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23.아이의 성장앞에서 부모는
배워야 하는 사람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2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아침부터 몸이 조금은 가벼웠다. 오랜만에 늦잠(그래봐야 오전 8시였지만)을 자고 천천히 움직이는 하루였다.


볼링 시합이 있는 아내를 볼링장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스치는 겨울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에 도착해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았고,

블벗인 별꽃님께서 보내주신 책들 중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꺼내 들었다.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나를 떠올리며 보내주신

별꽃님의 마음이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소파 거실에서는 막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세 편을 연달아 정주행하던 아이였는데 갑작스러운 변화가 궁금해, 왜 드라마 대신 애니메이션이냐고 가볍게 물었다.


“2월에 친구들하고 일본 여행을 갈까 해서요. 지금부터라도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막내의 얼굴을 보며 순간적으로 마음이 환해졌다.


아이가 정말 여행 준비 때문이든, 아니면 아빠의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내놓은 답변이든.


그 말 속에 이미 작은 생각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막내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 전 면접을 본 알바는 어찌 되었는지를 물었다.

다음주에 연락을 준다고 했다고 하며, 혹시 몰라서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중에는 택배 상하차도 포함되어 있었다.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도 스스로 해보겠다고 고민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이 아이를 막내라고만 부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timetable-2467247_1280.jpg?type=w1

언젠가부터 아이는 자신의 시간을 계획하고,

그 계획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화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아이가 내 곁에 머물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 스스로 무게 있는 선택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착각이 조용히 깨졌다.


“오~ 아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 움직임이 어설플지언정 진지하고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든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조용히 서재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최근 블벗 늘솔등불님께서 김종원 작가의 <진짜 부모 공부>를 바탕으로 올리신 글을 읽을 때 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원하는 부모, 김종원 진짜 부모 교육(.. : 네이버블로그

늘솔등불님의 글은 단순히 좋은 글이구나

하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며

오래 멈춰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이를 대하는 법,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부모가 배워야 할 감정의 태도에 대한 문장들이 하나하나 가슴 깊이 와닿았다.


글을 읽을 때면 마치 오래된 감정들을 꺼내 보게 되는 느낌이 든다.


첫째와 둘째는 이미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고, 열여덟의 막내 역시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여전히 둘 다 어린 시절의 장면과 함께 겹친다.


그 겹침이 때로는 나를 미숙해 보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행스럽게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한다.


부모라는 이름이 시간이 지나도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비로소 오늘 조금은 알 것 같았다.

infinity-1737624_1280.jpg?type=w1

부모라는 역할은

한 번 시작되면 끝나는 시점이 없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나도 계속 낯선 장면을 마주해야 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감정과 선택이 따라온다.


그래서 매 순간이 처음 같다. 아이의 나이가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부모의 역할도 바뀌는데, 나는 늘 한발 늦게 그 변화를 알아차린다.


그 늦은 알아차림이 초보라는 감각을 반복해서 만들어낸다. 아이가 한 뼘 자랄 때마다 나는 그 한 뼘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배워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모는 결국 이전의 지식으로 아이를 대한다. 마치 부모의 말이 정답인 것처럼 말이다.

chess-3325010_1280.jpg?type=w1

그러나 부모라는 위치는 정답을 가진 역할이 아니다.


그저 내 경험으로 판단하고 내 마음으로 반응할 뿐인데 어느 날은 그 마음이 맞을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 닫고, 아이를 인정할 줄 아는 능력을 아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부모로서 아직 난 그런 준비를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가을 햇살이 들어오는 서재의 창가에 앉아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부모는 아이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 하나가 나의 미숙함을 비추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감정이나 판단을 드러내기도 한다.

park-life-2651596_1280.jpg?type=w1

그래서 아이의 성장 앞에서

부모는 늘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결국 부모가 평생 초보인 이유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인 나는 늘 그 시절의 아이를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결국 배움의 연속이고 그 배움이 끝나지 않기에 초보라는 말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오늘 막내의 말 몇 마디가 이 단순한 사실을 조용히 깨닫게 했다.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나이를 먹지만,

아이보다 먼저 성숙해지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오늘의 하루는 막내의 미래가 살짝 보이는 날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내 일상의 온도를 조금씩 올려주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22.빛나는 후반전,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