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36일차의 기록
조금은 낯선 딸의 집에서 맞이한 아침이었다. 낯선 천장과 낯선 공기,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매트리스와 이불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내 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투병이후 집에서 처음 맞이한 잠자리에 긴장도 했지만, 다행히도 불면의 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잠시 뒤척이다가 스르르 잠에 들 수 있었다.
오히려 새벽녘 불안하게 깨던 지난날들과 달리 오늘은 아침의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을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정작 내 마음을 더 사로잡은 건 나 자신보다 후츄였다. 딸의 집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처음 밤을 보내야 했던 녀석의 컨디션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후츄는 누구보다 분주했다. 잠시 잠을 깬 새벽 확인해보니 캣타워에서 내려온 녀석은 거실과 방을 오가며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이제 이곳의 주인임을 알리듯 영역을 표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발자국 소리와 낯설지만 당당한 발걸음이 내 마음까지 놓이게 했다.
아침이 되자 녀석은 더 이상 낯선 공간에 주눅 들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호기심 어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결국 평소 주말 아침이면 늘 늦잠을 자는 아내와 딸도 이른 시간 눈을 뜨고 말았다.
낯설음은 그렇게 천천히 익숙함으로 바뀌고 있었고 새로운 시작은 작고 따뜻한 후츄의 울음 소리와 함께 우리 모두를 깨워주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딸이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손길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딸의 집에서 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딸 역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수는 멸치코인으로 만두는 냉동만두였고 떡은 냉동실에 있던 것이었다. 딱히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재료들로 끓여낸 만둣국.
그런데도 그 맛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그 어떤 만둣국보다 깊고 따뜻했다. 아마도 음식의 가치는 재료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딸의 마음은 서툴지 않았고 정직하게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부모를 위해 만들어주려는 딸의 그 사랑이 국물 위로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깨 달았다.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 역시 그 맛을 완성한다는 것을. 오늘 내가 느낀 감동과 감사가 그 평범한 한 끼를 특별한 선물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있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하루의 맛과 깊이가 달라지는 법.
오늘의 한 그릇 만둣국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우리 세 가족이 함께 맞이한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따뜻한 의식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후츄가 큰 탈 없이 밤을 보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낯선 공간이지만 잘 적응해준 후츄 덕분에 우리 부부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딸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현관을 나서며 아내는 딸과 후츄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이미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은 후츄는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차갑게 느껴졌지만 어쩌면 그만큼 녀석이 잘 적응했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후츄가 떠난 빈자리였다.
딸이 챙겨간 용품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스크래쳐를 분해하고 구석구석에 흩어진 흔적들을 정리했다. 발톱 자국이 남은 캣타워의 흔적 가끔은 그 자리에 놓여 있던 작은 장난감들.
정리라는 행위는 물건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는 기억과 시간을 함께 접어 넣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집 안에 채워져 있던 소리가 빠져나가면 공간은 커진다. 아들이 군대에 입대해 집을 떠났을 때도, 딸이 직장 근처 원룸으로 분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빈자리는 물리적인 부재가 아니라 마음속 허전함으로 남는다. 오늘 후츄가 떠난 자리 역시 다르지 않았다.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배어 있었기에 그 공허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아내는 후츄의 흔적을 치우며 연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작 하나 빠져나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집이 커 보이는 걸까.”
그 말에는 단순히 반려묘를 보낸 아쉬움만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 속에서 하나둘 비워지는 집의 풍경을 바라보는 깊은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비워짐은 늘 아쉽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추억들이다.
며칠 전 오랜 세월 키워왔던 율마들을 낯선 곳으로 보내야 했고 어제는 6년 동안 함께해온 후츄를 딸의 집으로 떠나보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곁에서 함께해온 존재들을 이렇게 연이어 보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리나 분리가 아니라 나의 일상 속 한 조각을 떼어내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자의반 타의반의 마음으로 나는 이번 주 두 가지를 떠나보냈다. 아내와 나의 건강을 지키고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허전함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빈자리를 마주하는 함께했던 시간들은 더 크게 다가온다.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따뜻하다.
왜냐하면 빈자리를 메우는 건 단지 공허함이 아니라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함께 웃고 돌보고 손길을 나누던 순간들이 남아 있기에 여전히 살아 있는 온기를 품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떠나보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나보낼 수 있다는 건 함께한 시간의 추억과 기억이 선물처럼 남아 있음을 뜻한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빈자리를 마주했지만 그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 속에서도 따뜻한 추억이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