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4일차의 기록
어제 아내와 딸과 함께한 대구 나들이의 효과인지 혹은 여파인지, 오랜만에 잠 못 이루는 고통이 사라지고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밤중에 마른 입과 화장실 신호로 두 번쯤 눈을 떴지만 다시 금세 잠들 수 있었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새벽에 눈을 뜨자 몸은 오히려 한결 가볍고 개운했다.
창을 열자 초겨울 같은 바람이 베란다로 밀려들어왔다. 그 바람 앞에 잠시 서서 호흡을 고르고 명상을 하며 휴일의 아침을 맞았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 박람회와 카페, 그리고 제2석굴암까지 이어진 일정은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했을 길이다.
그러나 퇴원 후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고 얕은 언덕이라지만 하루 만보를 채운 발걸음은 내 몸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일요일 아침, 근육통을 호소하며 서로의 저질 체력을 탓하듯 웃었다. 세 달 만에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낸 우리 부부는 오늘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휴일을 보내기로 했다.
어쩌면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회복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휴일 아침, 늦잠 대신 일찍 일어난 아내가 내가 준비한 아침을 함께 먹겠다고 했다. 통밀빵과 두유, 삶은 계란 두 개, 그리고 야채주스.
내겐 회복을 위한 필수 루틴이지만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맛있는 메뉴’는 아니다. 다시 한 번 정중히 물었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식탁에 마주 앉았다.
예상대로 계란 하나와 야채주스를 삼킨 아내의 얼굴에는 잠시 인내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쨈도 없는 통밀빵과 아무 맛도 없는 두유를 곁들이는 나를 보며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분명히 묻고 있었다. “이걸 아침마다 어떻게 먹는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약으로 먹는 거지. 돌아오지 않는 미각 때문이 아니라, 몸에 필요한 단백질과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그 순간, 우리 둘 사이에는 작은 공감이 생겼다. 아내는 결국 라면을 끓였고 우리는 그저 웃으며 아침 식탁을 마무리했다.
휴일 아침의 작은 해프닝, 그 안에 담긴 서로의 마음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내는 청소와 빨래, 화분에 물을 주며 분주히 집안을 돌보고 나는 서재로 돌아와 책을 펼쳤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인간 실격>.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관계의 고통과 그 끝의 파멸을 읽어내려갔다. 동시에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되묻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아침을 라면으로 대충 때운 아내와 늦잠에서 깬 막내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묵은지, 쌀뜨물, 양파, 대파, 참치 두 캔, 그리고 두부 한 모. 삼겹살은 없었지만 참치로도 충분히 깊은 맛을 낼 수 있었다.
나를 위한 별도의 반찬도 만들었다. 남은 김치를 깨끗이 씻어 들기름에 볶아 매운맛을 없앴다. 마늘과 파를 더하자 고소한 향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식탁에 앉은 아내와 막내가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다시 아침 식탁을 떠올렸다.
그리고 서로의 입맛에 맞춰 나눈 점심이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깨 달았다.
오늘 하루, 특별하지 않은 식탁 위의 대화와 미소가 어쩌면 가장 특별한 회복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점심을 마치고 막내는 독서실로 향했다. 아내는 평소보다 일찍 시작한 하루 덕분인지 오후가 되자 다소 심심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슬쩍 볼링장에 가고 싶은지 물었다.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다
“가고는 싶은데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건 오늘 체력으로는 힘들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사실 입원 기간 동안 차는 쓸 일이 없었고 그동안 딸이 내 차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어제 대구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이 말했다.
“이제 아빠도 일상을 회복 중이시니 필요하실 테니까 차는 두고 가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묘하게 따뜻하게 남았다.
나는 아내에게 장난처럼 말했다.
“볼링장 가고 싶으면 내가 태워다 줄게. 준비해.” 그러자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집 안 가득 쌓인 피로도 온몸이 쑤신다던 근육통도 그 순간만큼은 자취를 감춘 듯했다.
볼링장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힘차게 공을 굴리는 아내를 보며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체력이란 단순한 근육의 힘이 아니라 마음에서 끌어올리는 또 다른 에너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약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볼링장. 여전히 그곳에는 볼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공이 굴러가서 핀을 때리는 강렬한 소리, 서로의 실수를 웃어넘기는 익숙한 풍경.
모두가 늘 하던 대로 늘 있던 그 자리에서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투병을 겪은 후부터 이런 순간에 유난히 새로운 감정이 밀려온다. 나는 잠시 그 세계에서 이탈해 있었다는 사실.
누군가는 늘 해오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시간 동안 병실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이 자리에 서 있으니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듯 낯설면서도 안도감을 주는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오늘도 깨닫는다. 세상은 언제나 제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사이에 나는 멈춰 있었을 뿐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다시 조금 늦더라도 그 흐름 속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지는 해가 주말의 긴 하루를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묘하게 피곤하면서도 충만한 마음이 차 안을 채웠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나눈 웃음과 함께 걸은 발걸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남은 듯했다.
집에 도착해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내는 남은 김치찌개에 나는 나만의 반찬으로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오늘 하루를 다시 되짚어 보았다.
어제의 대구 나들이, 아침의 작은 해프닝, 그리고 오후에 찾은 볼링장까지, 사소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웃음을 확인했고 지난 몇 달 동안 잃어버린 평범한 주말의 한 장면을 조금은 되찾은 듯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여전히 회복 중인 몸이지만 다시 일상의 작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