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1일차의 기록
다시 돌아온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과 함께 떠오른 해를 보며 눈을 떴고 짧은 명상을 마친 뒤 독서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냈다.
함께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아내는 볼링장으로 막내는 소파위에 그리고 나는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블로그 글을 정리하다 문득,
작년 오늘 나는 무엇을 했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작년 오늘은 사직서가 수리되고 마지막으로 본사로 가서 직원들과 송별회를 위해 기차에 올랐던 날이었다.
인천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27년이라는 시간을 되짚었던
그 순간의 공기가 아직도 손끝에서 느껴진다.
그때는 퇴사라는 거대한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홀가분함과 막막함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여 오래 흔들리던 하루였다.
첫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뒤 벼룩시장의 구인광고 하나에 기대어 들어간 회사에서 무려 27년을 보내게 될 줄은 당시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미움과 애정이 뒤섞인 관계들, 수많은 계절을 함께 지나온 공간들.
작년 11월 22일의 나는 그 긴 시간을 하나의 문장으로 말하기 버거워, 차라리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접어두려 했던 것 같다.
작별을 앞둔 날이라 그런지 타 부서 사람들과 나눈 대화도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다. 다들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할 거냐는 한결 같은 물음에 나는 잠깐 쉬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들이 묻는 눈빛 속에는 응원보다 걱정과 의문이 조금 더 담겨 있었다.
그 시선이 나를 흔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날 이후 나는 남들이 보는 나보다 내가 살아낼 인생을 조금은 더 중심에 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송별회 장소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현수막도 오늘 다시 떠오른다. 스무 살 중반의 사진과 함께 적힌 문장.
“빛나는 후반전,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그 문구는 나에게 이제는 00회사의 회사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과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후반전이 시작된다는 걸 알려주는 말처럼 들렸다.
그날 술잔을 기울이며 속으로는 빨리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너무 많은 시선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버거웠고,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담긴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숨은 의미들이 하나둘 더 선명해진다. 작년에는 몰랐지만 그 송별회 이후 내 인생은 다시 완전히 다른 길 위에 놓였다.
퇴사, 투병, 회복, 글쓰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는 삶의 강물에 휩쓸리듯 떠밀려왔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 모든 변화가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한 길목 같기도 하다.
지나온 삶은 늘 회사라는 단단한 틀 안에 있었다. 계획된 일정표와 반복되는 루틴, 익숙한 풍경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길을 걸어왔고, 그 길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다.
자유였지만 동시에 낯설고 막막한 빈자리에 처음으로 작가라는 꿈이 조심스럽게 들어앉기 시작했다.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길, 감히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꿈을 제대로 꿔보기도 전에 암 진단이 찾아왔다. 글을 쓰겠다는 다짐보다 훨씬 더 강하고 거친 방식으로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내리는 사건이었다.
작가의 꿈은 잠시 멈춰 섰고,
나는 다시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과제 앞에 놓였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이어지는 시간들은 매일의 체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었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가곤 했다.
그 시간들은 내게 너무 낯설고 내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미래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벼랑 끝처럼 느껴진 그 투병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몸이 무너지는 동안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기 시작했고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암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삶을 덮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시간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 더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회복의 시간이 찾아왔다. 천천히, 아주 조용히.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체력, 다른 감정, 다른 생각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회사원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이제 작가라는 꿈이 더 확실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돌아보면 퇴사는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꿈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일이었던 것 같다.
투병은 내가 그 꿈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시간이었으며, 회복은 다시 걸어갈 힘을 되찾게 해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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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국 모든 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1년 전에는 단지 흔들림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흔들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늘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1년 전의 나는 회사라는 커다란 울타리와 작별하며 새로운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흔들렸고, 지금의 나는 병과 싸운 90일의 시간을 지나며 다시 한 번 나의 삶을 새로 만들고 있다.
두 시기는 전혀 다른 이유로 흔들렸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내일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작년 일기의 그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1년 전 흔들리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