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1일차의 기록
몇 시간을 쪼개어 버티듯 이어간 밤, 새벽 4시 40분 즈음 마지막으로 눈이 떠졌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루틴이 되었다.
자는 시간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새벽에 한 번 깨어난 눈은 다시 입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포기하듯 일어나 정수 한 모금을 삼키고, 차갑기까지 한 새벽 공기를 들이켰다. 창가에 서서 빗소리를 배경 삼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오늘의 불면은 예고된 일이었다. 병원에 가는 날. 지난 8월 말 치료가 마무리되고 처음 듣게 되는 최종 결과 상담. 몸은 나름 회복의 기미를 보인다. 구내염은 옅어지고 미각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감각일 뿐, 의학적 결과는 의사의 입에서 나와야 비로소 확정된다. 그러니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몇 날 전부터 오늘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이 새벽의 불면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암의 진단과 치료는 세 분야의 의사가 함께한다. 발병 부위인 편도를 담당하는 이비인후과, 방사선으로 직접 치료를 맡은 방사선종양학과, 그리고 혈액과 장기에 전이 여부를 추적하는 혈액종양내과.
치료 중에는 매일 병원에 갔으니 담당 의사의 진료 일정에 맞춰 마주할 수 있었지만, 치료가 끝난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다행히 병원이 배려해 세 과의 진료를 같은 날, 순차적으로 볼 수 있게 조율해 주었다. 오늘은 오후 2시 20분부터 시작해 30분 간격으로 세 명의 의사를 차례로 만난다.
그전에 채혈과 폐 엑스레이 검사를 마쳐야 하기에 오전 9시에는 동대구역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서역을 거쳐 삼성병원에 12시 전에 도착하는 일정. 두 사람이 출근을 하고 나도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딸과 합류했다.
긴장된 하루지만 딸의 동행은 그 자체로 안도였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면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 혼자였다면 더 길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병원까지 닿으려면 꼬박 3시간이 걸린다. 지하철, 기차, 도보, 버스를 갈아타며 이어지는 길. 그 긴 여정 속에서 나는 딸과 하루 종일 수다 아닌 수다를 떨었다.
수서행 SRT 안에서는 혹시 옆자리 승객에게 민폐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말이 길게 이어졌다. 아마도 오늘의 긴장감이 내 입을 더 자주 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퇴원 이후 나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 왔다.
몸을 위해서라기보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내가 오늘은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딸은 묵묵히 들어주었고 가끔은 맞장구를 치며 나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갔다.
평소라면 무뚝뚝하고 차가운 기운마저 풍기던 아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내보다 더 많은 말을 꺼내는 낯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딸은 오늘 하루만큼은 나를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다. 불안이 드리울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말로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을 선택한 것 그리고 그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나는 더 오래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서역에서 삼성병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는 오늘도 긴 대기줄로 가득했다. 줄을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서로 다른 표정이 있었지만 그 발걸음의 목적지는 같았다.
암이라는 존재 앞에서 치유를 바라거나 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 서 있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또다시 그 무리의 한 사람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잊고 있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기척.
그 순간 나는 다시 아픈 사람의 자리로 돌아왔다. 치료가 끝났고 결과를 확인하러 온 날이지만 병원 특유의 공기는 곧장 나를 환자의 자리로 끌어내렸다.
채혈과 엑스레이 검사를 마치고 남은 시간을 딸과 함께 지하 제과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로 간단히 때웠다. 그런 뒤 진료실 앞에서 번호표를 들고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풍경 속에 나는 금세 익숙해졌다. 그저 또 하나의 번호가 되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것.
첫 번째, 방사선종양학과. 지난 8주간 내 치료를 지켜온 의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은 정점을 찍었다.
모니터에 띄운 CT 결과지를 가리키며 의사가 말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이어지는 설명. “여기가 전에 암이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림프절 전이 흔적은 조금 남아 있지만, 기존의 암세포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웃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사라졌다. 의사가 묻는다.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나는 솔직히 답했다. “아직 미각이 돌아오지 않아 음식을 잘 못 먹습니다. 지난번에 처방해주신 ‘엔커버’를 다시 받을 수 있을까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방전을 내주었다.
딸이 옆에서 물었다. “치료가 잘 됐다면, 혹시 어떤 음식은 조심해야 할까요?”
의사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생선회나 육회 같은 날 음식만 피하시면 됩니다. 오히려 잘 드시는 게 좋습니다. 특히 고기. 선지를 드실 수 있다면 그것도 추천합니다.”
순간, 선지 해장국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꽂혔다. 한때 술과 함께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니며 즐겨 먹었던 음식. 그러나 술을 끊고 난 후로는 일부러 찾지 않아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그 단어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두 번째,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검사지를 보며 말했다.
“지난번엔 신장 수치가 조금 안 좋았는데, 오늘은 신기할 정도로 다 정상입니다. 관리를 잘하셨습니다.”
칭찬 한마디에 또다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앞으로 3개월 후 PET-CT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관리 잘하세요.”
PET-CT. 몸속 혈액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끝까지 확인하는 최종 검사. 오늘은 편도에 자리 잡은 암의 흔적을 확인한 날이었고 3개월 뒤 내 몸전체에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말. 완치라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지난 넉 달 동안 나를 짓누르던 어둠이 걷혔다는 선언이었다.
그 순간,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긴장이 풀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떨려왔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제야 다시 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이비인후과 진료실 문을 열었다. 담당의는 최종 방사선 치료 결과와 혈액검사지를 차례로 확인한 뒤 카메라를 목 안 깊숙이 넣어 암이 있던 자리를 꼼꼼히 살폈다.
잠시 화면을 응시하던 의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아졌습니다. 치료가 잘 되었고 관리도 훌륭히 하셨습니다. 현재로서는 편도의 암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12월 중순 PET-CT 결과 확인뿐입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 외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이 오늘의 모든 감정을 대신했다. 불편한 곳이 없냐는 질문에 치료 이후 심해진 변비를 이야기하자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고 진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원무과에 들러 12월 10일 PET CT 촬영 일정을 잡고, 12월 22일 세 명의 담당의가 모두 근무하는 날로 다시 최종 상담 예약을 조정했다.
오늘처럼 순차적으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뒤 처방전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내가 요청한 ‘엔커버’는 일반 환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름이다. 음식 섭취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양보충용 음료로 호스를 통해 투여하거나 마실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시중에 판매되는 ‘뉴케어’의 병원 처방 버전이다. 그러나 효능은 훨씬 높고 가격은 오히려 10분의 1 수준이니 품귀현상이 발생하는 영양제이다.
집 인근의 약국들 여러 곳에 전화를 통해 확인한 결과 처방전이 있어도 구할 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번 방사선 치료를 하던 중 계속 다니던 삼성병원 인근의 약국에 미리 연락을 해 두었더니 오늘은 우선 한 박스를 확보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10월 중순에 입고되면 택배로 대구까지 보내주겠다고 했다. 비록 ‘뉴케어’보다 맛은 훨씬 없지만 지금 내게 그것은 체력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대안이다.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건네고 집 주소를 남겼다. 그렇게 다시 수서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들어설 때 느꼈던 긴장과 압박은 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긴 하루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환자가 아니라 생존자로서 병원을 나서는 기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던 탓에, 수서역에 도착하자 출출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롯데리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 스쳤다. 암 환자가 가장 멀리해야 할 음식,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 가공육. 하지만 오늘 의사의 말이 메아리처럼 떠올랐다. “날 음식만 빼고는 잘 챙겨 드시는 게 좋습니다.”
나는 딸에게 장난처럼 말했다. “오늘은 햄버거 어때?”
딸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는 말이 그 눈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애원했다. 결국 딸은 한숨을 쉬며 오늘 하루만 특별히 허락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다시 마주한 불고기버거. 콜라도 커피도 없이 물 한 컵과 함께 포장을 벗기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첫 순간에는 내가 기억하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스쳐갔다. 그러나 이내 퍽퍽한 빵과 무미건조한 패티만이 남았다. 아직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내 미각.
아쉽게도 햄버거와의 재회는 실망으로 끝났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몰랐다. 앞으로 당분간은 햄버거와는 거리를 두어도 되겠다 싶었다.
저녁 무렵, 동대구역에 도착하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만큼은 외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좋은 결과를 확인한 날이니, 의사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기로 했다.
“고기를 많이 드세요.” 그 말 그대로, 약 4개월 만에 삼겹살집에 들어섰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오래 잊고 있던 세계가 다시 열렸다. 햄버거와는 전혀 달랐다.
혀 끝에 고소한 기름기와 구워진 고기의 맛이 또렷하게 남았다. 아직 모든 미각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고기의 맛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회복과 치유 그리고 사라진 암세포에 대한 감사. 그것은 의사의 말보다 더 확실하게, 내 혀 위에 전해졌다. 나는 오랜만에 음식을 통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멋진 삼겹살과의 재회를 마치고 딸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오랜만에 먹은 음식들이 내 소화기관에는 여전히 큰 짐이었다.
결국 변비약을 삼키고 잠시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조금은 편안해졌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몸을 눕혔다. 긴장으로 시작해, 결과로 안도하고 오랜만의 음식으로 위로받았던 하루.
길었던 하루의 무게가 서서히 내려앉으며 나는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늘만큼은 피곤했지만 안도와 감사가 더 크게 남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