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딸이 후츄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채워갈 것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35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불면이 사라진 밤에 찾아온 초가을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어두운 새벽의 하늘을 보며 짧은 명상을 하고 서재에 앉아 잠시의 독서를 했다.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 두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외출을 준비했다. 오늘은 나름대로 중요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6년 전 큰아들이 학교 인근 경비실 앞에서 추위에 떨던 길고양이를 데려와 우리 식구로 들어온 반려묘 ‘후츄’를 큰딸의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사실 후츄에 대한 사랑은 우리 부부보다 큰딸이 훨씬 더 깊다. 딸이 직장을 얻어 분가할 때도 데려가려 했으나 원룸의 규정 탓에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초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한 뒤 후츄는 언젠가 딸에게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실 아내도 후츄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에 이번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몸 상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늘 함께 자고 함께 놀던 후츄는 고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항상 수많은 털을 흔적으로 남긴다. 물론 잦은 청소도 하고 공기청정기도 쓰지만 소용이 없다.


빗질을 아무리 자주해도 태생에서 나오는 털의 흔적은 내 편도암 이후 우리 부부에게는 막을 수 없는 작은 불편의 무게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제는 후츄가 딸 곁에 있는 것이 서로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타는 딸에게는 동반자가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망가진 몸의 회복을 위하여.


작은 고양이 가방에 후츄를 넣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늘 집 안에만 머물던 녀석은 낯선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풍경에 내내 울음으로 저항했다.


딸은 회사에 연차를 내서 병원에서 만났다. 종합검진 시간은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병원에 맡겨두고 딸과 집으로 돌아와 후츄의 짐을 정리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남긴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캣타워, 캣휠, 스크래처, 화장실까지. 트렁크와 뒷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결국 캣휠은 지붕 위에 묶어야 했다.


딸의 집에 도착해 해체한 캣타워를 다시 조립하며 후츄의 자리를 만들었다. 낯선 집 안에 천천히 자리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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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딸에게 옮겨놓는 것 같았고 할까. 검진이 끝나고 의사와 상담을 했다. 최근 잦은 구토의 원인이 췌장이 약한 태생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건식 사료 대신 습식을 해야 했는데 우리는 그저 편리함 때문에 늘 마른 사료만 주었다. 잘 몰랐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사실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내 행복의 일부로만 여겼던 이기심을 깨닫는 순간 미안함이 깊게 스며들었다. 검진을 마치고 딸의 집으로 가는 길에 퇴근하는 아내를 데리고 함께 향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기에 오늘은 나와 아내가 딸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자며 지켜보기로 했다.


딸이 이사한 이후 거의 1년 만에 다시 그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딸과 아내는 캔맥주를 나는 0.00% 음료를 들어 건배를 했다. 그 작은 잔을 부딪히는 순간 마치 우리가 이별 대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낯선 공간이 불안했는지 캣타워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않던 후츄도 어느새 천천히 발을 내딛더니 우리 곁에 자리를 틀었다.


딸과 후츄의 새로운 동행을 축복하며 나와 아내의 회복을 기원하며, 우리 세 식구는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었다.


병과 이별 그리고 새로운 삶의 준비로 무거웠던 지난 시간들을 잠시 잊게 해준 따뜻한 밤이었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뒤 홀로 누워 생각했다. 후츄는 이제 딸의 품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내가 미처 다 주지 못한 배려와 정성을 딸은 충분히 채워줄 거라 믿는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서운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단지 방식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이어지는 또 다른 ‘함께’였다.


오늘 하루는 결국, 후츄를 딸에게 보내며 내가 더 배운 날이었다. 사랑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이나 함께하는 기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책임과 번거로움까지 기꺼이 감당하려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내가 후츄를 키우며 놓쳤던 작은 배려들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미뤘던 정성들은 뒤늦게 깨달은 책임의 무게였다. 이제 그 책임을 이어받은 딸이 후츄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채워갈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흘러간다.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한 시절에서 또 다른 시절로. 때로는 아쉬운 이별의 얼굴로 다가오지만 결국은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내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더 분명히 배웠다.


사랑은 책임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책임은 사랑을 통해 더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교차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