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9일차의 기록
회복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나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내 몸이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임을 실감한다.
불면으로 뜬눈을 뜨던 긴 밤이 줄어들고 화장실을 향해 뛰던 횟수가 줄어드는 변화는 작은 듯하지만 내 삶 전체를 바꾸는 징후였다.
치료 직후에는 목에 음식을 넘기는 일조차 고통이었고 넘긴 것을 배출하는 과정조차 괴로움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잠마저도 빼앗기니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결국 쓸데없는 기우였다.
아직 완전히 예전의 몸은 아니다. 그러나 세 시간 넘게 이어지는 깊은 잠을 맛보고 변비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아주 자극적인 음식만 피하면 다시 음식을 목으로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기적처럼 다가온다. 이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결국 ‘회복’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순간 문득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의 몸은 유전자의 진화를 돕는 기계일 뿐이라는 말.
내 몸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치유와 적응의 능력은 어쩌면 그 말의 또 다른 증명일지도 모른다.
유전자는 자신을 보존하고자 몸을 움직이고 몸은 그 요구에 따라 서서히 다시 균형을 찾아간다. 나는 그 과정을 지금 내 몸으로 겪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말이다. 회복은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고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온다.
오늘의 작은 변화들이 내게는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내일을 이어갈 힘이 되고 있다.
어제의 쉼표 같은 하루가 의외로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온 듯했다. 거실 창가에 맺힌 새벽이슬을 바라보며 맞이한 오늘 아침은, 오랜만에 몸이 스스로 맑아졌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오늘은 오래전 캠핑으로 인연을 맺었던 후배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전라도에 살면서 매주 캠핑카를 몰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캠핑 매니아다.
그는 내 투병 소식을 듣고도 병문안을 못 온 것을 내내 미안해했다. 이번에 대구에 일이 있다며 꼭 얼굴을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장소는 경북 고령 근처 캠핑장이었다.
사실 그제 갑작스럽게 다녀온 현충원 방문이 내 몸에 적잖은 피로를 남겼다. 그래서 이번 약속은 취소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었다.
그런데 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 회복의 여백을 만들어주었는지 오늘 아침의 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스스로 이건 갈 만하다는 신호를 주는 듯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몸은 간사하다면 간사한 것. 일하러 가는 발걸음과 놀러 가는 발걸음을 구분할 줄 아는 것 같은 그 사실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네비게이션을 켜니 목적지까지 약 50km 한 시간 남짓의 거리였다. 이 정도면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가을의 빛깔을 만끽하며 다녀올 만한 드라이브였다. 늦은 아침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고령으로 향했다.
지난주 딸과 함께 다녀왔던 군위의 제2석굴암은 산사의 고즈넉함이 중심이었다면 오늘의 길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인적 드문 시골 왕복 2차선 도로 위로 초록 잎 사이사이에서 황금빛으로 물든 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떨어졌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었다. 아내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 듯 바라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이런 시골길 풍경 보니 너무 좋다. 앞으로 자주 나오자”라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오늘의 나들이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우리는 후배보다 먼저 도착했다. 캠핑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잠시 산책을 겸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곡을 끼고 운영되는 캠핑장은 예상보다 훨씬 정갈했다.
잘 정돈된 데크와 평상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가 어울려 작은 쉼터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비 예보 때문인지 그리고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캠핑장에는 세 팀 남짓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오히려 고요한 여유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치료 이후 바쁘게만 느껴졌던 내 시간에 이렇게 잠시라도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다가왔다.
잠시 후 후배가 거대한 캠핑카를 몰고 들어왔다. 어제 일찍 출발해서 볼일까지 보고 온 얼굴에는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 피곤함조차 즐거움으로 덮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함께 내려 분주히 캠핑 준비를 하는 모습은 오래전 내게도 익숙했던 풍경이었다. 식탁을 깔고, 화롯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는 그 순간 나는 자연스레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결국 추억일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처럼 무거운 장비를 나르고 밤새워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체력도 의지도 없다.
몸은 이미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캠핑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행락객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나에게 필요한 건 억지로 예전의 나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 깨달음이 오히려 위안처럼 스며들었다. 빠르게 셋팅을 마친 후배는 기다렸다는 듯 전라도에서 챙겨온 음식들을 하나둘 꺼내 놓았다.
홍어와 보쌈, 김치까지 삼합의 진수에, 닭갈비와 소고기까지. 듣기만 해도 이미 1박 2일이 부족할 만큼의 음식들이었는데 거기에 내가 준비해간 민물장어까지 더해지니 상차림은 그야말로 넘쳐났다.
나는 그 순간 다시금 떠올렸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캠핑은 늘 이렇다는 것을.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함께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챙기고 싶은 마음.
함께할 밤을 떠올리며 장을 보고 타인을 위한 기쁨을 준비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 바로 그래서 내가 한때 캠핑을 그렇게도 좋아했었다.
후배는 사실 캠핑카만으로도 어디서든 숙박이 가능하지만 굳이 캠핑장을 예약했다. 우리 부부가 1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우리는 하룻밤을 묵을 수는 없었고 미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저녁까지만 함께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네 사람이 마주 앉아 나눈 대화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새벽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샐 텐데 오늘의 나는 단지 잔에 물을 채워 건배를 나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은 추억대로 다시 살아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날 것을 먹지 못해 홍어 삼합은 아쉽게도 꺼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음식들이 간이 세어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정성껏 준비해온 후배 부부의 마음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미안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도리어 내가 더 미안해졌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준비해온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약속했다. 다음번 만날 때는 꼭 완치된 미각으로 진짜 전라도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기자고 오늘의 만남은 그 약속으로 더 깊은 의미를 품게 되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가 얼큰히 취할 즈음 고령 깊은 산골의 해는 서쪽 능선 뒤로 빠르게 저물어갔다.
산속의 저녁은 도심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고 어둠은 더 짙게 내려앉았다. 내일 새벽 전라도로 내려가야 할 후배를 위해 우리는 초저녁 바람을 맞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로 포옹을 나누며 다음 달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후배는 어차피 매주 캠핑을 떠날 예정이라며 앞으로는 캠핑장소를 미리 톡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형님이 마음만 먹으면 그냥 몸만 오세요. 잠자리만 준비하면 됩니다.”
그의 배려가 담긴 말은 나를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캠핑장을 빠져나와 어스름한 시골길을 달리며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실컷 웃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앞으로 더 자주 시간을 가지자고 마치 맹세처럼 다짐했다.
열린 차창으로 밀려드는 초가을 바람은 제법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마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시간이 이어졌다.
차 안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며 오늘의 여운을 가슴에 담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까지 대화는 없었지만 말없이도 충분했다. 서로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다.
그렇게 오늘의 짧은 캠핑은 짧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작은 추억이 남긴 큰 울림을 마음에 새기며 집으로 돌아와 약간은 피곤한 몸을 정리하고 고요히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