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30일차의 기록
새벽은 언제나 그렇듯 나를 먼저 깨운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공기는 제법 서늘했고 아직 어둠과 빛이 뒤엉켜 있는 하늘은 깊은 호흡을 유도하듯 차갑고 맑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으니 이 동작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불과 30일 전만 해도 병실 침대에 누운 채 나 자신을 잃어버린 듯 무력하게 하루를 흘려보내던 나였다.
치료로 지쳐버린 몸은 나를 배신하듯 무겁고 먹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으며 하루의 모든 계획은 의사의 지시와 간호사의 발걸음에 달려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단지 3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나는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다.
아침이면 스스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고 짧게라도 집 앞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내 손으로 식탁 위를 정리하고 가끔은 작은 반찬이라도 직접 만들어 식탁에 올려두는 일상이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병원에서의 8주는 단순한 치료의 과정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 깊숙이 새기게 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전에는 볼링 시합이 예정된 아내를 볼링장에 태워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해진 간단한 운동 루틴을 마치고 책을 펼쳐 잠시 독서를 했다.
오후에는 시합을 마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볼링 회원들과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함께한 회원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회복해서 돌아온 나를 축하하는 작은 자리를 가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평범하게 여겼던 주말의 일상들이었다. 함께 취미를 즐기고 웃으며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이런 시간들이 지금은 가장 큰 선물처럼 다가온다.
무엇보다 큰 고마움은 더 이상 링거에 의지해 병원 침상에 누워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내 발걸음으로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다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8주간의 치료 과정이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과 나눈 짧은 대화도 오늘의 의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 식탁에 아내와 막내와 함께 앉아 웃으며 밥을 먹는 그 순간, 나는 30일 전 병실에서 꿈꾸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바람 같은 소망이었는데, 지금은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병이 남긴 흔적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앞으로도 조심해야 하고 두려움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예전처럼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 대신 희망을 품고 잃었던 나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퇴원 후 30일이 되는 날. 단지 한 달의 시간이지만 나에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각을 주었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가 특별히 거창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장면 하나하나가 내겐 기적처럼 다가왔다. 병원에서 보낸 8주는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심어주었고 퇴원 후 맞이한 이 30일은 그 힘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가족과 함께 웃고 지인들과 식사와 대화를 나누고 커피 한 잔을 기쁨으로 마실 수 있는 이 순간 이야말로 내가 다시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나는 오늘을 이렇게 기록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다시는 잊지 말자. 오늘의 이 감사와 기적 같은 일상의 무게를 그 것 이야말로 내가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힘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모처럼 아내와 길었던 주말의 일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