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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중국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과의 통화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4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감기로 부터 다시 회복된 몸을 이끌고 한동안 멈추었던 베란다 앞에서 짧은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창문틈 사이로 서늘하게 다가오는 바람의 온도는 겨울을 알리고 있었다.


책상에 앞에 앉아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펼쳐들고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을 돕는 생존기계라는 사실을 다시 읽는 부분에서 당시의 받았던 나의 학문적 충격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규칙'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으며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한 잘못된 규칙을 다시 세워야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오후, 중국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에게서 오랜만에 안부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 덮어두었던 서랍이 열리듯 중국에서의 생활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 몸상태를 얼마전에 알았다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고 덕분에 많이 회복되었다는 인사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도 나도 지금은 회사를 떠난 몸이지만 그 후배는 아직 중국을 드나들며 무역업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사장이 되어있었다. 잘 지내고 사업도 번창하고 있었다.


청도를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출장다니던 시간들은 나에게 고단함과 낯섦,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묘한 배움까지 남겼다. 그 중에서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개 있다.


2015년 중국 공장의 총경리로 발령이 나면서, 중국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동안 영업사원과 함께 중국 전역을 다니며 동행하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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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이라고 하면 그럴듯한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마주한 중국은 도시마다 온도 차가 컸다.


중심가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번화가였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낙후된 시골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출장 중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건 고속도로의 풍경이다. 특히 같은 산동성 내에서 차로 이동하는 날이면 꼭 겪는 일이 있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10분쯤 지나면,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똑같은 풍경이 수십 킬로미터씩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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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대지 위에 낮은 언덕과 황토빛 들판이 반복적으로 펼쳐지고,

그 위를 가르는 길은 직선으로 끝없이 뻗어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말수가 줄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졸음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곤 했다. 심지어 약 두시간을 달려도 도로에 차가 한대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차량에는 거의 장착되어있는 크루즈 기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당시에 깨달았다. 몇 시간을 앞에 차가 없이 달릴 때 규정속도를 맞춰놓는 기능의 옵션이 아니라 필수기능이었다.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오고, 공조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번갈아 내뿜었지만 졸음은 도무지 물러나지 않았다. 괜히 창문을 살짝 내려 바깥의 먼 공기를 들이마시며 정신을 붙잡았다.


최소 8시간의 장거리 운전을 하는 그 지루하고 고단한 그 길 위에서 어쩐지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던 기억이 난다.


막히지도 않는 고속도로위에서 하루종일 운전을 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고 독한 바이주 한잔과 함께 첫날을 보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번은 어느 대학 인근의 나름 번화가의 공용시장에서 직원과 함께 간단히 맥주를 한 잔하고, 잠시 화장실을 들렀던 일이 있었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오래 기억될 충격을 마주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하게 존재하는 칸막이가 전혀 없었다. 넓게 펼쳐진 한 공간에 변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1_jj6Ud018svc38mjs9vl53ff_w9ssm.jpg?type=w1 실제로 직접 찍은 사진.....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전해들은 이야기나 오래전 뉴스에서 보던 장면이라고만 생각해왔던 풍경이었는데, 그게 바로 내 눈앞에 살아 있는 현실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동행한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를 돌아보며 “여기선 이런 곳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문화 차이라고 이해는 했지만, 이해와 충격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찍어둔 사진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당혹감이 되살아난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풍경 앞에서 ‘문화’라는 이름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경험해온 세계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중국 출장의 풍경들은 대부분 고단하고 낯설었지만, 그 낯섦 속에서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건져 올린 셈이다.


단조로운 고속도로, 황량한 시골 마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던 그 공용 화장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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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장면들은 지금의 내 기억 속에서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남아 있다.

오늘 그 직원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장면을 다시 꺼내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니 그 당시의 낯섦과 충격조차도 결국 내가 지나온 길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기와 닮아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오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당혹스럽지만 결국 지나가고 나면 또 하나의 경험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의 충격적인 화장실 풍경 앞에서 잠시 멈칫했던 그때의 나처럼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당혹스러운 삶의 장면을 지나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젠가 담담히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또한 지루하고 반복적인 풍경 속에서도 결국 도착지에 닿았듯이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치료의 시간도 그런 길 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련이 반복되는 듯 보이고 몸이 지쳐 가는 날도 있지만 그 길 끝에는 분명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그 당시 중국 출장들이 나에게 남긴 작은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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