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51일차,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30회. (25.08.12 치료 완료)
새벽의 공기 속에서 눈을 뜨니 갈라진 목 틈새에서 새어나오던 마른기침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통증은 분명 예전보다 덜했다.
처음 가장 크게 자리 잡았던 염증만이 여전히 버티고 있을 뿐 그 외의 자잘한 통증들은 이제 내 일상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목 피부에 남아 있던 가려움도 어느새 수그러들었다. 한때 이성을 잃고 긁어버린 자리에 생긴 염증은 여전히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검게 그을렸던 피부가 서서히 벗겨지며 불편함도 잦아들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예전에 현장에서 강한 햇빛과 용접 불꽃에 화상을 입었던 흔적과 닮아 있었다.
지금 내 목은 방사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검게 그을린 부분과 벗겨진 부분이 확연히 구분되는 투 톤의 자국으로 남았다.
거칠어진 피부를 쓰다듬을 때마다 이 상처가 내 싸움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흉터처럼 선명하지만 동시에 회복의 증거이기도 하다.
고통은 줄어들고 남은 흔적은 버텨낸 시간의 증표처럼 내 몸 위에 새겨져 있다.
오늘은 마음먹고 일반식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입안에 남아 있는 강한 짠맛이 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미각은 내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고집을 부렸다. 결국 죽과 국, 그리고 숭늉에 밥을 말아 반 공기 정도를 겨우 삼켰다.
식탁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은 "상실"이라는 단어를 붙잡았다. 통증이 잦아들며 찾아온 안도의 순간, 그 뒤를 따라온 것은 뜻밖에도 상실감이었다.
다 끝났다는 가벼움 속에서 다시 시작된 고통이 내겐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실이란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간절히 붙잡고 싶은 무언가를 손에 쥐지 못할 때 찾아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실은 부재의 그림자가 아니라 남겨진 것들에 대한 더 깊은 갈망이자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감정을 기록해 두었다. 마치 통증도 허기진 미각도 모두 지나가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손님처럼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기에.
어제 보낸 택배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아내의 연락을 받았다. 50일 만에 내 짐을 마주한 아내는 이제야 정말 신랑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기다림과 안도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혹시 또 필요한 게 없는지를 묻는 아내에게 퇴원 후 먹을 음식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아내는 지난달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소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내일은 그것을 푹 고아 국물을 내놓을 테니 돌아와서 거기에 밥이라도 말아 조금씩 먹으며 회복을 시작하자고 다정하게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병실의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집 냄새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아직은 완전한 식사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내가 건네는 그 약속은 내게 음식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나를 기다리는 집의 온기이자 곧 다시 이어질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제까지는 여전히 병실의 낯선 공기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오늘 아내의 목소리와 그 한마디는 내게 집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50일 만에 도착한 내 짐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돌아갈 자리의 증거가 된 것처럼 아내가 말해준 소족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곧 나는 다시 집 식탁에 앉아 밥을 말아 삼키며 이 지난한 여정을 조금씩 추억으로 바꾸어 갈 것이다.
아픈 시간도 언젠가는 다 지나가고 남는 것은 함께 웃으며 나눌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라는 것을 믿으며 오늘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