘 ‘상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상상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